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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판다 Nov 03. 2021

소원을 말해보라는데 왜 벙어리가 되었니?

소원을 말해봐


소녀시대도 아니면서 소원을 말해보란다. 그 뒤로 '작은 소원'이라는 말이 재빠르게 따라붙는다. 쯧쯧.

남편이 램프의 요정 지니가 되기로 한 사건의 경위는 이렇다.




때는 사흘 전. 늦은 저녁을 먹고 고구마도 찌고 설거지를 끝낸 뒤였으니 대략 밤 열 시쯤이었나 보다. 샤워를 하고 나와보니 남편이 열린 싱크대 하부장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종종 보는 모습이라서 그러려니 하고 머리를 말리려는데 남편이 대뜸 내 탓을 했다.

"이거 봐봐. 여보가 아까 설거지할 때 물을 한꺼번에 쏟아서 물이 넘쳤잖아."

그거 조금 쏟아부었다고 물이 넘쳐? 지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축 아파트 배관이 그렇게 부실할 리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며 같이 머리를 들이밀었다. 하부장에 물이 고여있고 거뭇거뭇한 것이 떠있다.

"아까 고구마 씻었지? 봐봐. 흙 섞여있는 거."


나름 추리를 하는 척하는 남편의 말을 무시하고 찬찬히 살펴보았다. 우선 물에 섞여있는 검은 것은 흙이 아니라 물때다. 물때가 끼었다는 건 이미 며칠 전부터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는 뜻일 테고. 그다음은 물이 역류한 흔적이 없다. 대신 수전 호스에 작은 물방울이 하나 맺혀 있다. 위에서 누수가 된 듯했다. 수도를 열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호스를 타고 물이 뚝뚝 떨어진다.

원인은 헐거워진 수전 호스 밸브였고 다시 단단히 조이는 것으로 간단히 해결되었다.



여기에서 잠시 짚고 넘어갈 한 가지.

남편은 뭔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일단 내가 범인이라고 단정 짓는다. 일종의 습관인 셈이다. 문제는 내가 범인일 때도 있고 남편이 범인일 때도 있고 이번 일처럼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경우도 있는데 제대로 알아보기도 전에 덮어놓고 나의 탓으로 몰고 가는 일이 열에 아홉 아닌, 열에 열이라는 점이다. 남편의 입장에서는 아내가 덤벙대고 조심성이 없어서 그렇다고 항변하고 싶겠지만 엄연히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게 있지 않냐는 말이다.

그리고 경험상 내 탓이 아닌 경우가 사실 대부분이었는데도 남편의 '너 때문에'는 어째선지 고쳐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지라 남편에게는 민망하고 나에게는 억울한 상황이 끊임없이 도돌이표를 그리고 있다.




이렇게 제 버릇 남 못주고 또 입방정을 떤 죄를 씻기 위해 남편은 지니가 되기로 한 모양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허리는 공손히 수그리고 손은 가지런히 모으고 서서는 소원을 빌어주십사 하는 중이다.


그런데 이 일을 어쩐다. 빌 소원이 없다.

내가 평소에 비는 소원이라고는 딱 하나, 통장에 십억이 찍히는 것뿐인데 나의 지니는 그 정도의 능력이 없다. 본인도 자기 주제를 잘 알아서 콕 집어 '작은' 소원이라고 했으니 그에 맞는 소소한 소원을 말해야 할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왜지?

머리를 짜내고 짜내 봤자 기껏해야 '겨울 옷이나 사달라고 해?' 정도라니, 이쯤 되면 스스로가 한심하다. 예전에는 이랬으면 좋겠다 저랬으면 좋겠다 원하는 게 참 많았던 것 같은데 어느 틈에 작은 소원 하나 없는 건조한 인간이 되어버린 것일까.


이러다가는 남편이 기다리다 지쳐 "소원 수리 취소!"를 외칠지도 모르겠다. 소중한 기회를 날릴 수는 없다는 압박감에 '내가 뭘 좋아했더라? 나는 뭘 할 때 행복을 느끼더라? 내가 원하는 게 뭘까?' 하고 틈만 나면 고민하게 되었는데 가만 보니 이거 자아탐구가 따로 없다. 남편 덕분에 본의 아니게 나라는 존재에 대해 진지하게 들여다보게 되었으니 고마워해야 할 지도.


아무튼 그래서 나는 아직도 소원을 찾는 중이다. 아무래도 시간이 한참은 더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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