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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로움 Mar 31. 2021

지금도 생생한 그날의 기억

내 아이가 희귀 유전질환자라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2012년 12월,

17개월 즈음 아이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아이를 일찍 재우고 밤새 아이를 케어해야 할 상황을 예상해 우리 부부도 일찍 잠자리에 누웠다. 한참 뒤 잘 자던 아이가 갑자기 컹컹하는 소리를 냈다. 가벼운 기침소리인가 하고 무시하려는데 뭔가 불길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일어나 아이를 들여다보니 의식이 없는 것이다. 열을 재보니 40도, 열성 경련이었다. 너무 당황스러워 부들부들 거리는 몸과 마음으로 친정 엄마부터 큰소리로 깨웠다. 응급실에 가려고 급히 준비를 하는 동안 친정 엄마가 아이를 안고 물수건을 해주니 아이가 울면서 깨어났다.


아직도 이때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내가 그때 아이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그 소리를 무시했었다면... 정말 끔찍하다.


우리는 아이를 안고 가까운 병원 응급실로 갔다. 진찰 결과 후두염이었다. 후두염이 생기면 그런 기침소리가 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다행히 해열제와 수액으로 아이의 열은 내려갔다.


그런데,

아이를 본 담당의가 조심스럽게 우리에게 유전학과 진료를 한번 보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희귀 질환이 의심된다고... 당시 아이는 머리카락이 거의 없고 치아가 겨우 1개만 있었는데, 이것이 그 희귀 질환의 증상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그저 아이의 발달이 늦은 것이라고만 생각했고, 정말 한 번도 무슨 질환이 있는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희귀 질환이라니! 동네 소아과에서도 전혀 들은 바가 없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일단 담당의의 제안에 따라 유전학과 예약을 하긴 했지만 나는 아닐 거라고, 아니여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럴 리가 없다고... 그리고 크게 염려하지도 않았다.


며칠 뒤 나는 외근 때문에 병원에 가지를 못하고 남편이 오후 반차를 내고 친정엄마와 함께 아이를 데리고 유전학과 진료를 받으러 갔다. 회사 동료의 차를 타고 이동하는 길, 남편의 카톡이 왔다. 희귀 유전질환이 의심이 되나 아직은 너무 어리기 때문에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쪼그라든 심장과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붙들고 있고 옆에서 동료가 떠드는 소리는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던, 울고 싶은데 울 수 없었던 동료의 차 보조석에 앉은 내가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그 동료는 나에게 뭘 그렇게 카톡을 열심히 하느냐고 기분이 상한 듯 말하는데, 나는 그의 시답잖은 소리를 들을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인터넷으로 그 질환에 대해서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정보를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주요 증상이 아이의 모습과 비슷했고 나의 불안감은 점점 높아져갔다. 너무 어이가 없고 믿을 수가 없었다. 내 아이가 희귀 유전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기가 힘들었고 그런 모습으로 태어나게 한 것이 너무나도 죄스럽고 미안했다. 이 아이가 성장하면서 주변으로부터 겪게 될 아픔과 슬픔, 그리고 내가 겪어야 할 시선들을 과연 이겨낼 수 있을까 걱정되고 또 걱정되었다.


나는 지금 당장 그 질환이 맞는지 아닌지 확진을 받고 싶었다. 그래야 나의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어쩌면 여전히 아닐 거라는 생각으로 그 아니라는 말을 빨리 듣고 싶다는 간절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왕이면 케이스가 많을 것 같은 병원, 서울대병원으로 다시 예약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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