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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글 Jun 19. 2023

손주와 놀아요

"너~~무 이쁜데 힘들어요.ㅎㅎㅎ"

손주가 며칠씩 왔다 가고 나면 지인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모두 공감하며 너도나도 에피소드를 늘어놓지만 눈빛은 사랑으로 가득하다. 말하자면 행복한 비명이다.

 

작은 딸이 올 초에 아이를 출산했다. 집 근처에 살게 되어 아쉬움 없이 볼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첫 손주는 서울에 살고 있어 어린이집을 다니고 큰딸이 복직하면서 자주 볼 수없었다. 커가는 모습이 확연한데 순간순간을 놓치는 게 늘 아쉬웠. 만날 때마다 성큼성큼 성장해서 벌써 여섯 살이다. 이번 방문때는 을 읽고 글도 쓰는데 놀랍기만 했다. 처음 글을 읽기 시작할 때, 첫 글자를 쓸 때, 더듬거리며 서툴었을 그 모습 궁금다.


두 번째 손주 은우는 5개월째다. 일주일에 한 번 잠깐 보는 정도인할머니를 알아보는 것 같아 즐겁다. 볼 때마다 생김새의 변화가 느껴지고 품에 안아보면 전해오는 체중에도 차이가 있다. 팔 힘이 약한 나로선 흐뭇하면서도 대안을 생각한다. 유모차를 끌고 다닐까 포대기로 업는 게 나을까 궁리 중이다. 


감기몸살로 2주일을 건너뛰고 만났다. 젖을 떼어서인지 볼살이 좀 줄어들고 눈동자도 더  똘망똘망했다. 뚫어져라 나를 바라보는 폼이 눈에 익히는 중인지 탐색 중인지 알 수가 없었다. 요즘 잠을 자려면 엄마 품만 찾는다고 하는데 외할머니에 대한 반응이 사뭇 염려스러웠다. 엄마껌딱지 시기를 건너뛰었으면 좋겠다.


잠시 딸은 볼 일을 보러 나가고 단 둘이 놀게 되었다. 쇼파에 기대어 무릎과 배 위에 손주를 앉히고 눈 맞춤을 했다. 은우는 과묵한? 편이다. 아주 가끔 옹알이를 할  뿐 대부분 나 혼자 독백이다. "으응~. 그랬어요? 할머니 보고 싶었어요? 그랬구나. 그동안 잘 지냈어요? 그랬구나. 많이 컸네요. 아쿠! 손 힘도 좋아졌어요. 일어서고 싶어요? 그럴까요?..." 단 한 사람의 관객 앞에서 묻고 답하고 노래 부르고 원맨쇼를 한다.


얼마쯤 지났을까. 졸린 듯 머리를 긁더니 소리를 질렀다. 아마도 잠틋을 하나 본데 어쩌지? 어디가 불편한가? 잠시 허둥대다 불현듯 딸애가 많이 불러주는 숫자송이 떠올랐다. 유튜브에서 노래를 찾았다. 익숙한 리듬에 귀를 기울이더니 조용했. 그 틈에 손주를 안고 토닥토닥, 거실을 왔다 갔다 흥얼거렸다. 움직임이 잦아들고 철썩 내 품에 모든 걸 맡기는 순간, 손주가 잠이 들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발걸음도 사뿐사뿐 숨소리를 죽이고 방으로 향했다. 


라라스라고 하는 토끼모양 쿠션눕히고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미션 완성! 잠자는 천사를 보는 듯하다. 세상에 이런 이쁜 애기가 또 있을까. 아이가  잠잘  가장 예쁘다말은 세대를 이어주는 육아의 진리가 틀림없다.


우리 아이들을 키울 때도 그랬. 아이가 잠들면 지친 마음에 뭉게구름이 피어났다. 곁에 누워 잠을 자면 피곤이 풀리련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아까운 시간이었다. 책을 읽을까. 기저귀를 개켜놓을까. 다른 방으로 숨어 들어가 전화로 수다를 떨까 등등. 혼자만의 여유를 느껴보려 그 시간은 왜 그리도 빨리 지나가던지. 


손주가 잠들자마자 딸애가 왔다. 곧 깨어나겠지만 잠시나마 쉬는 시간을 선물한 것처럼 기쁘다. 집으로 오는 발걸음도 가볍다. 한 시간 남짓, 손주와의 놀이는 완벽했다. 딸에게서 문자가 왔다.


"엄마 고마워. 다음에 같이 밥 먹장."


30여 년 전,  육아를 도와주던 친정엄마의 오늘이 생각난다. 


잠잘 때 더 예쁜 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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