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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판다 Apr 13. 2023

며느리야 밥 먹었니?밥 먹어라 꼭

너무 잘먹어서 탈이건만

남편이 해외연수를 가장한 해외여행을 떠났다. 월요일에 떠나서 금요일에 돌아오는 3박 5일 일정으로,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아쉽기 짝이 없는 짧은 시간이겠지만 우리가 결혼 생활  내내 하루 이상 떨어진 적이 없었다는 걸 생각하니 나에게는 너무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오빠가 없는 동안 감기가 더 심해지면 어떡하지? 내 간식 조달은 누가 해주고? 나 혼자 어떻게 혼자 있어?나 너무 심심할 것 같은데."


나의 어린애 같은 투정에 남편은 '내가 너의 집사냐'며 그저 어이없어했지만 남편이 집을 나서자마자 거짓말처럼 코피가 두 번 터지는 바람에 울적함이 더 커져 버렸다.  혼자 있을 시간이 진심으로 걱정이 되었다.




이놈의 남편. 얼마나 재밌길래 연락이 이렇게 없나 하며 유난히도 길고 긴 월요일 오후를 보내던 중이었다.

- 수업 없을 때 전화해 다오.

시아버지에게서 카톡이 왔다. 시아버지가 내게 연락하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에 무슨 일이 났나 싶어 바로 전화를 걸었다.


"아버님 저예요. 무슨 일이세요?"

"너 밥은 먹었니?"

"네 아까 점심 먹었어요."

"거짓말하지 마. 밥 안 먹었지?"

"아니에요 진짜 먹었어요. 제가 뭐 하러 그런 걸 거짓말해요."

"너 밥 잘 안 먹잖아."


 시아버지는 그 후로도 의심을 거두지 못하시고 몇 번이나 더 취조하듯 물어보시더니 저녁밥은 꼭 챙겨 먹으라는 당부로 전화를 끊으셨다. 끝까지 점심을 먹었다는 내 말을 믿지 않으신 게 웃겨서 이 통화 내용에 별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그날 밤, 열 시가 넘었을 즈음 걸려 온 전화를 받고 나니 어리둥절해졌다.

이번엔 시어머니였다.


"네 어머니~"

"그래, 퇴근했니?"

"네 집에 왔어요."

"저녁밥은 먹었고?"

"어머니가 싸주신 미역국이랑 불고기 방금 먹었어요."

"잘했다. 혼자 있어도 밥 꼭 먹어야 돼."

"하하. 걱정 마세요 어머니. 잘 챙겨 먹고 있어요."

"그래그래. 그럼 문 잘 잠그고 잘 자라."


응???



그리고 화요일도, 수요일인 오늘도 밤 열 시가 됨과 동시에 시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용건은 한결같았다.

오늘 밥 먹었니?


월요일만 해도 어리둥절했던 나는 어제, 오늘은 저녁에 먹은 메뉴를 하나하나 읊어드렸다.


화요일.

"소고기 볶고 오징어채랑 무김치랑 같이 먹었어요, 어머니."


수요일.
"미역국이랑 시금치나물, 취나물이랑 밥 먹었어요, 어머니."

"그게 아직도 남았어? 밥을 새 모이처럼 먹으니 줄지를 않는구나?"

 "열심히 먹는다고 먹는데 너무 많아요. 아직도 엄청 남았어요."

"아이고~ 밥을 많이 먹어야지. 아무튼 알겠다.  

내일도 밥 먹고 출근하고 저녁에 배고프면 학원 앞에서 맛있는 거 사 먹고 집에 가라."

"네 어머니 그럴게요. 안녕히 주무세요."


사실은 혼자 있으려니 심심해서 그런지 입이 터지는 바람에 사흘  내내 푸드 파이터처럼 먹어댔다. 오늘만 해도 미역국에 말아서 밥 한 그릇 뚝딱하고 파운드케이크 한 판 꿀꺽하고 건망고도 한 통을 털어 먹었다.  이제 막 초코칩 쿠키 봉지도 뜯을 참이었다.

 

며느리가 이렇게 열심히  살을 찌우고 있는지는 까맣게 모른 채 집에 혼자 있다고 혹시라도 굶을까 봐 매일 염려하시는 시부모님이라니. 두 분 모두 놀러간 아들 소식은 하나도 물어보지 않으셨다. 그저 며느리 끼니만 챙기실 뿐이다. 덕분에 남편의 빈자리가 느껴지질 않는다.




따뜻한 시어머니의 목소리 덕에 마음이 말랑말랑해져 있는데 열 두시가 다 되어서야 하루종일 감감무소식이던 남편에게서 카톡이 왔다.

- 술 많이 마셔서 힘들어ㅜㅜ 자야겠다. 혼자 있게 해서 미안해 금방 갈게~


'아니야 오빠. 오빠 없어도 괜찮아. 어머니가 매일 전화주셔.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오빠가 집에 없으니까 편하더라. 저녁 안차려놔도 되고 화장실 물기 제거도 대충 하니까 너무 좋아. 신경쓸 일이 없어서 진짜 좋아. 오빠 거기에 더 오래 있다 와도 될 것 같아.'

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현명한 아내이므로 뒷 말은 삼키고 대답했다.

-괜찮아. 어머니가 매일 전화주셔. 얼른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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