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유로움 Apr 06. 2021

존재 그대로 수용하기

아들아, 사랑해.

고등학교 생물시간에 부모와 자녀의 유전자형에 대해 유전 가계도를 그려서 보는 방법을 배운 적이 있을 것이다. 이것을 실제로 나에게 써먹는 일이 생기다니! 우리의 유전 가계도가 그려졌다. 엄마인 나 또한 heterozygous carrier 로서 동일한 돌연변이가 발견되었다. 여자는 성염색체가 XX 이기 때문에 하나에 돌연변이가 있어도 증상이 없거나 경미하다. 하지만 남자는 XY 염색체로 X에 변이가 발견되면 100% 증상이 발현된다. 우리 부모님은 증상이 없으니 정상이고, 여동생의 검사 결과 또한 정상이었다. 남편은 정상이니 우리 부부에게 아이의 경우는 25%의 확률이다.


나는 이 희귀 유전질환에 대한 유전자 변이를 가진 보인 자였다. 내가 원인이었던 것이다. 물론 나는 전혀 알지 못했고 의도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아이가 이렇게 된 것이 모두 나 때문이었던 것이다.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고 눈물만 흘렀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 당시 나는, 다른 사람들은 정상적인 평범한 아이를 잘 낳고 사는데 도대체 나는 왜 이런 시련을 겪어야 하냐고,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내 삶은 평탄하지 않냐고 세상을 원망했다.


그리고 부모님이 나와 아이를 이렇게 만들었다며 부모님을 원망했다. 사실 나는 증상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는 경미한 증상이 있었는데, 나에게 좀 관심을 가지고 왜 그런 증상이 있는지 적극적으로 진료를 받고 찾아보았더라면 내가 진작에 알았을 테고, 그러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를 왜 이렇게 낳았냐고 하늘에 계신 아빠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는 엄마를 속으로 원망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아이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고, 아이에게 그리고 남편에게 정말 미안했다. '내가 남편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우리 남편이 이런 고통을 겪지 않았을 텐데, 그럼 우리 아이는 더 좋은 모습으로 태어났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다. 이것은 나 때문이라는 죄스러운 마음과 사랑의 표현이었다.


나는 그렇게 죄책감과 원망스러움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몇 년 전에 EBS 다큐프라임 <부모와 다른 아이들>이라는 방송을 보게 되었다. 2부 장애인 편에 출연하신 김원영 작가님을 보고 그분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이라는 책을 읽었다. 작가님은 골형성 부전증이라는 선천적 장애를 가진 변호사이자 연극배우로도 활동하고 계신다.


나는 그 책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장애를 가진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나았다는 생각으로 산부인과 의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잘못된 삶' 소송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님은 실격당한 존재, 잘못된 삶이 아니라, 장애를 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장애를 극복해야 하고 없애야 할 것이 아니라 삶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한다.


나는 그동안 아이를 존재 그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모습 그대로가 나의 아이인데, 이것을 부정하고 자꾸만 다른 모습이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아이에게 미안해했다. 그런데 이것이야 말로 내가 아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할 일이었다.


덕분에 이제 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잘 움직이고 잘 배우고 잘 쓰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우리는 누구나 취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아들아, 너는 너 자체로 존엄하고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란다. 엄마의 아들로 태어나줘서 정말 고마워. 엄마는 너의 엄마라서 행복하단다.


작가의 이전글 유전자 검사를 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