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 미사를 드리고 이런저런 볼 일을 보다 시계를 보니 오후 1시다. 배가 고프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재촉해 집에 들어서는 데 거실 쪽에 낯선 물건이 눈에 띈다. 커다란 화분과 A4용지.
'꽃이 당신만큼이나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펑퍼짐한 남편 필체다.
고맙긴 한데... 뭔가 아쉽다.
내 허리춤까지 올라오는 화분 크기에 보랏빛 꽃들이 한 아름 피어 있었지만 어수선해 보였고, 화분은 흰색 플라스틱에다흙은 채워지지 않아 줄기와 잎이 누렇게 변하고 있는 게 고스란히 보였다. 정원에 심으면 제격이련만. 아내 취향을 아직도 모르는 건지 외면하는 건지. 마냥 행복해하기도 언짢아하기도 어려워 어정쩡한 가운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감동에 겨운 말 한 마디를 해야하는데..
남편 눈에는 꽃만 보였으리라.
"아빠, 아빠는 언제까지가 신혼이었어?"
결혼하면 설렘도 유통기한이 있다는 걸 어디서 들었는지 신혼 두 달째인 딸이 물었다.
"아빠는 지금도 설레"
"......"
딸은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코웃음을 쳤다. 병 주고 약 준다는 말이 이런 때 필요하다고 말하려다 참았다. 말 한마디에 분위기 망칠 이유도 없고 지금도 설레며 산다는데 나쁠 거야 없지싶었다.
노란불과 빨간불 사이의 신호등을 초록불로 생각하는 남편에게 어제도 한마디 했다.매사에 '그럴 수도 있지'를 적용하는 남편과 지킬 건 지켜야 한다는 내 주장은 우리 부부의 끝없는 토론 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