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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Nov 07. 2024

사서는 우아하게 차 마시면서 책 보는 직업이다?!

-실상은?

타인이 생각하는 사서란

바로 위의 이미지처럼

한가로이 차를 마시면서 책을 읽는 아주 편한 사람이다.      

사실 나도 내가 사서가 되기 전에는 그런 줄 알았다.

이 생각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은 건 대학생일 때였다.    


라떼는 말야 대학교 때 ‘근로장학생’이라는 명칭으로  

학교에서 일하고 장학금을 받았다.

이게 나름 꿀알바였는데, 문헌정보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도서관으로 배정을 받았다.

전공자인 나도 도서관 연속간행물실에 배정을 받았다.

담당 사서 샘은 우릴 보며 매우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서 와, 도서관 근무는 처음이지?’의 왠지 모를 비밀이 숨겨진 미소라고나 할까?     


선생님은 지금이 책 제본의 적기라며

각종 연구회지며 학회 논문을 발간순서대로 일 년치를 묶어(보통은 분기별 발행이라 4권 정도를 묶었다. ) 책등에 들어갈 제목을 메모하라고 지시를 내리셨다.

뭐 여기까지는 필드에서 몸풀기 전 수준

갑자기 다른 자료실 선생님들까지 근로학생들에게 간식을 사주셨다.

장서점검 시즌이란다.

실제로 내가 일한 도서관에서 폐기한 책을 묶어서 쌓아둔 사진이다

이른바 도서관의 모든 책을 바코드로 찍어 잘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

(이십 년 차 사서인 나도 고된 작업이며, 현재는 많은 도서관에서 업체에 외주를 맡겨서 진행한다. )

목장갑을 끼고 맨 앞줄 꼭대기 6단부터 제일 아랫단까지 고개를 젖혔다 무릎을 꿇었다 하면서

바코드 기계로 책 한 권 한 권을 스캔했다. (마트 계산대에서 바코드 찍는 기계로 품목을 찍는 거와 같은 원리) 처음엔 할 만했지만, 점점 어깨가 아파오고 기계 누르는 손목이 아파오는데 내가 지나온 서가보다 가야 하는 서가가 훨씬 많았다.

그리고 서가와 책에 왜 이렇게 묵은 먼지가 하얀 눈처럼 소복이 쌓여있는지, 그날 결국 묵은 먼지를 잔뜩 먹은 나는 비루한 몸뚱어리를 이끌고 집에 가다가 헤드뱅잉 하면서 졸다 바로 감기에 걸려 버리고 말았다.

(사실 예전에 열악한 도서관에서 근무한 사서 중에 천식이나 비염에 걸린 사서가 많다. 시간이 지나 특히 코로나를 거치면서 대부분의 도서관에는 분기별 소독과, 도서소독기를 비치하고 있으니 이용자 분들은 너무 걱정하지 마시기를)     


드디어 사서가 되었다.

아득히 몸 쓰던 기억들이 떠올랐지만

‘뭐 그래 장서점검은 아주 가끔 하니 그때만 고생하면 되지’ 하고 생각했는데

아 웬걸...

서가에서 넘쳐나는 책과 매일매일 대출반납되는 도서를 정리하는 건 사서의 일상이었다. 도서반납함 가득 들어오는 책을 정리하고 서가에 꽂는 일.

매번 넘쳐나는 책을 서고(보존서로)로 옮기는 일

대출반납하면서 동시에 여러 책을 들고 나르는 일을 이십 년 하다 보니

나에게 남은 건 팔꿈치와 어깨에 생긴 석회

‘사’ 자로 끝나는 직업이 아닌 ‘사’ 자로 시작하는 직업을 선택하여

오늘도 나는 사서 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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