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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수 Oct 20. 2024

소설보다 더 소설같이, 잃어버린 역사의 흔적이 드러난다

김성연 저, <아니다 거기 있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42933634&start=pnaver_02


서평

나는 주로 원서를 번역하다보니 주로 서양의 역사를 접한다. 역사소설을 번역하던 중, 비잔티움 제국 마지막 황제의 비장한 결말과 이에 영감을 바든 19세기의 그리스 독립 운동의 과정을 알게됐다. 그리스의 독립운동가들이 조국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보면서, 묘하게 우리나라의 일제강점기 역사와 겹쳐보였다(그리스와 튀르키예는 이웃나라이면서 식민지와 피식민지 관계이다. 이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와 유사할지도 모른다). 사실 많은 나라들이 식민지배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서양 굴지의 박물관들을 보면, 자신들이 식민지배했던 나라의 문화재를 많이 갖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마음 한편에 우리나라의 잃어버린 역사, 잃어버린 문화재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고 죄책감을 느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역사에 조금 더 관심을 갖기 위해 읽은 책이 <아니다 거기 있었다>이다,


<아니다 거기 있었다>는 저자가 일본에서 구루시마 다케히코의 평전을 준비하기 위해, 야마구치 현립도서관을 찾았다가 우연히 일제강점기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의 사진에서 '조선관'을 발견하면서, 잃어버린 '조선관'의 흔적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집필한 작품이다. 1장, 2장은 우연히 야마구치에서 조선관이 있었다는 증거를 발견한 뒤 도서관과 건설회사 등을 수소문하며 조선관을 찾아내는 과정을, 3장에서는 사비에루 공원 근처의 집 창고에서 조선관, 즉 경복궁 '선원전' 현판을 목격하는 모습을, 4장은 현판을 숨기기 위해 현판이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과정을, 5장과 6장은 저자가 데라우치 마사타케의 행적과 경복궁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데라우치가 왜 선원전을 이전하려했는지, 우리나라의 문화재들이 어떻게 사라져갔는지 추리하는 과정을 그려낸다. 


책을 처음 펼쳤을 때, 눈에 들어온 구절은 간문(프롤로그)의 '그것이 거기 있었다'였다. 책 제목인 '아니다 거기 있었다'와 묘하게 겹치면서 대비되는 구절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저자가 그토록 찾아 해매던 '선원전(璿源殿)'의 현판을 의미한다. 그런데 왜 제목은 '그것이'가 아니라 '아니다'라고 했을까? 그 이유는 책 앞표지에 적힌 구절을 보면 알 수 있다.


선원전은 그런 곳이었다. 나라의 혼과 정기가 모여 있는 곳, 조선조 왕들의 역사와 그 얼이 서려 있는 곳


선원전을 이전한 장본인인 데라우치는 조선을 이상하리만큼 사랑하던 사람이었다. 자신을 백제 임성태자의 후손이라고, 자신의 조상인 조선과 현재 자신이 사는 나라인 일본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일선동조론), 조선인들을 일본인처럼 교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일본 내각총리대신으로 임명되어 일본으로 돌아가야 했을 때, 조선 왕들의 어진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선원전을 일본으로 이전하려고 했다. 그는 꼼꼼하면서 치밀하고, 청렴결백한 사람이었기에 문화재를 훔친다고 세간에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았기에(경복궁 부속물을 경매로 팔아넘긴 것이 모순이긴 해도), 조선의 선원전 부속물을 철거한 뒤 일본으로 옮겼다. 실제로 데라우치는 1915년 조선 총독부 회의실에서 "내가 조선말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할 정도로, 조선인과 일본인을 하나로 만드는 데 착실했던 인물이었다. 그랬던 그가 조선관에 대해서는 한 줄의 기록도 남기지 않고, 유언도 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다. 어쩌면 저자는 일제강점기의 문을 연 데라우치의 무서울 정도로 치밀한 문화재 약탈을 부정하기 위해, '아니다 거기 있었다'라고 제목을 지었을 지 모른다.


저자는 야마구치 도서관에서 조선관의 흔적을 발견했을 때부터, 데라우치의 비밀을 찾고 선원전 현판을 발견하기까지 고군분투했는데, 집은 철거되고 현판이 이전됐다. 그러면 현판은 어디로 갔을까?


결말을 스포하자면, 해피엔딩이다. 2023년 12월 26일, 후쿠오카 경매가 시작되었고 우리나라의 문화재청에서 현판을 환수해갔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나라로 돌아간 문화재를 떠올리며, 선원전이 어떻게 사라졌는지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고 한다. 추가적으로, 올해 4월에 덕수궁 선원전이 개방되었다는 뉴스가 올라왔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1/0004332929?sid=103


안타깝게도, 경복궁 선원전은 모두 헐렸고 현재 그곳에는 국립민속박물관이 있다고 한다. 일제에 의해 헐려서 사라지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혔던 경복궁 선원전에 관심을 갖게 해주고 선원전의 흔적을 추적하기 위해 고생했던 저자분께 깊은 감사를 전한다. 이 책을 통해 많은 독자가 잃어버린 문화재, 아픈 역사에 대해 일말의 관심을 갖기를 바란다.



인용구

조금 눈의 힘을 풀고 천천히 살폈다. 그것을.
璿源殿
'선원전'이었다. -본문 3장 87쪽에서
역사의 아이러니로 그가 그렇게 철저히 숨기고자 했기에 오히려 건물이 다 부서지는 악천후 속에서도 이 현판만은 살아남았다. -본문 4장 104쪽에서
울타리 왼쪽 나무를 잘라 훤히 보이도록 할 법도 하건만 선원전은 나무와 콘크리트에 가려 보일 듯 말 듯 그렇게 숨죽인 채 존재해야만 했다. -본문 6장 190쪽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아 올라가며 스스로 조선을 뿌리에 두고 있다고 생각한 데라우치가 그 '뿌리'를 드러내고 싶기도 하고, 감추고 싶기도 한 그 복잡미묘한 이중심리를 담아내는 궁궐로 선원전만 한 것도 없었을 것이다. -본문 6장 200쪽에서
한국의 모든 사람에게 알려야겠다, 우리의 '옥의 뿌리'인 선원전이 어디서 어떻게 뜯기고 숨겨지고 사라져야 했는지 알려야겠다. -본문 6장 211쪽에서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우리나라의 잃어버린 문화재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          

            한국 근현대사(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          

            소설보다 더 극적인 현실 속 역사 추리물을 보고 싶으신 분들          




저자: 김성연

• 1978년 11월 11일 부산 기장 출생

• 일본 규슈대학 대학원 비교사회문화학부 일본사회문화 전공(문학 박사)

• 제48회 구루시마 다케히코 문화상 수상(외국인 최초, 최연소 수상)

• 제34회 일본아동문학학회 장려상 수상

• 제39회 이와야 사자나미 문예상 특별상 수상(최연소 수상)

• 제81회 서일본문화상 수상

• 현재 일본 오이타현 구스마치 구루시마 다케히코 기념관 관장


선원전이 어떤 곳이었는지, 왜 일본 총독이 선원전을 숨겼을지, 선원전이 어떻게 우리나라로 돌아오는지 알고 싶다면...이 책을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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