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사적인 인터뷰 03] 온기를 담은 공간 클로스 오수형 대표
삼각지역 2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보이는 곳, 캐주얼 내추럴 와인바 '클로스'입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눈에 띄고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지는 곳입니다. 색감이 예쁜 포스터와 따뜻한 조명이 입구에서 "잠깐이라도 들어왔다 가볼래?" 물어보는 것 같습니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옮기게 되는 곳, 일단 들어오면 정신이 혼미해질지도 모릅니다. 따뜻한 조명, 공간을 채우는 LP 음악,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 그 안의 다정함까지. 살짝 숨겨놓은 귀여운 취향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는 곳이니까요.
클로스의 뒤편으로 가면 오래된 용산의 모습과 노포 그리고 정겨운 옛날 가게들이 즐비합니다. 그래서인지 삼각지역 2번 출구 앞을 밝히고 있는 클로스가 더 궁금해집니다. 이 공간은 어떤 사람이 가꾸고 있는 걸까? 자꾸만 눈길이 가는 곳, '클로스'의 오수형 대표를 만나 보았습니다.
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클로스'를 운영하고 있는 오수형입니다.
클로스는 어떤 곳인가요?
‘클로스’는 캐주얼한 와인바예요. 부담 없이 와서 와인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서 열게 되었습니다.
클로스 오픈 전에는 패션회사에서 근무하셨다고 들었어요.
여성복을 기획하는 MD로 15년 정도 일했어요. 퇴사 전에는 ‘비이커’라는 곳에서 PB상품 기획과 국내 브랜드 바잉을 담당했습니다. 업무가 싫어서 회사를 그만뒀다기보다는 정년까지 10년 남짓 시간이 남아 있었고 결국에는 제2의 직업을 가져야 할 텐데 에너지가 있을 때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회사를 그만둔 시기가 좋았어요. 결정을 조금만 미뤘어도 코로나를 핑계로 지금까지 회사를 다니고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럼 클로스 오픈을 준비하면서 퇴사를 하신 건가요?
사실 지금의 클로스 공간을 생각하고 퇴사를 결정했던 건 아니었어요. 저는 조그만 일에는 고민을 하는데 큰 결정을 할 때는 제 감을 믿고 주저하지 않는 편이에요. 퇴사도 마찬가지였어요.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순간이 있잖아요. 오랜 시간 패션 업계에 있어서 분기별로 해외 출장을 다녔는데 일로 머물다 보니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는 경우는 드물었어요. 그때 퇴사를 하면 무조건 해외에서 한 달을 살아보자 결심했었어요. 실제로 퇴사 후 런던에 한 달 정도 머물며 파리, 코펜하겐 등 근처 나라의 도시도 여행하고 돌아왔어요.
그러면 어떻게 클로스가 시작된 건가요?
해외에 머무는 동안 공원이나 미술관, 카페와 바를 다니며 시간을 보냈는데요. 제가 좋아하는 분위기의 공간은 격식 있는 곳이 아니라 편하게 들러서 커피 한 잔, 와인 한 잔 마실 수 있는 곳이었어요. 해외 출장을 다닐 때 유명한 와인바를 갔는데 사람들이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즐겁게 와인을 마시고 있었던 것이 생각났어요. 물론 우리나라에도 다양한 와인바가 생기고 있지만 와인은 격식 있는 자리에서 마신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저도 와인바에 가서 와인 리스트를 봤을 때 어떤 걸 주문해야 할지 몰라서 답답했던 경험이 있거든요. 그래서 가볍게 들릴 수 있는 캐주얼한 와인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클로스 공간이 만들어진 과정이 궁금해요.
런던에서 돌아온 후 잠시 도쿄에 다녀왔어요. 캐주얼한 내추럴 와인바를 머릿속에 그렸지만 구체적인 콘셉트에 대한 고민이 있었거든요. 회사를 다닐 때에도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으면 잘하고 있는 곳을 보면서 벤치마킹을 하곤 했었어요. 그중 도쿄의 ‘와인스탠드 왈츠’라는 곳에 갔는데 ‘아, 나는 이런 공간에 있을 때 행복하구나!’ 확신이 생겼어요. 와인스탠드 왈츠는 정말 작은 와인바예요. 퇴근한 직장인들이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와인 잔 하나씩 들고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좁은 공간. 처음 공간을 방문한 제게 사장님은 와인 3병을 꺼낸 뒤 물었어요. “이건 로제, 이건 화이트, 이건 레드야. 뭐 마실래?” 그러곤 캐주얼한 잔에 와인을 콸콸콸 따라주더라고요. 그때 누군가 치즈를 주문했는데 치즈 덩어리를 툭 잘라 접시에 담아 주셨어요. 무례한 게 아니라 정감 있고 따뜻했어요. 말은 통하지 않지만 공간의 온기가 느껴져 돌아가면 이런 공간을 만들어야지 결심했어요.
클로스 전에 ‘수형바’가 있었다고 들었어요.
클로스에 대한 이미지를 구체화시킨 건 여행지였지만 어쩌면 그 시작은 저의 첫 독립이었어요. 2017년에 처음으로 독립을 해서 서울숲 근처에 집을 얻었어요. 제 공간이 생기니 친구들도 자연스레 와서 놀다가곤 했어요. 사람들이 오면 커피, 와인 그리고 간단한 안주들을 대접했는데 지금 클로스의 메뉴가 된 아이스크림 샌드나 과일&치즈 메뉴도 그때부터 시작되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수형바’라는 이름이 붙었어요.
어떻게 삼각지역 근처에 자리 잡게 되셨어요?
독립은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였어요. 반려견을 산책시키면서 만난 분들은 서울숲 근처에서 자영업을 하는 또래 친구들이었고 그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게 된 것 같아요. 회사 바깥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인생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을 할 수 있게 된 독립 후 시간이 정말 소중했어요. 서울숲 근처에서 제 공간을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어요. 동네 친구들이나 회사 동료들도 오기 편하고 근처에 숲이 있다는 것이 마음에 위안이 되었거든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공간 대비 가격이 맞지 않았어요.
어디에서 시작을 하면 좋을까? 고민이 많았어요. 한 달 정도 가게 자리를 보러 다녔는데 그러다 지금 클로스 자리를 보게 되었어요. 지하철 출구 바로 앞이라 위치는 좋았는데 건물 외관이나 내부는 지금과 다른 모습이어서 염두에 두지 않았던 곳이었어요. 마음에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근처를 배회했는데, 아직도 기억이 생생해요. 그때가 평일 저녁이었는데 용리단 길로 연결되는 뒷골목으로 들어서니 퇴근한 직장인들이 엄청 많더라고요. 다들 삼삼오오 모여 식사를 하고 계셨어요. 식사를 마치면 이 분들이 편하게 들릴만한 캐주얼한 와인바가 있을까? 주변을 둘러보니 그런 느낌의 가게는 없더라고요. 아까 말했듯 저는 제 감과 촉을 믿는 편인데 이 곳이다 싶었어요. ‘아, 이 곳에서 내가 그리는 공간을 구현할 수 있겠구나!’
공간을 오픈하면서 세운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요?
‘핫플레이스가 될 거야!’, ‘돈을 많이 벌어야지!’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다면 비용을 더 들여서라도 서울숲 쪽이나 번화가에 오픈을 했을 거예요. 이 곳을 선택한 이유는 동네가 주는 여유로운 느낌이 좋았어요. 특별한 날에 방문하는 곳보다는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퇴근을 할 때, 왠지 집에 바로 들어가기는 싫고 고단한 마음을 달래고 싶은 날, 번잡한 마음을 바깥에 두고 집에 들어가고 싶은 날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이 되고 싶었어요.
클로스는 무슨 뜻인가요?
사실 이름을 제일 많이 고민했어요. 새로워야 할 것 같고, 위트도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마지막까지 가게 이름을 정하지 못했어요. 평소 좋아하던 시, 노래 제목, 책 구절 등 여러 가지를 생각했는데 이거다 싶은 게 없는 거예요. 그러다 사업자를 내야 될 타이밍에 생각했던 이름이 클로스였어요. 클로스(Clos)는 포도밭이라는 뜻이면서 옷(Clothes)과 발음이 유사해요. 와인과 패션 두 개의 의미를 담고 있어서 저를 표현하는 단어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공간을 만들 때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편안하고 따뜻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이 따뜻한 분위기였어요. 가게의 메인 컬러와 바닥 컬러를 따스한 컬러로 잡고 목재로 된 바 테이블은 제작을 맡겼어요. 조도도 중요하니 조명도 신중하게 고르고 음악을 틀 거니까 흡음에 대한 부분도 신경을 많이 썼어요.
#클로스이야기 라는 해시태그를 통해서 공간의 디테일을 소개해주셨어요. 소개하고 싶은 다른 이야기가 있을까요?
클로스 와인잔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어요. 클로스 잔은 스템이 두껍고 낮고 안정적이에요. 스템이 얇고 볼이 넓은 크리스털 잔에 분위기 있게 마시는 것도 좋지만 쉽게 깨질 것 같아서 부담스러울 때가 있거든요. 누구나 쉽게 와인을 접하고 즐길 수 있는 캐주얼한 무드를 잔에서도 보여주고 싶었어요. 격식 없는 캐주얼한 와인바를 지향하는 클로스에서까지 레드, 화이트, 샴페인 잔을 구분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냥 편하게 와서 즐겨주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잔을 고르게 되었어요.
클로스는 음악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늘 LP로 공간을 채워주시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처음에는 턴테이블, 엠프, 스피커 모두 집에서 사용하던 걸 가져왔었어요. 블루투스를 연결해서 음원을 틀기도 하고 신청곡을 받아서 틀어 드리기도 했고요. 그런데 엘피로 음악을 트는 걸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셨어요. 그때 음악이 클로스의 차별화 포인트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음향 장비도 새로 장만했고 지금은 지출의 80% 정도를 엘피판을 사는데 쓰고 있어요.
LP도 알아야 살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저는 음악을 얇고 넓게 아는 사람이었어요. 재즈를 좋아하긴 했지만 어떤 아티스트가 어떤 성장 과정을 겪고 어떤 앨범이 명반인지 디테일한 것 까지는 모르고 제가 좋으면 들었어요. 그런데 손님들이 좋아해 주시니까 더 알고 싶어 지더라고요. 쉬는 날에는 주로 엘피숍에 가서 음반을 들어보고 한 곡이라도 클로스의 분위기와 어울리면 그 앨범을 사요. 앨범 커버의 느낌이 좋으면 들어보지 않고 그냥 제 촉을 믿고 살 때도 많아요.(웃음) 좋아하는 가수가 음반을 내거나, 느낌 좋은 영화를 보러 갈 때 리뷰를 먼저 찾아보지 않는 것처럼요. 아무 정보 없이 엘피를 살 때의 설렘도 좋더라고요.
클로스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언제인가요?
손님들이 음악을 들으면서 기분 좋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보면 참 좋아요. 그 시간의 분위기가 너무 좋은 거죠. 일을 하다 보면 고요해지는 순간이 있어요. 저도 주문받은 음식을 모두 서빙하고, 손님들도 각자 테이블에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요. 그때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틀어요. 어떤 날은 자주 방문해주셨던 손님이 좋아하셨던 음악을 기억해서 틀어드리곤 해요. '이렇게 오래된 노래를 알까?' 싶은 20대 분들도 선곡을 좋아해 주실 때 놀라기도 하고요. 결국에 클로스는 이런 감성과 분위기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찾아주신다고 생각해요.
공간에 방문하는 손님들은 주로 어떤 분들이신가요?
80%는 여성 손님인 것 같아요. 평일에는 직장인 분들이 많은 편이고요. 혼자 오시는 분들도 가끔 계세요. 오셔서 와인 한 잔 시켜놓고 책을 보기도 하고 일기를 쓰기도 하세요. 혼자 온다는 건 정말 이 공간이 좋아서 온다는 거잖아요. 그런 분들은 기억에 남아요.
와인 리스트는 매번 조금씩 달라지는데, 어떻게 선정하시는지 궁금해요.
내추럴 와인의 인기가 높아진 만큼 수입사들도 많아졌는데요. 수입사마다 취급하는 와인의 종류도 다양해졌어요. 코로나 이전에는 시음회에서 마셔보고 맛있는 와인을 가져올 수 있었는데 지금은 변수가 있는 상황이니 일단 다 사서 마셔봐요. 역사가 오래되었거나 스타 와인 메이커나 혹은 이미 유명해진 와인도 있지만 주로 제가 맛있게 마셨던 와인 위주로 셀렉하고 있어요. 저는 와인을 많이 알아서 추천을 하는 사람이기보다는 먼저 마셔보고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원래 술을 좋아하셨어요?
보통 술집을 하니까 술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시는데 사실 저에게 술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부정적인 이미지가 컸어요.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던 독립 전까지는요. 억지로 음주를 강요하는 문화도 싫었고 술에 취해 이성을 잃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웠어요. 그런데 독립을 하고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함께 술을 나누는 기쁨을 알게 되었어요. 클로스에서 그런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지금은 너무 만족해요.
클로스 오픈 후 1년의 시간이 흘렀는데 어떠세요?
사회에 나와서 1년 동안 경험했던 것 치고는 부침이 심하지 않아 다행이에요. 회사가 온실이었다면 자영업은 그렇지 않거든요. 가게를 시작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었고 때로는 손해를 보기도, 때로는 마음이 상한 적도 있지만 세상을 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회사에선 정체된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성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무엇으로부터 영감을 받으시는지도 궁금해요.
손님 중에 “클로스는 취향이 있는 사장님의 집에 놀러 온 것 같아요.”라고 말씀해주셨던 분이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것, 예쁘다고 생각한 것을 가져다 둔 것 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이야기를 해주시니 감사했어요. 클로스를 보고 제가 굉장히 감수성이 예민하고 문화나 예술에 조예가 깊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절대 아니거든요. 저는 그저 호기심이 많은 편이에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고 선입견 없이 받아들이려고 해요. 주변 지인들도 제가 좋아할 만한 것들이 보이면 추천을 해줘요. 그러면 또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거죠. 일단 다 경험을 해보는 거예요. 하나를 깊이 아는 것도 좋지만 풍부하고 넓게 아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클로스를 운영하면서 번아웃이 왔던 적이 있으세요?
많은 분들이 혼자 영업을 하면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워라밸이 ‘Work-life balance’잖아요. 근데 제가 항상 친구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냥 워크 라이프가 되었다고요. 쉬는 날에도 계속 일을 생각하게 되고 퇴근해서도 내일 해야 할 일을 생각해요. 저도 사장은 처음이라 아직 부족한 게 많아요. 코로나로 인한 거리두기가 지속되면서 매출도 급감하고 영업시간도 줄다 보니 주 5일 근무에서 6일 근무로 변경했어요. 그러면서 체력적으로도 힘들어지더라고요. 11개월은 열심히 일하고 한 달은 쉬어가는 삶을 꿈꿨는데 코로나로 그 꿈은 살짝 미뤄뒀어요.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잘 되는 가게들을 보면 비교를 하거나 허탈해질 때도 있었어요. 그래서 중심을 잡으려고 많은 노력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클로스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이렇게 인터뷰를 하거나 매체에 소개되는 일이 많아져서 참 감사해요.
지금은 어떠세요? 현재의 불안이 있나요?
가게를 오픈하고 마음이 평온해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퇴사해서 좋아? 행복해?”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매 순간 행복할 순 없지만 그래도 마음이 상하는 순간들이 많이 줄었어.”라고 말해요. 회사를 다니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많은데, 내 일은 스스로 컨트롤이 가능하거든요.
한 가지 불안한 것은 가게 문을 닫고 집에 들어갈 때 그날을 복기하거든요. ‘오늘 바쁘고 정신이 없었는데 혹시 한 분이라도 기분이 상해서 돌아가셨으면 어쩌지?’ ‘오늘 내가 주변을 잘 돌보았을까?’ 100% 모든 분을 만족시키는 것은 욕심이지만 혹시라도 안 좋은 기억을 가지고 가셨던 손님이 계실까 봐 그게 걱정이 될 때가 있어요.
자신만의 공간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좋아 보이는 것을 하기보다 본인이 좋아하는 걸 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자기만의 소신을 가지고 밀어붙이면 좋을 것 같아요. 본인이 뭘 원하고 좋아하는지는 본인이 제일 잘 알거든요.
이 곳에 오시는 분들에게 클로스가 어떻게 기억되었으면 하시나요?
따뜻했다. 따듯한 공간으로 기억되면 좋겠어요. 편안했고, 기분 나쁜 일이 없었고, 무시당하지 않았고, 무난했다. 그래서 따뜻한 기억으로 다시 오고 싶은 공간이 되면 좋겠어요.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특별한 계획은 없어요. 일단 올해를 잘 버텨보는 것. 1년 안에 또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잖아요. 상황에 따라 제 촉과 감과 우주의 기운을 믿고(웃음) 또 선택을 해야겠죠. 사실 제가 이 동네를 선택했던 건 여유로운 분위기가 좋아서였는데 유입인구가 많아지면서 제가 생각했던 분위기와는 좀 달라졌어요. 실제로 이사를 가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지금은 일단 건강하게 지치지 않고 버티는 게 목표예요. 지치지 않기 위해 제 개인의 삶도 잘 돌보려고요.
그래서 사장님, 지금 행복하신가요?
회사 다닐 때 보다 훨씬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많아졌어요. 일을 하다 보면 정말 모든 타이밍이 다 좋은 순간이 있어요. 날씨도 좋고 적당히 여유롭고 분위기와 잘 맞는 음악이 흐르고 음식을 만드는 제 등 뒤로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분위기가 느껴질 때. ‘아, 이게 행복이구나.’ 싶어요. 반면 나를 돌보는 시간은 많이 줄었어요. 지난 1년이 클로스가 잘 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던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1년은 개인의 삶에도 충실할 수 있기를 바라요.
수형 님과의 인터뷰는 5시간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내려주신 커피를 마시고, LP판을 바꿔가며 음악을 듣고, 와인 한 병을 노나 마시면서 웃고 떠드는 사이 날이 저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따뜻한 조명 색은 그새 깊이를 더했고 수형 님의 섬세하고 다정한 마음, 공간을 사랑하는 마음은 옆자리에 앉은 저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진 공간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어떤 말을 했을 때 그 감정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압니다. 소년 같은 풋풋함과 연륜에서 나오는 배려. 이질적인 것 같은 조합이 참 잘 어울리는 분이 꾸리는 공간은 잘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인지 인터뷰에서 많이 언급되었던 '감과 촉과 우주의 기운'은 어쩌면 그가 부단히 쌓아 온 '취향과 베푸는 마음 그리고 잃지 않았던 다정함의 합'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특별한 날에 방문하는 곳보다는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퇴근을 할 때, 왠지 집에 바로 들어가기는 싫고 고단한 마음을 달래고 싶은 날, 번잡한 마음을 바깥에 두고 집에 들어가고 싶은 날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이 되고 싶었어요."
특별하지 않아서 더 특별한 이 곳은 수형 님의 바람처럼 고단한 하루 끝, 밤공기가 좋은 어느 날, 혹은 음악이 듣고 싶어 지는 순간 문득문득 생각나는 곳으로 기억되길 바라봅니다. 살짝 숨겨져 있는 곳곳의 귀여움과 따뜻함은 글로 보여드릴 수 없으니 직접 오셔서 찾아보세요! 앞으로도 이 작은 공간이 오래도록 따듯하게 그곳에 머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클로스 인스타그램: @clos_to_me
기획 및 글: 라씨&리에
사진: 지노
한 때 같은 직장에서 근무했지만 지금은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셋이 모였습니다. 간헐적으로 만나던 셋이 각자의 장점을 살려 한 달에 한 번 지극히 사적인 인터뷰를 진행해보려고 합니다. 사적인 인터뷰의 대상은 자꾸 찾아가고 싶은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공간 뒤에 숨은 이야기를 자꾸 묻다 보면 공통의 것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우리의 느슨하고도 소중한 프로젝트의 시작이 누군가에게 새로 시작할 용기와 영감이 되면 좋겠습니다.
인스타에서도 만날 수 있어요! @samsamsam.proje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