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가 며칠씩 왔다 가고 나면 지인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모두 공감하며 너도나도 에피소드를 늘어놓지만 눈빛은 사랑으로 가득하다. 말하자면 행복한 비명이다.
작은 딸이 올 초에 아이를 출산했다. 집 근처에 살게 되어 아쉬움 없이 볼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첫 손주는 서울에 살고 있어 어린이집을 다니고 큰딸이 복직하면서 자주 볼 수없었다. 커가는 모습이 확연한데 순간순간을 놓치는 게 늘 아쉬웠다. 만날 때마다 성큼성큼 성장해서 벌써 여섯 살이다. 이번방문때는 책을 읽고 글도 쓰는데 놀랍기만 했다. 처음 글을 읽기 시작할 때, 첫 글자를 쓸 때, 더듬거리며 서툴었을 그 모습이더 궁금했다.
두 번째 손주 은우는 5개월째다. 일주일에 한 번 잠깐 보는정도인데 할머니를 알아보는 것 같아 즐겁다. 볼 때마다 생김새의 변화가 느껴지고 품에 안아보면 전해오는 체중에도 차이가 있다. 팔 힘이 약한 나로선 흐뭇하면서도 대안을 생각한다. 유모차를 끌고 다닐까 포대기로 업는 게 나을까 궁리 중이다.
감기몸살로 2주일을 건너뛰고 만났다. 젖을 떼어서인지 볼살이 좀 줄어들고 눈동자도 더 똘망똘망했다. 뚫어져라 나를 바라보는 폼이 눈에 익히는 중인지 탐색 중인지 알 수가없었다. 요즘 잠을 자려면 엄마 품만 찾는다고 하는데 외할머니에 대한 반응이 사뭇염려스러웠다. 엄마껌딱지 시기를 건너뛰었으면 좋겠다.
잠시 딸은 볼 일을 보러 나가고 단 둘이 놀게 되었다. 쇼파에 기대어 무릎과 배위에 손주를 앉히고 눈 맞춤을 했다. 은우는 과묵한? 편이다. 아주 가끔 옹알이를 할 뿐 대부분 나 혼자 독백이다. "으응~. 그랬어요? 할머니 보고 싶었어요? 그랬구나. 그동안 잘 지냈어요? 그랬구나. 많이 컸네요. 아쿠! 손 힘도 좋아졌어요. 일어서고 싶어요? 그럴까요?..." 단 한 사람의 관객 앞에서 묻고 답하고 노래 부르고 원맨쇼를한다.
얼마쯤 지났을까. 졸린 듯 머리를 긁더니 소리를 질렀다. 아마도 잠틋을 하나 본데 어쩌지? 어디가 불편한가? 잠시 허둥대다 불현듯 딸애가 많이 불러주는 숫자송이 떠올랐다. 유튜브에서노래를 찾았다. 익숙한 리듬에 귀를 기울이더니 조용했다.그 틈에 손주를 안고 토닥토닥, 거실을 왔다 갔다 흥얼거렸다. 움직임이 잦아들고 철썩 내품에 모든 걸 맡기는순간, 손주가 잠이 들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발걸음도 사뿐사뿐 숨소리를 죽이고 방으로 향했다.
라라스라고 하는 토끼모양 쿠션에 눕히고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미션 완성! 잠자는 천사를 보는 듯하다. 세상에 이런 이쁜 애기가 또 있을까.아이가 잠잘 때 가장 예쁘다는 말은 세대를 이어주는 육아의 진리가 틀림없다.
우리 아이들을 키울 때도 그랬다. 아이가 잠들면 지친마음에 뭉게구름이 피어났다. 곁에 누워 잠을 자면 피곤이 풀리련만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아까운 시간이었다. 책을 읽을까. 기저귀를 개켜놓을까. 다른 방으로 숨어 들어가 전화로 수다를 떨까 등등. 혼자만의 여유를 느껴보려는 그 시간은 왜 그리도 빨리 지나가던지.
손주가 잠들자마자 딸애가 왔다. 곧 깨어나겠지만 잠시나마 쉬는 시간을 선물한 것처럼 기쁘다. 집으로 오는 발걸음도가볍다. 한 시간 남짓, 손주와의 놀이는 완벽했다. 딸에게서 문자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