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카제 Jul 30. 2022

[주택살이 10] 구절초의 배신

개화의 어긋남을 통해 배운 시간의 진리

이사 온 해 주택단지  아들 친구네 마당에 가득 핀 구절초를 보고 한눈에 반했었다. 연신 들여다보며 예쁘다는 나의 칭찬에 친구 엄마가 선뜻 캐서 심으라며 인심을 썼다.


그다음 해 봄,

엄마와 나는 그 집 정원 한 귀퉁이에 쑥과 닮은 구절초 싹을 삽으로 떠 우리 마당에 옮겨 심었다.

하지만 그 해 가을, 아쉽게도 우리는 꽃을 보지 못했다. 그러고 나서 두 해가 지나고 우리 마당 가득 구절초 꽃 피었다.

항상 예상은 빗나간다.

당연한 자연의 섭리라 믿은 개화의 배신을 통해 나는 또 한 번 깨닫는다. 내 인생에 수많은 결실의 시간이 나를 배신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자연의 섭리라는 것을 말이다. 

내가 바라던 시간, 예측한 시간은 보란 듯이 빗나가고 그 계절 내내 고집스럽게 푸른 잎만 무성하던 구절초를 보며 나의 것이 아닌 시간이 있다는 당연한 진리를 새삼 깨닫는다.

그리고 힘들게 그 시간을 보내며 그렇게 바라던 꽃 무더기를 잊을 때 즈음 얄궂게도 해사한 얼굴을 내미는 것이 인생이란 것도 말이다.


요즘은 마당에 꽃이 그 해 피지 않는다고 해서 놀라지 않는다. 그 아이의 시간이 아닌 것일 뿐이니까. 올해 조금 힘든 것뿐이니까. 그 아이의 시간이 되면 불현듯 반갑게 얼굴 보여줄 테니 난 더 이상 조급해하지 않는다.


구절초


두 해 전 심었지만,

오늘에서야 너의 얼굴을 보았다.


가녀린 어깨를 지닌 수줍은 색시처럼

해사한 너를 보고 질투가 났다.


때를 알아 너의 시간에 그저 가볍게 피어나

미소 머금고 해맑게 앉아있는 널 보며

 두해 꽃 기다리며 애달팠던 건 그저 나의 마음.


너의 시간이 오니 넌 망울을 터뜨리며

무수히 잔잔한 꽃들을 내어놓았다.


너의 시간이 나의 때가 아닌 것을

난 오늘에야 알았다.

작가의 이전글 실감한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