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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수 Nov 04. 2021

사랑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에게 내미는 손길

최희숙, 『우리는 함께 자란다』

2021년 9월 27일, 최희숙 작가(필명: 한국어 교원)의 에세이 『우리는 함께 자란다』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작가님의 브런치 계정에서 진행한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었고 작가님께서 집필하신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책을 받고 겉표지를 보니, 산뜻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함께 자란다'라는 제목, '선생님이 아이에게 배우는 사랑', 선생님과 아이가 함께 있는 모습이 함께 어우러져 '아기자기한 동화'를 만들고 있었지요. 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동화'는 허구의 이야기이지만, 이 작품은 작가의 실제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이지요. '에세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책을 한 장, 한 장 펼쳤습니다.




원래 한국어 강사였던 작가는 성인 외국인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일자리를 잃은 뒤, 무기력과 우울감에 빠져 지냈죠. 그러다가 우연찮게, '찾아가는 한국어 교육'이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됩니다. 다문화 아이들 중 한국어 교육이 필요한 아이들을 교사가 직접 찾아가는 프로그램이지요. 작가는 프로그램을 신청한 뒤, 유치원에서 '진수'라는 아이를 만납니다. 담임교사의 말에 따르면, 진수는 부모님이 모두 외국인이지만 한국어를 잘하는 편이었습니다. 선생님의 말도 잘 알아듣고요.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선생님에게 반말을 하고, 말을 안 듣고, 단체 놀이도 참여하지 않고, 심지어 친구를 때리기까지 하는 아이였다는 것이죠. 작가는 '한국어 교육'을 하기 위해 왔는데, 유치원에서 요구하는 것은 '유아교육'이었죠. 한 번도 아이를 가르쳐본 적 없는 작가는 곤란스러워합니다.


작가는 아이를 교육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합니다. 유아 교육에 대해 잘 아는 동료 선생님과 지인들에게 질문을 하고, 오은영 박사님의 영상을 찾아보고, 행동 교정에 관한 논문을 찾아보는 등 교육에 대한 지식을 최대한 습득하죠. 동료 선생님은 작가에게 조언을 합니다. '아이에게 사랑을 주라'고요. 그리고 다음 날, 작가는 진수를 만나러 유치원을 갑니다. 과연, 작가는 진수를 잘 교육할 수 있을까요?


책은 쉽고 빨리 읽히는 편입니다. 문체도 깔끔하고 내용도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한 번만 읽고 치우기에는 아까운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번 곱씹고 싶은 장면 두 가지가 있었거든요. 첫 번째는 4장의 '우리 같이 하늘을 날아볼까?'입니다. 진수는 책을 유독 싫어했습니다. 책만 보면 소리를 지르고 도망갔죠. 작가는 진수와 책이 친해지도록 하기 위해 다이소로 갑니다. 다이소에서 스티커를 산 뒤, 스티커를 책에 붙이며 연기를 했죠. 각종 과일과 음식 스티커를 동물들에게 붙이면서요. '바나나 스티커'를 붙일 때는 바나나 먹는 연기를 보여주고, 원숭이 입속에다가 바나나 스티커를 붙이는 식이었죠. 진수는 서서히 책에 관심을 보입니다. 그러다가 3주 후에, 진수는 책에 그려진 강아지를 보고 웃습니다. 작가는 책을 보고 피하지 않는 진수를 보고 기뻐합니다. 그런데 진수는 장난감에 적힌 글자만 보고도 몸서리를 칩니다. 진수는 정말 글자를 싫어하는 걸까요? 작가는 아래와 같이 추측합니다.


진수는 친구들보다 확실히 언어 능력이 떨어졌고, 그래서 친구들에게 거리감을 느낀다. 친구들 사이의 거리감을 더 벌린 것이 바로 글자이다. 그래서 아마 '글자는 나를 힘들게 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 같았다.
-p.157, 『우리는 함께 자란다』 4장에서


진수 또래 아이들은 이미 집에서 한글 교육을 받았기에, 유치원에서는 따로 한글 교육을 하지 않았습니다. 진수도 한국어를 잘했지만, 감정이 북받치거나 중요한 순간에는 잘 알아듣지 못했죠. 하지만 진수는 한국어를 모른다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보이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요. 작가는 진수의 글자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기 위해, 색칠 공부 책, 단어 카드 등을 가져가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책에 있는 뽀로로 캐릭터, 로켓 캐릭터를 가지고 몸소 연기를 펼치자 진수는 웃으면서 좋아했죠.


두 번째는 3장의 '선생님이 오해해서 미안해'입니다. 진수가 싫어하는 것이 하나 더 있었으니, 바로 정리정돈이었습니다. 진수에게 정리하자고 말하면, 말을 못 알아듣는 척 딴청을 피우고 도망가거나 그것도 안 통하면 짜증을 내며 끝까지 치우지 않겠다고 버텼죠. 작가는 '놀이가 끝나면 반드시 정리를 해야 한다'를 알려주기 위해 정리하라고 말한 뒤, 진수가 정리를 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3주가 지나자, 진수는 시키는 일을 어느 정도 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어느 날, 진수가 딴짓만 합니다. 분명 장난감을 치우라고 했는데요. 몇 번 잔소리했지만 소용없었죠. 그러다 '혹시' 하는 생각에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장난감 저기 상자 안에 넣어놔.


그러자 진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장난감을 상자 안에 넣었죠. 작가는 오해했다는 것을 깨닫고 진수에게 사과했습니다. 작가는 진수가 정리하는 것을 싫어해서 말을 안 듣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진수는 장난감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 몰라서 머뭇거렸기 때문이죠. 이때 말고도 진수를 오해한 경우가 또 있었습니다. 진수가 짜증을 잘 내고 친구들의 장난감을 자주 빼앗는 경우가 많았는데, 알고 보니 친구들과 놀다가 '자기가 잘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 짜증을 내는 것이었죠. 하지만 남들 눈에는 진수가 한국어를 잘했기 때문에, 남들 눈에는 '짜증을 잘 내는 아이'로 보인 것입니다. 친구들에게서 장난감을 빌리고 싶은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무작정 장난감을 빼앗다 보니, '장난감을 빼앗는 아이'로 보인 거고요.


 장면은 (14세기의 낙인, 21세기의 낙인 -에세이를 읽고)에서 한 번 소개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마침, 제가 연재하고 있는 칸타쿠지노스가 생각나서 유독 인상 깊게 남은 장면이었달까요. '색안경'이 사람을 어떻게 바꾸어놓았는지 단박에 알 수 있었거든요. 작가가 진수를 만나기 전에, 담임교사는 '선생님에게 반말을 하고, 말을 안 듣고, 단체 놀이도 참여하지 않고, 심지어 친구를 때리기까지 하는 아이'라고 말했죠. 작가는 '문제아'라는 '색안경'을 벗기 위해 노력했지만, 막상 중요한 순간에는 '색안경'을 끼고 진수를 오해했습니다. (여담이지만, 진수가 선생님께 반말을 한 이유는 순전히 '선생님께 존댓말을 해야 한다'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화내지 않고 몇 번 '이렇게 말하는 거야'하고 알려주니 진수가 존댓말을 하기 시작했거든요. 단체 놀이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서'였고요). 어쩌면, 겉모습만 보고 낀 '색안경' 때문에, 아이에 대한 이미지가 굳어지고 아이를 방치하다 보니, 진짜 '문제아'가 된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합니다. 하지만 진수의 본모습을 알아본 작가의 헌신 덕에 진수는 서서히 변하기 시작합니다. 살짝... 결말을 알려드리자면, 진수는 선생님을 위로하는 아이가 됩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우울하고 무기력에 빠져 있던 작가도 진수를 교육하면서 활기를 되찾고요.




대충 읽으면, '선생님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평범한 동화입니다. 하지만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아쉬움이 커지고, 곱씹고 싶은 장면들이 넘쳐나는 작품이었죠. 노포에 가서 메뉴판만 보면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음식들인데, 먹다 보면 이모님의 노하우가 느껴지는 음식 같달까요. 매스컴에 자주 나오는 셀럽의 작품을 읽을 때와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코러스>의 마티유 선생님이나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님보다는 <학교2013>의 정인재 선생님과 <블랙독>의 고하늘 선생님을 더 닮은 것 같았죠(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이유는 생략하겠습니다).


책장을 넘기면서, 공감 가는 대목이 또 있었습니다. 5장에서 '내 전공이 진성 문과라 전공을 살려 취업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같다. 그런 내게 한국어 교사라는 직업은 꽤 솔깃하게 다가왔다'라는 대목이었죠. 저는 이 대목을 읽고 메모를 해놨죠. '저도 그랬어요. 작가님'이라고요. 저도 같은 전공이고 교직을 얻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한국어 교육 봉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저의 경우 단기 봉사였고 학생들도 반항 없이 잘 따랐기에 순조롭게 끝났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장을 넘긴 뒤, 너무 학습적인 면에서만 접근한 게 아닐까, 학생들과 정을 나누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작가님이 진수에게 헌신했던 것처럼, 저도 아이들을 좀 더 사랑해 줄걸.' 하고요.


제게 『우리는 함께 자란다』는 팍팍한 현실 속에서 미소를 지어주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평소, 브런치에서만 뵙다가 에세이로 작가님의 내밀한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서 친근감도 느껴졌고요. 작가님의 작품이 많이 알려지기를 바라며, 작가님의 브런치 주소를 알려드립니다. 출간 축하드립니다. 작가님:)


유치원 선생님들은 나에게 말씀하셨다.
나 덕분에 진수가 변하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진수 덕분에 내가 변하고 있었다.
나로 인해 아이가 변하고, 아이 덕분에 내가 변한다.
그리고 잃어버렸던 꿈을 다시 찾았다.
그때처럼, 내가 처음 한국어를 가르쳤을 때처럼.
-책 뒤표지에서


*블로그에도 서평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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