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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정줄을 놓으면?

면 없는 짬뽕과 소스가 적은 짜장면

by 윤슬

이번 연휴 참 길다.

나는 시댁과는 같은 아파트에 살고, 친정도 전철로 두 정거장 거리에 떨어져 산다.

음식 하는 게 지겹다는 시엄마 덕분에 명절 음식은 사서 먹어서, 명절때 할 일도 없다.

친정이나 가서 도와드리라는 시엄마의 배려 덕분에 친정 엄마께 도와드릴까 싶어 전화를 드리면,

한사코 도움을 거절하신다. 아직은 정신없는 애들을 줄줄이 달고 오는 것보다는 차라리 아빠랑 하는 게 속 편하시다고...


명절 후 스트레스 받는 며느리들에 비하면 정말 난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싶을정도로 복 받은 사람이다.

문제는 이번 연휴가 너무 길다는 점이다. 10월 10일이 학교 재량 휴일로 쉬니 3일부터 총 열흘을 쉰다.

시댁 가서 한두 끼 얻어먹고, 친정 가서 한두 끼 얻어먹고 와도

돌아서면 밥, 돌아서면 밥이다.


나랑 남편은 그동안 미뤄뒀던 넷플을 보고, 아이들은 종일 아이패드와 휴대폰을 끼고 산다.

이러다가 모든 미디어 속으로 우리가 빠져 들어갈 거 같다.

남편이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우리 경복궁 가자!"

저 인간은 전생에 분명 궁 관리자였을 것이다.

무료 개방이라 사람도 득실득실할 거 같은데, 남편 외 모두 반항하지만 결국 출발

어쨌든 연휴기간 처음으로 날씨도 좋고, 역사공부도 하고 외식도 할 테니..

1일 주차권까지 구매하고 가고 있는데..

딸이 속이 안 좋다고 토하고 난리.. 결국 집으로 컴백했다.

집으로 돌아온 딸은 잠시 쉬더니 다시 팔팔 날아다닌다....

'저거 꾀병 아니여?'


집에 있는 걸로 급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이것저것 집안일을 했더니 잠이 솔솔 온다.

아 살짝 눈 떠 보니 저녁시간...

'진짜 밥 하기 싫다' 나의 손가락은 배달앱을 누르고 있다.

짜장면을 먹고 싶다는 아들의 요청에 따라

탕수육 소+ 간짜장 곱빼기 1+ 크림짬뽕 1+음료수 리뷰이벤트 1+ 음료수 1

주문을 넣는다.

30분이 지나 초인종 소리와 함께 음식이 도착

'우와 이 집은 곱빼기를 시키니 면을 2개로 나눠 보내주네'

간짜장 소소에 면 두 개를 넣고 비비니 아 이상하게 짜장소스가 부족해 보인다.

그제야 내가 주문한 영수증을 살펴보니 간짜장 보통 1로 시킨 것이 생각났다.

신랑 메뉴인 크림짬뽕을 주문하면서 간짜장 곱빼기에서 보통으로 바뀐 것이 기억이 났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내가 바보짓을 한 것을 깨닫지 못했다.

식탁에 상을 차리고 신랑을 부른다.

이상하게 신랑 메뉴만 양이 부족해 보인다. 젓가락으로 짬뽕을 휘젓는다.

'헉! 짬뽕에 면이... 없어....'


그랬다.

간짜장에 부어 버린 두 개의 면 중 하나는 짬뽕용, 하나는 짜장면 용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면 하나는 계란 후란이도 올려져 있었는데, 난 그것을 곱배기니깐 하나만 준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는 면 없는 짬뽕과 소스적은 짜장면을 조용히 우적우적 먹었다.

리뷰이벤트도 신청해서 포토 리뷰도 해야 하는데, 아들은 짜장면을 먹으면서 깔깔 거리며 웃는다.

남들이 보면 짬뽕 양이 적다고 오해하겠다고.

사진 찍을때 까지도 짜장소스가 면에 비해 왜 적은지 몰랐다.



하지만 아들아 난 이 한 끼에 결제한 내 돈이 아깝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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