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육아와 언어치료 공부 등으로 한동안 잊고 지내던 미술치료. 올 초부터 기억을 더듬으며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림 투사 검사는 언어를 기반으로 한 자기 보고식 검사에 비해 피검자의 방어가 개입될 여지가 거의 없어 효과적이다. 상담 시 그림을 토대로 내담자(상담을 받는 사람)의 속내에 접근하기 쉬운 장점이 있다.
훈에게 집, 나무, 사람 그림 검사(HTP)를 적용해 보았다. 가족은 상담자가 될 수 없다(다른 이해 관계도 마찬가지). 이중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에 상담이 불가능하다. 그림을 보며 훈이 언어로 미처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을 짐작하고 엄마로서 참고하기 위해 해보았다. 본인이 정확히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감정이나 욕구들도 많을 거고, 때로는 처리되지 못한 부정적 감정이 사회적으로 부적절한 방법으로 표현되기도 하기에. 그런 면은 누구나 어느 정도씩 갖고 있지만, 감정의 미세한 차이에 대한 인식이나 사회적 상황에 맞는 표현, 추상적 개념 이해 등에 특히 더 어려움을 갖는 아이에게는 보다 세심한 돌봄이 필요하다 여겼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사람들이 와서 절을 하는 나무'
아이는 생명의 나무와 아들 나무를 함께 그렸다. 부모님 나무는 100세이고 건강하지만, 언젠가 죽으면 하늘나라로 잘 올라갈 수 있도록 명복을 빌어주고 싶다고 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사람들이 찾아와 자신도 하늘나라에 가게 해달라고 빌면서 절을 하는 나무란다. 옆의 아들 나무는 현재는 필요한 것이 없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실까 봐 걱정하고 있다.
나무에 대한 아들의 설명을 들으며 먹먹하고 애틋한 심정에 말을 잇지 못할 뻔했지만 애써 누르며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마저 듣고 추가적인 질문을 마무리했다. 10여 년밖에 안 되는 짧은 삶 동안 이 아이는 벌써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부모님이 곁에 오래 머물기를 바라며, 먼저 돌아가실까 걱정하는 마음이라니….
저학년 때는 친구들과 몸놀이도 자주 했었다. 학교나 학원 등 주변 환경에서 긍정적인 관계 경험이 아예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양적으로, 질적으로 아들의 욕구에 못 미쳤나 보다. 내가 경험한 바로도 장애를 지원하는 사회적 시스템이 비장애인 중심이다. 막상 장애 학생의 개별적 필요와 요구를 반영한 지원은 별로 없다. 아무것도 없던 시절보다는 많이 나아진 것 아니냐고 한다면 그건 맞다. 조선 시대보다는 지금이 낫습죠, 암요….
아들의 나무 그림을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 나 역시 그동안 지나치게 내 중심으로 아이들의 장애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이보다 하루 더 살고 싶은 장애 아이 부모의 마음'만 알았지, '부모보다 하루 덜 살고 싶은 아이의 마음'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다. 성장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부모 외의 사람들로 관계의 폭이 넓혀지고 다양한 감정을 주고받는 사람들과 달리, 아들은 자신의 욕구를 세련되게 드러낼 수도 없었고 충족시킬 수도 없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실까 불안하다는 건, 부모처럼 감정을 교류하고 추억을 공유하는 사람을 찾고 싶다는 뜻이기도 하다.
'장애인활동지원사 서비스'라는 것이 있다. 장애인의 이동, 가사, 기본적인 의사소통과 활동 등을 지원하는 서비스다. 훈이 중학생이 되면서 활동지원사를 연계해 주는 센터에 연락하여 중학교 수학 지도가 가능한 선생님을 찾아주시기를 부탁드렸다. 말하면서도 별 기대는 없었다. 최저 시급의 일이고 주로 아이들을 다 키워 놓은 연세 지긋하신 여성분들이 지원사로 일하신다. 수학 지도가 가능한 고급 인력이 과연 계실까? 그래도 혹시나…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인연이 있을 수도 있잖아? 말이라도 해보지 뭐…, 그냥 그런 마음으로 부탁했다.
일반 아이들처럼 아무 학원이나 골라 보낼 수가 없다. 수학은 개념 설명도 까다롭고 학원에서 성취감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아이는 불안을 드러낼 수도 있고, 불안을 드러내는 방식에 누군가 까칠하게 반응할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문제 행동 증가와 불거지는 갈등…이런 일련의 과정이 그간의 경험으로 머릿속에 그려지는 바이다. 물론 의외로 잘 적응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근거 없는 희망에 도전하기엔 너무 지쳤다. 더욱이 학원은 이익 중심의 개인 사업이다. 아마 내가 활동지원사 서비스 이용자 최초로 수학 지도를 요청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서비스 지원 내용이 주로 일상생활 보조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얼마 후 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수학 지도가 가능한 남자 선생님이 계신다고! 선생님 경험은 없지만 수학 관련 전공을 하신 분이라 중학교 수학 정도는 미리 예습하면 가르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단다. 사춘기 아들에게는 남자 선생님도 괜찮다. 아이의 속도에 맞춰 꾸준히 새로운 지식에 도전하고, 조금씩이라도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면 충분히 의미가 있다.
나는 아이의 '성취감'을 염두에 두고 선생님을 구했는데, 그 이상으로 훈의 관계 욕구와 현실의 간극에 디딤돌이 되어주셨다. 평일에는 아이와 수학 공부를 하고, 주말에는 이곳저곳 함께 다니셨다. 가족 아닌 누군가를 의지하고 추억을 쌓는 경험이 훈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주었는지, 학교에서의 모습도 더 편안해졌다고 한다. 이러다가 또 갑자기 변수가 생길 수도 있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아이의 의견을 최우선으로 존중하시는 선생님의 태도를 훈도 느꼈을 것이다.
오랜 시간 치매 노모를 홀로 돌보셨던 선생님은 훈을 참 예뻐하신다. 무리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려도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주고 싶다며 아이가 원하는 물건을 검색하신다. 서로에게 아픔을 털어내고 나아갈 수 있는 디딤돌이 되어주길 기도하는 마음이다.
'장애인은 대충 먹고, 자고, 일상생활만 도와주면 되는 거 아니야?'라는 인식보다는, 성장함에 따라 여느 사람처럼 생겨나는 욕구와 필요가 있고 거기에 따른 세분된 지원이 이루어져야 함을 인식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최저 시급뿐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도 많아져 다양한 일자리 창출로상부상조하는 관계가 되면 좋겠다.
어떤 길은 돌고 돌아 온갖 가시밭길을 지나서라도 결국 쉴만한 땅에 도착하고, 어떤 길은 쌩쌩 달려 편하게 가다가 앞에 절벽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더라도 끝내 자신만의 천국으로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아들이 되길 믿고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