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판다 Feb 16. 2023

어쩌면 이것도 무소유?

맨날 잃어버리고 다니는 자의 핑계

나갈 준비를 마치고 신발장 앞에 서서 귀에 이어폰을 꽂는다. 요즘 세상에 웬 이어폰이냐, 레트로가 유행이니 그것도 멋이냐 묻는다면 노노. 그저 며칠 전 에어팟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에어팟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드디어 올 것이 왔군



나는 타고난 덜렁이라서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수시로 물건을 잃어버리고 다니는데 우산이나 필통, 열쇠 같은 자잘한 것들부터 시작해 지갑, 화장품 파우치, 가방, 커플링, 귀걸이, 핸드폰, 심지어 아침에 입고 나갔옷에 이르기까지 품목도 다양하다. 그야말로 잃어버리는 것에는 한계가 없음을 증명하는 중이랄까. 

분명히! 가방 안에 넣어뒀는데, 분명히! 손에 들고 있었는데, 분명히! 주머니에 있는 걸 봤었는데 언제 어디서 사라지고 없는지 정말 어리둥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어쨌든 이런 일이 워낙 일상이다 보니  물건을 잃어버려도 당황하거나 놀라않는다. 그저 오늘이 그날이구나, 우리 인연이 여기서 끝났구나 할 뿐.

에어팟 역시 그렇다. 에어팟을 샀던 그 순간부터 이미 나의 미래를 예견했었그날이 되자 덤덤히 받아들였다.

안녕 그동안 고마웠어.




법정 스님이 말씀하셨지.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건 한편으로  그것에 얽매이는 것이라고.

그런 면에서 나는 자유롭다. 내 물건은 나의 소유가 아니라 잠시 스쳐 지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물건에 얽매이지도 않고 그래서 잃어버렸다고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는다. 본의 아니게 무소유 정신을 실천하는 셈이다.


만약 법정 스님이 이 글을 읽는다면 "내가 말한 무소유는 그런 뜻이 아니다"라고 탄식을 하실지 모르지만 그럴 일이 없으니  편한 대로 해석한들 뭐 대수일까.




며칠 사용해 보니 이어폰은 의외로 매우 편하다. 충전할 필요도 없고 떨어트릴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블루투스를 연결하지 않아도 이어폰 잭에 꽂기만 하면 소리가 바로 나오니 손이 훨씬 덜 간다. 이어폰을 챙겨 다니는 나를 보고 남편은 불편하지 않냐며 새로 하나 사라고 하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꼭 필요한 물건만 최소한으로 소유하는 것이 마음의 자유와 평화를 가져온다는 무소유의 본질이 언제부턴가 미니멀리즘이라는 이름으로 소소하게 퍼져나가는 중인 것 같다. 물욕이 많은 나에게는 쉽지 않은 이다.

하지만 이런 ''라면? 잃어버린 물건을 다시 사지 않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무소유, 혹은 미니멀한 삶을 살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작가의 이전글 남편 몰래 보톡스 2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