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방 창문 앞 동백나무에 하나둘 꽃이 핀다. 피스타치오 껍질처럼 단단하게만 보였던 동백꽃 봉오리가 지난주부터 틈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빨긋하게 봉오리 끝이 물들고, 단단하게만 보였던 그것이 팝콘처럼 부풀어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올해 목마게렛은 유난히 서둘러 꽃을 피웠다. 다른 해보다 춥지 않아서인지 한 달 전부터 하나둘 꽃잎을 펼치더니 이젠 제법 풍성하다. 추워야 꽃을 피우는 시클라멘은 지난해 11월부터 지치지 않고 꽃을 피웠고, 꽃잎이 말라 떨어진 자리엔 콩알만 한 씨앗도 맺혔다. 수선화와 튤립 구근도 아기의 작은 혓바닥처럼 날름 녹색 순을 올리기 시작했고, 아젤리아도 아직은 잎 속 깊은 곳이지만 쌀알만한 꽃봉오리가 보인다.
지난 겨울엔 작은 온실도 만들었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 철제 프레임에 비닐을 얹은, 들어가 걸으면 세 걸음도 전에 끝까지 갈 수 있는 작은 온실이지만, 겨우내 나를 행복하게 하기엔 충분했다. 미나리, 파, 쑥갓, 루콜라를 겨울 밥상에 올릴 수 있었고, 분홍빛이 고운 카네이션도 여러 송이 피어, 꽃병에 담아 식탁에 멋을 더했다. 생명력 강한 제라늄은 계절을 잊은 듯했고, 일 년생이라 벌써 사라졌을 메리골드도 아직도 꽃을 피운다. 물꽂이로 뿌리를 내려 화분에 옮겨 싶은 라일락과 벤자민도 새순을 올리기 시작했다.
꽃이 피고, 새순이 통통히 여물지만 그래도 이곳, 캘리포니아는 아직 겨울이다. 연일 비가 내리니, 분명 캘리포니아의 겨울이다. 높은 산 말고는 눈도 내리지 않고, 영하의 추위도 없지만, 눈뜨면 쨍한 햇살로 늘 아침을 맞을 수 있는 이곳이, 구름 낀 잿빛 하늘과 며칠 밤낮을 빗줄기만 바꾸어 비가 내리니, 아직은 겨울이다. 하지만 이 캘리포니아의 겨울비는 또 한 해 푸르른 생명을 약속한다. 후두득 세찬 빗줄기는 마른 가지 틈틈이 오랜 시간 뒤집어쓴 먼지까지도 닦아 봄을 준비하고, 토독토독 방울로 떨어진 빗방울도 허투루 낭비하지 않고, 이내 뭉쳐 땅속 깊이 스며들어 긴 여름을 이기게 한다.
바위틈조차 생명을 자랄 수 있게 하는 비! 어느 곳 하나 치우치지 않고 공평하게 내려 근심과 걱정으로 푸석해진 우리네 마음도 찰지게 했으면 좋겠다. 요 며칠 쉬지 않고 비가 내린다. 약속한 봄이 저만치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