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벽돌 위에 세월만큼 뒤덮여 자란 아이비의 모습은 낭만적이다. 추위와 더위에 강하고, 미세 먼지를 제거하는 공기정화 역할까지 있으니 실용적인 식물이다. 또 사계절 내내 푸른빛을 띠어, 누렇고, 쓸쓸한 겨울, 푸른 숨을 쉴 수 있게 해 주니 따뜻한 식물이다. 문제라면 가지에서 나온 뿌리가 다른 물체에 붙어서 자라기 때문에 나무 담장 같은 경우엔 주의가 필요하다.
이사 와 처음 한 달간, 많은 시간을 옆집, 데이브의 아이비를 정리하는 데 썼다. 우리 쪽으로 넘어온 아이비를 몽땅 걷어냈지만, 그의 담 쪽에 수북하게 자란 아이비 무게 때문에 기울어진 담장은 바로 서지 않았다. 담장 관리를 위해선 하루라도 빨리 아이비를 싹 잘라 내야 했다. 하지만 거의 30년을 키운 그의 생각은 달랐다. 가지를 더 쳐 주고, 지지대를 세우면 나아질 거라 했다. 그와 아이비의 세월을 무시할 수 없었고, 이사 와 처음부터 서로 불편해지고 싶지 않아, 우리도 지지대를 박아 힘을 보태고 그럭저럭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지지난해부터 담장은 다시 아이비로 무거워져 기울어지기 시작했고, 더 이상 지지대론 불가능해 보였다.
이번에도 문제는 데이브였다. 이웃으로 그동안, 그의 아이비 사랑을 알아 버렸는데, 삼 년 전부터 골수암 투병을 하는 그에게 아이비를 없애자고 쉽게 말할 수 없었다. 쾌유를 기원하는 맘으로 또 한 해, 기울어진 아이비 담장을 지켰다. 문득문득 비딱한 담장처럼 마음이 비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파란 눈에 힘을 주고, 흰 꽁지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이년을 꼬박 하루에 두 번씩 동네를 걷는 그를 보면, 그깟 기울어진 담장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조금씩이지만 그의 걸음걸이는 빨라졌고 힘이 생겼다. 코비드 시국이라 비록 파킹랏을 꾸며 한 생일 파티였지만, 이웃들은 함께 모여 그의 회복을 기뻐했다. 그리고 짧지만, 다시 정원에 나와 가드닝을 하는 그의 발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그게 4월이었다. 하지만 7월, 그는 누렇게 마른 정원과 비딱한 아이비 담장을 두고 하늘로 떠났다.
“윙윙윙”, “쾅쾅” 어제 종일 데이브의 정원이 시끄럽다. 그가 투병하는 동안 엉망으로 자란 나무가 잘려 나가고, 잡초로 덮인 잔디 마당이 갈아 엎어지고, 데이브와 세월을 함께 했던 아이비가 모두 걷어졌다.
맨살을 들어낸 담을 따라 여러 번 걸었다. 담장 여러 곳, 오랜 시간 아이비 뿌리가 만든 구멍이 꼭 그의 상처 같아 아팠다. 틈 사이에 걸린 아이비 한줄기. 잡아당기니 후루룩 길게 딸려 온다. 적당히 잘라 꽃병에 꽂았다. 건강한 뿌리를 내려, 화분에 심어 기를 생각이다. 그러다 보면 나도, 데이브 그만큼 아이비를 사랑하게 될까?
이 글은 8월 24일 미주 한국일보에도 게재한 글 입니다.
사진은 Pixabay의 Nicole Kohler님의 이미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