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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수 Oct 09. 2021

브런치가 취미가 되는 이 순간

(1)심심해서 풀어보는 나의 일상 첫번째

몽골의 대칸, 오코타이 칸은 술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전쟁을 하든, 집에서 쉬든 항상 술을 끼고 다녔죠. 형 차가타이는 그런 동생을 걱정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그만 마시라고 외치고 싶었겠지만, 그래도 대칸아닙니까. 조심스레 충고해야죠. 차가타이는 동생에게 하루에 한 잔만 마시라고 권했습니다. 자신의 문제를 잘 아는 오고타이는 형의 충고를 순순히 따랐습니다. 하지만 며칠 지나니, 입이 근질거렸습니다. 술을 질끔질끔 마시니, 더 참을 수 없었던 겁니다. 그렇다고 형의 말을 어길 수도 없고...그는 머리를 굴렸습니다. 그리고 양푼만한 술잔을 만들어냅니다. 그냥, 양푼에다가 술을 한 가득 따라놓고 퍼마셨죠. 그리고 '한 잔' 마셨으니, 됐다. 라고 자화자찬했다는 일화입니다. 


이 일화를 보면, '사람은 안 변한다', '술은 끊기 어렵다'는 교훈을 줍니다. 그런데 저는 이 일화를 보고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너무 어렵게 생각했나?  


사실, 저는 9월 말에 백신을 맞은 뒤 번역과 소설에서 손을 놓았습니다. 노는데 시간을 쓰고 있었죠. 역사 커뮤니티와 나무위키를 둘러보면서요. 그렇게 놀다가 2주가 지난 후에야 브런치에 들어왔습니다. 


놀면서 비잔티움의 황제들 이야기를 보고 있었죠. 콘스탄티누스 대제부터 콘스탄티노스 11세의 이야기들을요....이게 무슨 소리냐!! 어떻게 역사를 보면서 놀 수 있지?? 의문을 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제가 미쳤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평소 글을 쓰거나 번역을 위해 원서나 사료를 훑을 때와 심심해서 커뮤니티를 둘러볼 때의 무게감은 확연히 차이났습니다. '위엄 있는 황제'에서 '황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변한 것 같달까요. 그래요. 황제들도, 저도 상황과 시대가 달라도 인간이라는 건 똑같아요. 브런치도 마찬가지죠. 


브런치는 흔히 일상을 담은 에세이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역사를 다루는 작가님들은 잘 보이지 않아요. 제가 구독을 맺은 작가님들이 계시지만, 아무래도 조사하는데 시간이 걸려서 그럴까요. 텀이 깁니다. 저도 일주일에 2개 이상을 넘겨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브런치가 부담스러워졌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번역가에 도전하면서 느낀 점을 담기 위해, 브런치를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역사인물을 소개하는 공간이 되어버렸죠. 다들 제가 애정하는 인물들이라, 쓰면서 뿌듯하지만 한편으로 공허함이 느껴졌습니다. 남의 이야기만 풀다보니, 제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점이 말이죠. 가뜩이나, 백수라서 만나는 사람도 없는데, 소통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니 점점 외로워졌어요. 주위에 번역하는 사람도 없고요. 


그래! 생각의 틀을 바꾸자고 결심했습니다. 브런치를 공부의 대상, 업무의 대상(돈 한푼 못 벌고 오로지 제 열정만으로 하는 업무죠 ㅎㅎ)이 아니라 취미로 생각하자고요. 그냥 제 썰을 풀어놓는 곳으로요. 술을 더 먹기 위해 양푼으로 바꾸고 '한 잔만 마셨어'라고 자화자찬하던 오고타이 칸처럼, 저도 브런치에 제 생각을 실컷 풀어 놓고 '글 한편 썼어'라고 자화자찬하는 거죠. 


사실, 3주 내내 비잔티움 책만 읽느라 다른 것은 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비잔티움사가 좋기도 하지만, 이미 손 떼버린 번역을 다시 접하기 두렵기 때문인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수준 높은 번역가분들과 작가분들을 보면서 비교도 많이 하고요.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으니, 저를 위해 열심히 일하시는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어쩌면 현실을 회피하기 위해 취미로 파고든 건 아닐까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현실을 직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현실을 직시하려면 눈에 보여야 하니 글로 써야죠 ㅎㅎ 


오고타이는 술잔을 바꾸면서까지 술을 마시고 싶었던 걸까요? 하지만 지나치게 많이 마시면 몸에 안 좋죠. 사람의 체온은 36.5도입니다. 39~40도까지 올라가면 병나요. 열정도 좋지만 너무 뜨거우면 안 좋아요.

'역사가 버린 2인자'의 마지막 인물을 다루기 전,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제 생각을 풀어보았습니다:)


앞으로 심심할 때마다, 이 매거진에 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쓰고 나니 너무 부끄러워요....길거리에서 발가벗고 춤추는 느낌이려나요...간단하게 일기 써도 이런데, 평소 에세이 쓰시는 분들은 어떻게 쓰셨는지..존경스럽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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