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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카제 Jul 17. 2022

[나의해방일지 리뷰4]
추앙, 그 완벽한 사랑에 대하여

사랑의 진화, 추앙으로 나아가자! 

추앙, 그 완벽한 사랑에 대하여


추앙; (명) 높이 받들어 우러러 봄.
        (영) Worship


추앙이라니...

이 단어를 드라마에서 처음 들었을 때 그 생경함을 잊을 수 없다. 단어 하나에 몇날 며칠을 고민하는 것이 작가들의 삶인 걸 익히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박해영 작가가 이 단어를 고르기 위해 몇밤을 보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런 노력과는 별개로 이 단어가 주는 이물감과 당황스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몇주가 흐른 후 나도 자연스럽게 그 뜻을 이해하는 이들과 추앙이란 단어를 쓰고 있었다. 마치 이 단어가 처음부터 일상어였던 것처럼 말이다.


왜 추앙일까? 추앙의 이물감은 과함에서 나온다. 높이 받들어 우러를 존재는 일상의 존재가 아니기에 우리는 이 말을 일상어로 쓰지 않았다. 최소한 신적 존재에 대한 절대적 충성과 깊은 존경을 품은 말이기에 과해도 될 정도의 표현이었다. 그런데 남도 아닌 자신을 추앙하라는 미정의 말은 그 자체로도 도발에 가깝다.


이 드라마에서 추앙은 어떤 의미일까. 

그 출발점은 사랑이다. 하지만 사랑으로는 부족하기에 이 단어가 탄생했다.


작가가 말하는 사랑은 더없이 얄팍하다. 너와 나 사이에서 조금의 손해도 보기싫어 뭐 맡겨놓은 사람처럼 추궁하는 관계이다. 문자메세지, 데이트 약속 하나에 주도귄을 뺏기고 하나라도 더 줄까봐 일부러 상대를 속태우는 관계이다. 상대를 통해 그럴싸한 나를 찾고,그가 나에게 무얼 줄 수 있는지 끊임없이 계산하고, 오지 않는 카톡 답장에도 바로 보복하는 사랑. 상대가 날 수 있게 되면 좋겠다가도 내게서 날아갈까 날개를 꺽어버리고 싶은 이기적인 사랑. 갈구와 미충족 사이에 무너지는 그런 사랑말이다.


"세상 사랑을 다 쓸어 먹어도 안채워질거다. 갈구하지마! 다 줘!
전사처럼 폭발해버려!"


이 현아의 말은 사랑은 갈구로 채워지지 않으며, 오히려 상대를 채움으로 나를 채울 수 있다는 역설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추앙이 등장한 것이다.


그저 수용되고 충만하게 채워진 경험, 부모에게조차 받지못했다는 그 감정을 우린 누구에게 받길 원하는가. 맡겨놓은 사람처럼 사랑하는 상대에게 갈구해도, 그도 채워지지 않았기에 서로 더 내어놓으라 다툼이 시작되고 만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성경구절의 의미가 추앙을 탐구하다보니 다시 와닿는다. 


그 사랑의 의미는 과연 상대에게 친절을 베풀고, 아끼는 척 이쁜 말로 기분을 맞추는 사랑이 아니리라. 

사랑 받을 만한 이에게 받을 만큼, 그 이가 한 만큼, 내가 받은 만큼 주라는 말도 아니리라. 조건없이 존재에 대한 무한한 사랑으로 그의 구원을 위해 목숨까지 내어줄 정도로 충만하게 사랑하라 했기에 오히려 그것은 

추앙에 가깝다.


인생의 수많은 개새끼들을 환대할 수 있는 것도 추앙의 결과리라. 창희가 현아를 떠나면서 진심으로 그녀의 행복을 바라며 무릎꿇고 그녀에게 하는 얘기를 들으니 마음에 슬픔이 차 올랐다. 자신의 찌질한 모습을 들켜 그 자존심 하나 지켜보겠다고 이별 앞에서 악다구니하던 예전 창희와 비교하니 더욱 그랬다.

갑자기 떠난다는 그에게 화는 나지 않는다는 미정이처럼, 자신을 떠난 이를 향해 감기 한 번 걸리지 않게 기도하는 미정이처럼 추앙은 아름답다.



하지만 추앙이 상대에게 맞추어 퍼주는 사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추앙의 주체는 나이고, 상대를 채움으로 내가 채워지는 것이다. 나를 갉아먹으며 내 살을 깍아 상대를 먹이는 것은 사랑도, 추앙도 아니다. 그래서 추앙하는 나도, 상대도 당당하고 솔직할 수 있다. 받을 것 생각하지 않고 보내고 싶을 때 보내는 미정이의 문자처럼, 상대에게 누구보다 솔직하게 좋아하는 감정을 표현하는 기정이처럼 서로 연민하고, 품고, 사랑하며 내 안을 사랑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다. 상대가 바닥을 긴다해도 쪽팔려하지 않고 인간대인간으로 응원하는것, 

화려한 꽃병이 아닌 간장종지에 초라하게 누운 장미 모가지조차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것, 내 안에 충만한 

마음으로 상처 준 이들도 환대하는 것이 사랑이다.


제대로된 사랑, 추앙을 하게 되면 미정이처럼 자기가 사랑스러워질까? 

누군가를 미워하면 몸에 썩은 물이 돌듯, 괴로움이 세포 하나하나까지 퍼지지만 사랑은 다르다.

추앙으로 내가 채워지길 바란다. 내가 사랑스러워지길 바란다.

계산하지 않고 누군가를 추앙해보자. 그럼 나도 해방되고 상대도 해방될 수 있다. 

우리 진짜 추앙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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