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연수 Oct 17. 2021

14세기의 낙인, 21세기의 낙인 -에세이를 읽고

(2)심심해서 풀어보는 나의 일상 두번째

14세기 동로마(비잔티움) 제국에 칸타쿠제노스라는 대신이 있었습니다. 그는 주군이자 친구였던 황제 안드로니코스 3세가 황위에 오르도록 도왔죠. 안드로니코스는 그를 공동황제로 삼으려 했습니다. 그는 정중히 거절했죠. 안드로니코스의 아들 요안니스가 황제가 되어야 나라가 안정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안드로니코스가 죽고 아들 요안니스가 9살의 나이에 황제가 됩니다. 칸타쿠제노스는 섭정이 되어 요안니스 5세를 충실히 보필하죠. 사비를 털어(나라에 돈이 없어요 ㅠㅠ 세금도 안 걷히고요) 군대를 재건하고 기강을 바로잡죠. 하지만 황태후와 총대주교는 군사 주도권을 쥔 그를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쟤가 반란을 일으키면 어쩌지'라고 생각하면서요. 칸타쿠제노스가 반역을 일으키는 것을 막기 위해 여러번 섭정 자리에서 내쫓으려 하지만 실패합니다. 하지만 1341년, 그가 원정을 나갔을 때 황태후와 총대주교는 그의 집안을 텁니다. 그의 집에서는 각종 금은보화가 나왔죠. 가난에 찌들은 백성들은 이를 보고 분노합니다. 칸타쿠제노스에게 '죽일 놈'이라고 욕을 했죠. 황태후와 총대주교는 이렇게 백성들의 지지를 얻습니다. 그리고 칸타쿠제노스의 재산을 몰수하고 그의 친척들을 감금하거나 추방합니다. 어머니는 감금된 뒤 굶어죽죠. 백성들은 칸타쿠제노스를 욕하기 시작합니다. 칸타쿠제노스는 원정이 끝났지만, 돌아갈 곳이 없게 됩니다. 평생 재산을 사적으로 쓰지 않고 나라를 위해 썼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반역자'라는 꼬리표였죠. 군대는 그에게 쿠데타를 일으키자고 부추깁니다. 그는 군대의 의견을 받아들입니다. 그는 스스로 황제를 자처하고 군대를 이끌고 수도 콘스탄티노플로 갑니다.


최근 제가 에세이 한 편을 읽고 있습니다. '우울하고 무기력에 빠져 있는' 저자가 '천방지축 사고뭉치'인 진수를 가르치면서 성장하는 이야기이지요. 유치원에서는 구제불능이라고 여겨 손 놓고 있었죠. 선생님한테 반말하거나 기분이 나쁘면 친구들에게 종종 화를 냈거든요. 한 번도 아이들을 가르친 적 없는 저자는 어떻게 아이를 가르쳐야하나 고민합니다. 저자는 아이를 만났고 유치원에서 말한 대로, 아이는 선생님에게 반말을 썼죠. 저자는 화내지 않고 먼저 아이와 친해지기로 결심합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게임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거나 단어 카드를 이용해 아이와 말할 기회를 늘려갑니다. 인형 놀이도 하고 색칠 공부도 하고요. 아이는 점점 저자에게 친밀감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존댓말도 사용하고요.


그런데 아이는 정리 정돈을 싫어했죠. 그래서 저자는 초고 과자로 유혹(?)하며 아이와 함께 정리 정돈하는 습관을 기르죠.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터집니다. 저자는 아이에게 이 장난감을 제자리에 갖다 놓으라고 합니다. 근데 아이는 딴 짓만 해요. 저자는 갑자기 아이가 말을 안 듣자 이상하게 여깁니다. 얘가 왜 말을 안 듣나...하면서요. 그러자, 무언가 떠오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죠.


이 장난감 저기 상자 안에 넣어놔.


그러자 아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장난감을 상자 안에 넣습니다. 아이는 장난감이 원래 어디에 있던 건지 몰라서 치우지 못했던 거죠. 저자는 깨달았습니다. 내가 오해했다는 것을요. 그리고 아이에게 사과하면서, 앞으로 '어디에서 가지고 왔는지 몰랐다고' 말해야 한다고 가르치죠.


아이는 왜 선생님께 여쭈어보지 않았을까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으니까요. 아이의 부모님은 모두 외국인으로, 아이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했지만 정작 감정이 북받치거나 결정적인 순간에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친구들에게 종종 화를 내는 이유도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상황에 맞게 제대로 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남들과 달라 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어떻게 말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털어 놓지 못하고 무작정 화를 냈죠(선생님에게 반말하는 이유도 순전히 '선생님에게 존댓말을 해야 한다'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구제불능'이라는 낙인 때문에 아이가 소외감을 느끼고 점점 더 비뚤어진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합니다.


에세이를 읽으면서, 이상하게 칸타쿠제노스의 일화가 떠오르더군요. 본인은 반역을 저지를 생각이 없었는데, 본인의 지위 때문에 '반역자'라고 의심받다가 결국 진짜 반역자가 되어버린 이야기요. 어쩌면 아이가 '문제아'가 된 이유도 무의식적인 낙인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른 친구들과 달리, 외국인 부모를 두었기에 말이 서툴렀지만 남들과 다르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모르겠다고 말하지 못하고 무작정 화를 내고...그 모습을 보면서 선생님들은 '문제아'라고 생각하고...아이는 친구들과 선생님에게서 소외감을 느끼고, 진짜 '문제아'가 되어버린 게 아닐까.


아아, 제가 이렇게 마음대로 추측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을 글로 남기는 것도 하나의 '낙인'이 되는 게 아닐까 두려웠거든요. 위의 글은 어디까지나 제 생각을 기록한 것일 뿐이니, 제 생각을 하나의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ㅠㅠ(쓰면서 손이 떨립니다..)



(ps. 이건 정식 서평이 아닙니다. 그냥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쓴 거예요. 정식 서평은 10월 말에서 11월 초에 올라갑니다. 좀더 상세하고 정갈하게 쓰되, 메시지는 이번 글과 비슷하지 않을까 추측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작가님).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가 취미가 되는 이 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