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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글 Sep 24. 2022

꽃만 본다

오전 10시 미사를 드리고 이런저런 볼 일을 보다 시계를 보니 오후 1시다. 배가 고프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촉해 집에 들어서는 데 거실 쪽에 낯선 물건이 눈에 띈다. 커다란 화분과 A4용지.

'꽃이 당신만큼이나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펑퍼짐한 남편 필체다.

고맙긴 한데... 뭔가 아쉽다.


내 허리춤까지 올라오는 화분 크기에 보랏빛 꽃들이 한 아름 피어 있었지만 어수선해 보였고, 화분은 흰색 플라스틱에다  흙은 채워지지 않아 줄기와 잎이 누렇게 변하고 있는 게 고스란히 보였다. 정원에 심으면 제격이련만. 아내 취향을 아직도 모르는 건지 외면하는 건지. 마냥 행복해하기도 언짢아하기도 어려워 어정쩡한 가운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감동에 겨운 말 한 마디를 해야하는데..


남편 눈에는 꽃만 보였으리라.


"아빠,  아빠는 언제까지가 신혼이었어?"

결혼하면 설렘도 유통기한이 있다는 걸 어디서 들었는지 신혼 두 달째인 딸이 물었다.

"아빠는 지금도 설레"

"......"

딸은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코웃음을 쳤다. 병 주고 약 준다는 말이 이런 때 필요하다고 말하려다 참았다. 말 한마디에 분위기 망칠 이유도 없고 지금도 설레며 산다는데 나쁠 거야 없지 싶었다.


노란불과 빨간불 사이의 신호등을 초록불로 생각하는 남편에게 어제도 한마디 했다. 매사에 '그럴 수도 있지'를 적용하는 남편과 지킬 건 지켜야 한다는 내 주장은 우리 부부의 끝없는 토론 주제다.


"꽃 사다 주는 것만 사랑이 아니야. 싫어하는 것을 안 하는 것도 사랑이야"


꼭 한마디 하고 넘어가는 습관은 쉬 없어지지 않는다. 꽃 이야기는 뭐하러 들먹였는지.


꽃을 보고 아내가 생각났다는 마음만 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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