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사적인 인터뷰 08] 길을 만드는 사람, 김훈 셰프
지난 8월부터 인스타그램에 심심치 않게 올라오던 삼각지의 한 식당. 큼직한 SAM SAM SAM 텍스트와 빨간 어닝이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는 곳. 그곳에 길게 줄 선 사람들을 보며 '도대체 어디길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을까?' 생각하곤 했었습니다. '저기 햇살 비치는 테라스에 앉아서 낮술이나 먹으면 좋겠다~'하는 사이 먹음직스러운 음식 사진에 누군가 삼삼삼 프로젝트를(@samsamsam.project ) 태그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이건 필히 잘못 걸린 태그다! 하며 폭풍 검색을 해보니 삼각지 핫플레이스 쌤쌤쌤(@samsamsam_official)을 발견했습니다.(잘못 태그 한 분들께 심심한 위로를 전하며...) 이것은 운명이다! 요원을 보내 사전답사를 마친 뒤, 삼삼삼이 쌤쌤쌤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이것도 우연인데 저희랑 인터뷰하실래요?"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쌤쌤쌤(samsamsam)'을 운영하고 있는 셰프 김훈입니다.
쌤쌤쌤은 어떤 곳인가요?
쌤쌤쌤은 제가 머물렀던 샌프란시스코의 온도를 느끼고 싶어 만든 공간입니다. 샌프란시스코에 머무는 동안 정말 좋았거든요. 한국과는 다르게 여유가 있었고, 바다도 있고, 온도도 1년 내내 온화했어요. 그런 여유와 온도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 시작한 곳이에요.
음식점을 운영하는 건 여기가 처음인가요?
‘쌉(SAAP)’이라는 태국 음식점을 경리단이랑 연남동에서 3년 정도 운영했었어요. 쌉은 투자를 받아서 운영했다면, ‘쌤쌤쌤(samsamsam)’은 온전히 제가 만든 브랜드라는 것이 다른 점이에요.
요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는데 자연스럽게 회계사 시험을 준비했어요. 2년 정도 공부했는데 ‘아, 이건 20년을 해도 안 되겠다’싶은 거예요. 시험에 떨어지고 여행을 갔어요. 여행을 좋아하는데 돈이 없으니까 카우치 서핑(여행자가 잠잘 수 있는 ‘소파(couch)’를 ‘찾아다니는 것(surfing)’을 뜻하는 말)으로 여행을 했거든요. 매력적인 아이템이 있어야 현지인 분들이 잠자리를 내어주실 거잖아요. 그래서 한식을 해줄 테니 재워달라고 연락을 했어요. 엄마한테 불고기랑 비빔밥 만드는 법을 배워 여행을 떠났죠. 제가 음식을 해주고 상대는 숙박을 제공해주면서 친구가 되는 과정이 참 즐겁고 행복했어요. 그때 처음으로 ‘요리를 업으로 삼아도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요리사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학기 중에는 주방에서 일을 하고 방학 때는 배낭을 메고 떠났어요.
여행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요.
그러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호주로 가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요리 학교를 가려고 했는데 여행을 하다 보니 내가 있는 곳이 바로 ‘학교’가 될 수 있겠더라고요. 여행길에 늘 칼을 챙겼고, 유명하거나 맛있는 식당을 찾으면 그곳에 더 머물며 일을 했어요. 그렇게 실전으로 요리를 배우기 시작한 거예요.
일을 구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요?
미슐랭이나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이 아니더라도 음식이 맛있으면 일을 해보고 싶다고 식당 문을 두드렸어요. 무급으로 식당일을 시작한 거죠. 식당에서는 제 노동력을 쓰고 저는 대신 그들에게 배우는 거예요. 전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20개 남짓되는 식당에서 일을 배웠어요. 멕시코를 여행할 때는 요리에 미쳐 있어서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에 선정된 ‘Pujol’이라는 곳에서 무급으로 일주일에 3~4일씩 일을 했어요.
샌프란시스코에는 언제 머무르셨나요?
호주에 있다가 샌프란으로 간 게 2017년도였을 거예요. 한국에 미슐랭이 정착하기 전, 세계 최고의 식당에서 일해 보기로 결심했어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미슐랭 3 스타 레스토랑인 ‘Quince’의 문을 두드렸어요. 일을 배워보고 싶다고요. 무급으로 1주일 일을 해보고, 식당에서 비자를 지원(400만 원 상당)해줄지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어요. 비자를 지원해 줄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를 식당에서도 테스트해보는 거예요. 그렇게 비자를 지원받아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렇게 샌프란에서의 생활이 시작된 것이군요. Quince(퀸스)에서도 셰프님께 비자를 발급해준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저만의 생각일 수 있지만, 외국에서 일을 해보면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절실함 같은 게 있어요. 깡다구 같은 것? 절실한 마음으로 부딪쳐보는 거예요. 되게끔 만드는 거죠. 그때 생각하니까 갑자기 울컥하는데요.
쌤쌤쌤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더 나눠볼게요. 처음부터 샌프란시스코를 생각하고 쌤쌤쌤을 만든 것인지 궁금해요.
내 가게를 직접 운영해봐야겠다고 결심한 뒤, 공간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이 공간을 처음 보았을 때 테라스가 있는 파스타집을 운영하고 싶더라고요. 처음부터 샌프란을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좋았던 경험을 하나씩 적다 보니 그곳에서 느낀 소중한 기억과 감정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그 느낌을 살려 공간을 만들어 보기로 결심했어요.
지난번 인터뷰를 했던 와인바 ‘클로스’도 그렇고 삼각지에 많은 가게들이 생기고 있어요. 올해 쌤쌤쌤도 삼각지 핫플로 급부상했잖아요. 삼각지였던 이유가 궁금해요.
한남동, 성수동 등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공간을 위주로 찾아봤는데 가격이 너무 비싸서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삼각지에 다양한 가게들이 생겨나고 있어 이곳에 공간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2개월 정도 발품을 팔다 지금의 공간을 발견했어요.
‘쌤쌤쌤’ 이름도 삼각지에서 착안됐다고 들었는데요.
옥수의 옥앤수(jade&water)같이 재밌는 이름도 괜찮겠더라고요. 삼각지에 가게를 여니까 트라이앵글이 연상이 되었고, 삼을 영어로 적으니 영어 이름 ‘Sam(쌤)’이 나왔어요.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미국 사람 이름 같기도 해서 이거다 싶었죠! 그렇게 쌤을 3개 붙여 지금의 쌤쌤쌤(samsamsam)이 되었어요.
오, 저희도 셋이 시작해서 삼삼삼 프로젝트가 되었는데 신기하네요! 장소를 구하고 인테리어를 하는 데까지 소요 시간이 궁금해요.
2021년 3월에 내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5월에 공간을 계약한 뒤, 7월에 오픈을 했어요.
인테리어, 메뉴 개발, 브랜딩 등 모든 준비를 두 달 안에 하신 거네요?
네, 브랜딩 같은 경우는 그전부터 많은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완벽한 브랜딩은 없잖아요. 하다 보면 살이 붙여지기도, 처음의 의도와 달라지기도 하고요. 샌프란시스코를 생각하고 공간을 찾은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쌤쌤쌤이 된 것처럼요.
오픈했을 때 마음이 어떠셨나요.
저는 정말 여기에 다 올인했거든요. 전세금을 빼느라 친구 집에 얹혀살고 있어요. 제가 가진 전재산과 엄마론(웃음)까지 더해서 권리금과 보증금 그리고 인테리어 비용을 충당했어요. 너무너무 간절했어요. 나는 망하면 나락이다 싶었죠.(웃음)
이미 쌉을 운영해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 마음으로 시작하셨는지 몰랐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불안이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지금도 불안해요. 손님이 없어지는 꿈을 꾸기도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픈 동시에 핫플레이스가 되었잖아요. 어떠셨나요?
제가 만든 브랜드잖아요.(눈물) 나 왜 이러지 오늘. 계속 울컥하네요. 제가 만든 브랜드가 많은 분들께 사랑받는다는 것은 짜릿한 일이죠. 이런저런 전략을 세워서 열심히 준비했잖아요.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시니까 고마운 마음이 들었고 자존감도 확 올라갔어요.
음식이 정말 다 맛있어요. 그래서 기다린 시간이 아깝지 않달까. 메뉴 구성을 할 때 어떤 점을 포인트로 두는지 궁금해요.
첫 째는 킬링 콘텐츠예요. 모든 브랜드가 가져야 할 것이기도 하죠. 요즘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파스타에 녹여보고 싶었어요. 작년에 잠봉뵈르 샌드위치가 인기 있었잖아요. 그래서 잠봉을 넣은 파스타를 개발했고요. 뇨끼나 라자냐가 가지고 있는 키워드의 파워가 있다고 생각해서 메뉴를 추가했어요. 둘 째는 샌프란시스코의 감성을 넣었어요. 샌프란이 항구 도시니까 해산물을 사용한 메뉴를 구성하고 싶었고 그렇게 문어 리조또와 해산물 파스타가 추가되었어요.
셰프님의 요리 철학 같은 것이 있을까요?
쌤쌤쌤에 왔을 때 음식뿐만이 아니라 그 시간을 즐기고 가셨으면 좋겠어요. 미슐랭 3 스타 레스토랑에서 일을 할 때 부모님이 샌프란시스코에 오셨거든요. 인당 한 끼에 100만 원 정도 하는 식당이어서 결국 드시지 못하고 가셨어요. 저는 제 또래, 친구들이 부담 없이 와서 즐길 수 있는 요리를 하고 싶어요.
인테리어는 직접 하신 건가요? 공간을 꾸릴 때 어려움은 없으셨는지도 궁금해요.
너무 많았어요. 이 공간은 고재로 둘러싸인 인사동이나 북촌에 가면 있을 법한 전통찻집이었어요. 먼저 막혀있던 공간을 오픈시켰고, 모든 걸 철거하는 것이 아까워서 키친 옆 테이블은 원래 있었던 고재를 개조해서 만들었어요. 미국의 인테리어는 메탈 소재가 많이 사용되고 심플한 것이 많아 제가 느꼈던 샌프란시스코의 감성을 담는 것은 어려웠어요. 조금 더 따뜻한 느낌을 주기 위해 이탈리아 남부가 배경인 영화를 다 찾아봤어요. 특유의 투박하고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을 구현하고 싶었어요.
가장 애정을 담은 곳은 어디인가요?
테라스요. 온화한 날씨에 테라스에서 밥 먹으면서 와인 한 잔 하면 기분이 좋잖아요. 테라스도 원래 없었는데 무조건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쌓아 올려 만든 거예요. 어닝도 고심해서 골랐어요.
손님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특정 공간이 있나요?
테라스 4인용 공간이요. 창이 올라가 있고 우드 테이블에서 햇살이 비칠 때 와인 한잔 하면 딱 좋은 곳, 낮술이 당기는 곳이에요.
쌤쌤쌤을 운영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무엇일까요?
밖에서 웨이팅 하는 분들이 들으면 안 좋아하실 수 있는데요. 저는 웨이팅 하는 손님 분들까지 신경 쓰지 못해요. ‘계단을 밟고 올라오는 순간부터 내 손님이다.’ 이게 제 철학이에요. 가게 안으로 들어온 손님이 만족하고 나갈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어요. 주말에는 5시간씩 기다리는 분들도 계신데 그러면 저라도 뿔이 나있을 것 같거든요. 저에게 돈을 쓰는 분들에게 말 한마디도 따뜻하게, 맛있는 음식과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 공간을 운영하면서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집도 내 마음대로 꾸미면 행복하잖아요. 내 선택과 결정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라 집 같은 느낌이 들어요.
반대로 내 맘 같지 않은 순간들이 있을 것 같은데요. 운영의 어려움 혹은 당황스러웠던 순간들이 있을까요?
너무 많죠.(웃음) 직원이 아파서 못 나온다고 당일 아침에 통보한다거나 전기 용량이 부족해서 요리하는데 차단기가 내려간다거나. 쉬는 시간도 없이 일을 해야 할 때도 있고, 앞이 바로 차도라 웨이팅 공간을 마련하지 못하는 것도 죄송스러운 일이죠.
오픈 후 세 달의 시간이 흘렀는데 어떠세요? 더불어 셰프님의 마음에도 변화가 있는지 궁금해요.
진짜로 하루살이처럼 살고 있어 가지고요.(웃음)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요? 쌤쌤쌤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는데 넥스트를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자신만의 공간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요즘에 재미없는 공간이 많다고 생각해요. 유행을 따라가는 공간은 더 이상 즐거움과 재미를 주지 못하는 것 같아요. 참고는 하되 따라가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색깔을 녹인 공간이어야 나도 행복하고 손님들의 만족도도 높아질 거예요.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요?
요리도 좋지만 무언가를 만들고 그게 실현되는 게 좋아요. 외식업 브랜드를 계속 만들고 싶어요. 제 창작물이 될 수도 있고, 컨설팅 형태가 될 수도 있고요. 많은 것들을 만들고 그것들이 사랑받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셰프님, 지금 행복하신가요?
너무요. 너무 행복해요.(울컥) 오늘따라 마음이 울렁이네요. 제가 연말에 가요대상, 연기대상 같은 걸 많이 봤거든요? 왜 이렇게 상 받으면서 우는 거야 했는데 왜 그런지 알겠어요. 지난 시간에 대한 노고가 주마등처럼 지나가네요.
Sam said “enjoy here, think later”
이곳에 오시는 분들에게 쌤쌤쌤이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시나요?
접시에 있는 문구처럼요.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고민이 있잖아요. 쌤쌤쌤에서만큼은 그런 것 없이 같이 있는 사람이랑 맛있는 음식을 나누고 돌아가며 ‘아, 참 좋았다!’할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하는 중간중간 김훈 셰프의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수십 개의 식당 문을 두드리며 일할 기회를 달라고 말하던 젊은이의 패기와 열정,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에서 일할 기회를 얻기까지의 좌절과 간절함, 가진 돈 전부를 걸고 내 것을 시작할 때의 두려움과 막막함, 스스로를 믿고 갈 수밖에 없어 마음을 다잡고 또 다잡았을 그의 모습을 생각해봅니다. 쌤쌤쌤을 찾아주는 사람들의 긴 줄은 그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고, 간절함이 통했던 거라고, 그렇게 스스로를 믿고 가면 된다고 말해주는 위로였을 거예요.
쌤쌤쌤에 왔을 때 음식뿐만이 아니라 그 시간을 즐기고 가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친구들이 부담 없이 와서 즐길 수 있는 요리를 하고 싶어요.
주저 없이 두드리고, 될 때까지 두드리며 여러 다리를 지나온 그였기에 열두 평 남짓한 공간은 늘 북적이고 웃음으로 가득 찹니다. 여행이 문득 그리워지는 날에, 아무 생각 없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웃고 싶은 날, 쌤쌤쌤을 찾아주세요. 작고 따뜻하게 반짝이는 공간에 들어서면 1만 키로 거리에 있는 샌프란시스코의 따뜻한 햇살과 음식이 여러분을 반겨줄 거예요. 앞으로 쌤쌤쌤이 만들어낼 무한한 상상과 이야기들을 오래오래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쌤쌤쌤 인스타그램 @samsamsam.official
기획 및 글: 라씨&리에
사진: 지노
한 때 같은 직장에서 근무했지만 지금은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셋이 모였습니다. 간헐적으로 만나던 셋이 각자의 장점을 살려 한 달에 한 번 지극히 사적인 인터뷰를 진행해보려고 합니다. 사적인 인터뷰의 대상은 자꾸 찾아가고 싶은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공간 뒤에 숨은 이야기를 자꾸 묻다 보면 공통의 것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우리의 느슨하고도 소중한 프로젝트의 시작이 누군가에게 새로 시작할 용기와 영감이 되면 좋겠습니다.
인스타에서도 만날 수 있어요! @samsamsam.proje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