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카제 Jul 15. 2022

[주택살이 1] 난 주택에 산다

매일 직장에서 집으로 떠나는 여행

회사에서 5분거리에 살던 3년 전, 어느날 이유없는 피로감이 몰려왔다.

워킹맘의 일상이야 피곤의 연속이지만,

문득 집 앞만 나가도 번잡스러운 거리와 도로, 도시의 소음들이 무척 힘들게 느껴졌다.

영혼을 털리고 퇴근하면 가로등이 켜지듯 다시 불이 켜지는 느낌이랄까.

내 안에 절대로 꺼지지 않는 스위치가 있는 느낌이었다.  


나의 친정은 용인이다. 용인에는 이쁜 주택단지가 많다.

특히 친정 근처의 주택단지는 아파트 숲 사이에 나즈막히 내려앉은 주택들이 낮은 담장 너머로

계절마다 꽃을 피워대는 그런 동네이다.

다른 곳에도 주택단지는 꽤 있지만, 판교나 죽전 등은 대부분 높은 담으로 둘러쳐져

그들만의 성을 보는 것 같다. 부자 동네의 위상은 드러낼지 모르지만, 사람사는 맛과 냄새는 나지 않는다.


종종 친정을 방문하면 주택단지 산책을 했다. 예쁜 집들을 보는 재미가 꽤 쏠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접근하기엔, 너무 비쌌다. 몇년을 보아왔지만 주택단지 가격도 지속적으로 우상향을 하고 있었기에 막연히 더 오르면 난 아예 이 동네에 진입할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와 산책을 하다 홀린듯 들어선 골목에 완전 반해버렸다.

수없이 다녔던 주택단지인데, 마지막 블럭 그 골목은 처음이었다. 집들이 마주보고 있는 구조가 아닌 산을 마주보고 있는 마지막 블럭. 여기는 시골 그 자체였다. 조용하고, 바로 앞에 산이 정원이었다.

몇몇 집들이 산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 중 유독 정원이 예쁜 집이 있었다.

'마음 속으로 이 집에 살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여느때처럼 시세나 물어보려 부동산에 들렀다. 그런데 그날따라 사장님이 좋은 집이 나왔는데, 보러 가겠냐는 것이다. 흔쾌히 엄마와 나는 따라 나섰고, 그뒤에 만난 집은 거짓말같이 아까 마음속에 그리던 바로 그집이었다.


이런 운명같은 만남으로 우리와 그 집의 인연은 시작되었고, 가족들의 결단, 무리한 대출을 통해 나는 그 집의 주인이 되었다. 1시간이 넘는 출퇴근 시간이 걸리고, 아이가 전학을 가야했지만 당시에는 전혀 신경쓰이지 않았다. 마당이 있는 집, 숲과 새가 있는 조용한 단독주택의 꿈을 이뤘다는 들뜸 뿐이었다.


이사온 첫날 새소리와 함께 잠에서 깨고나서 엄청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드디어 내 스위치가 꺼진 기분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주택살이 6] 바람멍을 아시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