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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삼삼프로젝트 Jan 29. 2021

[지극히 사적인 인터뷰 01]
젠틀키친 이재민 대표

‘나중’ 대신 ‘지금’을 선택한 담대한 용기


[지극히 사적인 인터뷰 01] 젠틀키친 이재민 대표


건축에서 광고로, 광고에서 요리로

‘나중’ 대신 ‘지금’을 선택한 담대한 용기 


@젠틀키친, 이재민 대표


첫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백지상태인 우리의 요청을 흔쾌히 수락해준 사람이었다. 받은 도움이 많아서 그것을 갚고 싶다는 사람. 도움을 청하러 온 사람들에게 따뜻한 커피부터 챙겨주는 배려와 친절함은 숨기려 해도 느껴지는 법이다. 


건축학을 전공하고 광고 회사에서 일하다 푸드 트럭으로 젠틀키친을 시작한 이력은 특이하지만 자신을 적당히 용감하고 적당한 무서움을 타는 보통의 사람으로 소개하는 이재민 대표를 만났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젠틀키친’이라는 작은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남자 사람 이재민입니다. 


젠틀키친 시작 전 어떤 일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건축학을 전공하고 건축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하던 중 광고를 하면 잘할 것 같다는 지인의 추천으로 광고 회사에 지원을 했어요. 그렇게 아트 디렉터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건축에서 광고로, 광고에서 요리로 가는 과정이 신기하네요.

고향이 부산이라 서울에서 자취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음식을 하게 되었고 친구들이 맛있게 먹어줬어요. 재미로 시작한 요리였는데 더 잘하고 싶어 지더라고요. 그때부터 ‘나중에 돈을 모으면 내 일을 해야지’라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막상 회사 생활을 시작하고 선배들을 보니 돈이 있어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더라고요. ‘차라리 망하더라도 지금 망하자. 망했을 때 회사로 돌아가도 늦지 않은 나이다.’라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차라리 망하더라도 지금 망하자. 망했을 때 회사로 돌아가도 늦지 않은 나이다.


푸드 트럭으로 첫 시작을 하셨어요.

회사를 다닌 지 일 년 반. 제 나이 스물아홉이었어요. 푸드트럭에 대한 로망과 플랫폼 자체에 대한 매력이 있어 ‘푸드 트럭을 해보자’ 마음먹고 은행에 가서 천오백만 원 대출을 받았어요. 부모님께는 회사를 그만둔다고 차마 말씀드리지 못하고 누나들에게 살짝 말했는데 “결코 작은 돈은 아니지만 인생이 망할 돈은 아니니 하고 싶은 것을 해봐라.” 하더라고요. 



결코 작은 돈은 아니지만 인생이 망할 돈은 아니니 하고 싶은 것을 해봐.


시작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면요?

무턱대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어요. 저는 스스로 납득이 되어야 실행하는 사람이라서 퇴사를 하기 전 시나리오를 짰어요. 


     옵션 1. 일단 6개월을 버틴다. 해보고 괜찮으면 계속한다.

    옵션 2. 푸드 트럭이 잘 되었으나 운영에 어려움이 생겼다. 그러면 가게를 차리자.

    옵션 3. 망하면 다시 신입사원이 된다.


그런데 준비를 하면서 될 거라는 어느 정도의 확신이 생겼어요. 그런 감을 좀 믿는 편이거든요. 다행히 6개월 동안 많은 관심을 받았어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푸드 트럭을 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아요. 운영상의 문제도 있었지만 민원이 들어온 날이면 당장 철수해야 했고 그렇게 쫓겨난 날에는 일주일 동안 집에서 끙끙댔어요. 



될 거라는 어느 정도의 확신이 생겼어요. 그런 감을 좀 믿는 편이거든요. 


푸드 트럭에서 가게를 오픈하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푸드 트럭을 하면서 힘든 부분이 많았지만 회사로 돌아가기보다는 내 가게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어요. 그때까지 부모님은 제가 회사에 다니고 있는 줄 아셨거든요. 푸드 트럭이 알려지기 시작했던 터라 잡지나 방송에 나왔던 자료를 모아 부모님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했어요. 부모님은 회사에 다니지 않으면 불안해하시잖아요. 공신력 있는 자료를 보여드리며 내 가게를 해야겠다 말했을 때 엄마가 삼킨 숨에는 많은 것이 함축되어 있더라고요. 고민 끝에 전세금을 빼서 가게를 구하고 그 안을 쇼룸처럼 주방과 방이 있는 공간으로 꾸몄어요. 가정집에 초대받은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요. 


오픈 첫날 마음이 어땠나요?

오늘은 아무도 안 왔으면 좋겠다. 내일부터 왔으면 좋겠다.(웃음)


그런데 제법 잘 되었어요.

저는 요리를 전문적으로 한 사람도 아니고 처음부터 가게를 열면 특색 없는 공간이 될 것 같았어요. 푸드 트럭을 시작한 것도 그 이유였어요. 푸드 트럭으로 먼저 젠틀키친을 알리면 가게를 열었을 때 사람들이 기억하고 방문해 주실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공간을 오픈하면서 세운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요?

사실 지금의 모습이 제가 그린 모습이에요. 몇 년 동안은 하루하루 충실했고 또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제가 식당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버틴 거죠. 하나부터 열까지 혼자 다 해야 하니까 마음이 늘 조급했어요. 



전문적으로 요리를 배우지 않아 주저하게 된 적이 있었나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초반에는 없었어요. 시작할 때는 제가 잘하는 줄 알았어요. 음식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맛있다고 해줬으니까요. 그런데 다년간 음식을 만들면서 지식이 조금씩 쌓이니 조금 무서워질 때도 있어요. 내가 그동안 음식을 허투루 내고 있었구나 싶을 때도 있고요. 


지금 공간으로 이사를 하셨어요. 가게가 잘 되고 있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처음에 동진시장 쪽에 가게를 낼 때는 주변 상권이 발달되지 않았어요. 부동산에서 유동 인구가 없으니 메인 상가로 가라 하더라고요. 저는 북적거리는 것이 싫어서 인적이 드문 곳에 자리를 잡았어요. 그런데 1~2년이 지나니까 제 가게 쪽으로 상권이 이동하더라고요. 가게를 옮겨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지금 건물주 분이 찾아왔어요. 경의선 숲길 끝자락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한적하고 공원이 보여서 좋았어요. 주변에서 많이 걱정했죠. 물론 두렵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인데요. 또 막연하게 될 것 같은 확신이 있었어요.



물론 두렵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인데요. 또 막연하게 될 것 같은 확신이 있었어요.


재민 님이 옮기면 상권이 생기는 것 같은데요.

그래서 친구들이 가게 말고 부동산 하래요. (웃음) 


공간이 참 멋져요. 인테리어 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무엇인가요?

젠틀키친의 색은 잃지 말되 조금 더 완성도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겠다는 목표가 있었어요. 처음 공간은 아무래도 아쉬움이 컸거든요. 직접 목재도 짜고 타일도 붙이고 소품 하나하나까지 제 손을 거쳤어요. 전문가들이 보기에는 부족해 보일지 몰라도 기존의 젠틀키친보다는 완성도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이재민 대표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 @젠틀키친


‘나 혼자 산다’와 ‘놀면 뭐 하니?’에서 보고 반가웠어요. 저기 젠틀키친인데? 

특히 ‘놀면 뭐 하니?’에서는 50여 개의 후보 공간을 검토해보고 젠틀키친으로 연락을 주신 거래요. 사실 여부를 떠나 자부심이 생겼어요.


손님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특정 공간이 있다면요?

손님들이 와서 “여기는 사계절을 볼 수 있네?”하면 좋아요. 특히 4층은 통창으로 되어 있어서 저도 일하면서 창밖을 보면 힐링될 때가 있어요. 


3, 4층으로 운영되는 젠틀키친. 사진은 3층에서 본 풍경. 4층은 통창으로 되어 있어 바깥 풍경이 한눈에 보인다.


공간을 운영하다 보면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가 많은지 궁금해요.

첫 번째 공간에서는 손님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데 지금은 조심하는 편인 것 같아요. 손님들이 불편하실 수도 있고 조금 슬픈 일이기도 한데 가끔은 선을 넘는 분들이 생기더라고요. 친분으로 무장한 당연함 같은 거요. 


특별 대우를 받고 싶은 분들인 거죠.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저도 사람인지라 상처 받고 웅크려 드는 것 같아요. 그런데 회사를 다녀도 직장인들의 고충이 있잖아요. 자영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결국 내가 선택한 일이니까요. 


혼자 운영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아요.

젠틀키친은 ‘예약 우선제’로 운영하고 있어요. 30분 단위로 예약을 받고 있는데 혼자 가게를 운영하다 보니 약속시간보다 늦게 오거나 노쇼 하는 분들이 있으면 다른 분들에게 피해가 생겨요. 이런 부분이 참 어렵죠. 


햇빛이 잘 드는 4층의 공간.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다.


코로나로 영업이 힘드시지는 않았을까 걱정했어요.

저는 혼자 가게를 운영하니까 하루에 많은 손님을 받을 수 없어요. 오랜 시간 1인 운영방식을 유지해와서 다른 업장보다는 어려움이 덜할 거예요. 혼자 운영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지금은 오히려 혼자여서 다행이다 싶어요.


공간을 운영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나요?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기에는 복합적이에요. 서빙, 응대, 요리, 계산, 운영 모두 제가 하는 일인데요. 100% 완벽한 서비스를 드리지 못해도 잘 융화될 수 있도록 멀티플레이어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해요.


건축, 광고, 요리 이후 몇 년이 흘렀는데 회의감이 들거나 번아웃이 찾아온 적이 있나요?

저는 흘러가는 대로 사는 사람이라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되었어요. 창의적인 것들을 만드는 것에 흥미가 있어서 새로운 메뉴를 계속 만들고 있어요. 그런데 젠틀키친의 시그니처 메뉴가 있으니까 손님들이 먹는 음식만 드시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가끔 기운이 나지 않을 때도 있어요. 하지만 매일 같은 요리를 하는 것 같아도 그 안에서 새롭게 배우는 것들이 생겨요.



매일 같은 요리를 하는 것 같아도 그 안에서 새롭게 배우는 것들이 생겨요.


흘러가는 대로 사는 성격인데 공간이 생겨서 반대로 시도하지 못하는 것도 있나요?

지금은 현실적인 것도 무시 못 하는 나이가 되었어요. 그 사이 결혼도 했고 대출받아서 집도 샀고요. 갑자기 다른 것을 하고 싶다고 해서 저지를 수 있는 나이는 아닌 거죠. 하지만 공간을 유지하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끊임없이 찾고 있어요. 


내 공간이 있어서 좋은 점이 있을까요?

내 인생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것. 물론 영업시간은 지켜야 하죠. 한 달 일정을 미리 올려놓고 쉬는 시간을 만들어요. 지칠 때쯤이면 캠핑도 다녀오고 충전하는 시간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자율성이 좋아요. 


쉬는 날에는 무얼 하세요?

정말 아무것도 안 할 때도 있고요. 집에서 뒹굴뒹굴하며 맛있는 커피를 내려 마셔요. 캠핑을 가거나 동해 바다를 보고 올 때도 많고요. 자연 속에 있는 것을 좋아해요. 


일 외에 요즘 관심 가지고 있는 것이 있다면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이 많아요. 결혼도 했고 후에 아이가 태어날 수도 있으니까 더 큰 책임감도 생겼어요. 예전에는 사진도 찍고 음악도 만들면서 제가 좋아하는 것으로 삶을 꾸려갔는데 나이가 들면서 바뀌는 것들도 생기는 것 같아요. 지금은 삶의 중심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회사에 있을 때와 나만의 공간을 꾸리면서 변화한 것이 있다면요.

건축이든 광고든 요리든 결과물만 다를 뿐 본질은 같다고 생각해요. 


이곳에 오시는 분들에게 젠틀키친이 어떻게 기억되었으면 하나요?

특별한 공간이 되기보다는 일상 속에서 떠올릴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비 오는데 막걸리나 마실까?” 하는 것처럼 “오늘은 젠틀키친 갈까?”하고 떠올릴 수 있는 곳.



오늘은 젠틀키친 갈까?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그래도 젠틀키친인가요?

푸드 트럭은 너무 힘들어서 주저할 것 같고요. (웃음) 내 공간을 만드는 것에는 주저하지 않을 것 같아요.


공간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해주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해야 해요. 경험은 무조건 도움이 되니까요. 대신 자기가 무너지지 않는 선에서, 실패해도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진짜 용기는 시작하는 게 아니라 실패를 인정하는 거라 생각해요. 남들 시선 때문에 계속 가는 경우가 있거든요. 했다가 아니면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용기가 진짜 멋진 용기 같아요.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해야 해요. 경험은 무조건 도움이 되니까요. 했다가 아니면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용기가 진짜 멋진 용기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요? 

브랜딩을 하고 싶어요. 4층에도 편집숍을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코로나로 지금은 예약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그래서 사장님, 지금 행복하신가요?

저는 항상 무얼 할 때 ‘내가 행복한가?’를 서두에 둬요. 힘든 일도 있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무엇보다 행복합니다.

@gentle_kitchen





삼삼삼 프로젝트의 시작

한 때 같은 직장에서 근무했지만 지금은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셋이 모였습니다. 간헐적으로 만나던 셋이 각자의 장점을 살려 한 달에 한 번 지극히 사적인 인터뷰를 진행해보려고 합니다. 사적인 인터뷰의 대상은 자꾸 찾아가고 싶은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공간 뒤에 숨은 이야기를 자꾸 묻다 보면 공통의 것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우리의 느슨하고도 소중한 프로젝트의 시작이 누군가에게 새로 시작할 용기와 영감이 되면 좋겠습니다. @samsamsam.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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