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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 Jul 16. 2024

건강한 어른으로 살면 좋겠어

 지금 우리 부서 인원은 열두 명인데 그 중 두 명이 최근 5년 내 암 수술을 받았다. 둘 다 지금의 직장을 다니던 중 삼십대의 나이에 암에 걸렸다. 최근에는 옆 부서에서 또 우리 또래의 동료직원이 암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다행히 다들 초기에 발견해 수술로 잘 마무리하긴 했지만 소문에 어두운 내 주변에만 이 정도면 대체 이 회사에 암에 걸린(걸렸던)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득해진다. 지난번에 일했던 부서에도 암 수술한 직원이 있었고, 배우자가 암 수술을 하게 된 사람도 있었다. 내가 지금 말한 케이스는 모두 여자들인데 그건 아마 내가 대체로 여자 동료들과 친하게 지내는 편이라 그럴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간단한 수술이고 초기 암이라고 해도 이들 대부분이 쥐도새도 모르게 가만히 수술하고 며칠 휴가쓰고 금세 업무에 복귀한다. 이게 직장생활의 엄혹함인가...? 밥벌이가 무섭긴 하지만 이런 경우 제도적으로 휴직이 가능하기도 하고 반년 정도는 쉬면서 경과도 보고 정양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은데, 다들 '맞아, 그 때 좀 쉬었어야 하는데' 라며 피곤한 얼굴로 여전히 무리해서 일하고 있다.

 

 내가 친하게 지낸 동생들 중에 동갑내기 두 여자아이가 있었다. 

 한 명은 대학을 졸업한지 5년쯤 지나 다른 길을 찾아 다시 수능 준비를 했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은 것도 있고, 본인이 워낙 독립적인 성격이기도 해서 독서실 총무 알바를 해가며 2년간 공부한 끝에 원하던 대학, 원하던 과에 합격했다. 너 진짜 훌륭하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나는 이십대 후반의 나이에 다른 직업경로를 위해 인생을 걸기엔 이미 겁이 너무 많았다. 그만큼 원하는 바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의 도전과 결실이, 나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지만 정말 멋진 장면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시작된 새로운 대학생활, 다시 맞이한 새내기의 파릇한 하루하루... 그애는 한학기를 못 채우고 뛰어내려 죽었다. 그 나이에 수능공부를 다시 해서 대학에 다시 가기까지 분명 컴컴하게 어둡고 막막한 시절이 있었을 텐데 그걸 잘 이겨내고는 남들이 보기에 드디어 꽃길인가 싶을 때 그렇게 가버렸다. 


 다른 친한 동생 한 명은 예체능 계열로 그 분야의 명문대를 쉬엄쉬엄 천천히 졸업하고, 취업활동이나 추가적인 진학활동에 조금의 관심도 갖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집에 눌러앉았다. 그애의 부모님은 자식 하나를 건사할 충분한 재력과 애정이 있었고 내가 알기로는 취업을 재촉하거나 백수니 어쩌니 하는 압박을 전혀 주지 않았다. 그애는 지병 때문에 외식이 어려운 아빠를 위해 정성껏 다양한 식사를 차리며 요리실력이 일취월장한 채 온가족이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물론 십 년 뒤, 이십 년 뒤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참 보기 좋다. 너는 어떻게 어린 나이에 그렇게 본인에게 딱 맞지만 흔치 않은 라이프스타일을 택했냐고 물어보자 '언니, 나는 사람들하고 부대끼고 사회적으로 얽히는 게 싫었어. 그냥 돈 별로 안쓰고 엄마, 아빠랑 사는 게 좋아' 라고 상당히 소박하지만 굳건한 대답을 들려주었다. 


 일부러 그 두 사람을 비교하는 건 아니지만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그 둘이 한 쌍으로 생각날 때가 많다. 간절한 노력이나 성취욕이 안 좋다는 게 아니라, 우리는 너무 앞을 생각지 않고, 고통을 그저 감내하기만 하고, 정신적으로 힘들 때 전문적인 도움을 받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일하다 생긴 지병으로 고생하던 직장 동료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 그와 아주 친하지는 않았음에도 오래도록 생각이 났다. 그의 지병에 대해 웃음을 섞어서 나눴던 대화가 반복해서 생각났고, 그의 죽음이 너무나 비현실적이고 어이없다는 느낌이 자꾸 맴돌았다. 참나... 진짜 어찌 그래... 참나.... 이런 혼잣말을 속으로 자꾸 되뇌였다.


 아이가 나에게 '엄마는 내가 커서 뭘 하면 좋을 것 같아?' 라고 물었다. 나는 직업에, 과업에, 성취에 인생과 건강이 매몰되지 않길 바란다. 무엇을 하는지보다는 어떻게 사는지가 중요한데 그게 자꾸 묻힌다.

 '엄만 네가 건강하고, 성실하고, 씩씩한 어른으로 살면 좋겠어. 뭘 하든지 상관없이.'


 그리고 내 아들보다는 나의남은 인생을 어떻게 좀더 건강하게, 내 뜻대로 살아갈 수 있을지가 타임라인상 우선적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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