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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봄에는 목련을 볼 수 없다

아파트 단지의 가혹한 가지치기

by 윤슬

모처럼 쉬는 날.

둘째 아이의 하원을 위해 채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 집은 3층. 베란다에서 밖을 보니 소란스러웠다.

경비아저씨들 서너 분이 계셨고, 또 못 보던 작업자 분들도 계셨다.

눈치로 보아하니 단풍나무와 목련을 가지치기 하나보다.

새색시 볼처럼 곱디고운 단풍나무들은 가지채 잘려있었고,

작업자는 그 뒤의 목련나무를 자르고 있었다.

이왕 나가는 길에 경비아저씨께 "실외기 쪽 나뭇가지만 살짝 잘라주세요."라고 말씀드리고 아이 학원으로 갔다. 십분 뒤 내가 이 말을 뱉은 걸 엄청 후회할지도 모르고...


아이를 데리고 집에 오니 목련나무의 가지가 죄다 잘라 나갔다.

몇 년 전에도 저층 세대의 실외기와 창문에 닿는다는 이유로 엄청 가지치기당했는데,

이번에는 사람으로 치면 몸통만 남은 정도로 참혹한 수준이다.

난 민원을 넣은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어쩌다 아파트 조경수들이 저리 가혹한 가지치기를 당하는 걸까?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원래 가지치기란

가지치기를 하는 목적은 대상 작물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과수의 경우는 가지치기의 주목적이 과실생산을 증진하는 데 있고, 임목의 경우는 우량한 목재를 생산하는 데 있다. 하지만 과실이나 우량목재 생산이 목적이 아닌 조경수의 경우, 가지치기는 첫째, 인명과 재산의 안전을 도모하고, 둘째, 나무의 건강을 유지하고, 셋째, 나무의 미관을 유지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출처: 파주시청 [조경수의_올바른 가지치기]

저 첫 번째 인명과 재산 때문에 나무의 건강과 미관이 뒷전이 됐나 보다.


아파트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내가 근무하던 곳은 건물 뒤편에 큰 은행나무가 세 그루 있었다.

워낙 오래된 나무라 동네 주민들이 몰래 은행도 따 가곤 했었다. 세월이 흘러 다른 곳에서 근무하고 다시 돌아오니 뒤편의 은행나무는 댕강 잘라져 그루터기만 남아있었다. 매번 가을에 떨어지는 은행잎과 냄새나는 은행을 감당할 수 없어 감행한 일이라고 했다. 몇 해 전, 작은 기관에서 가지치기하는 조경비용이 만만치 않아 애를 쓰던 실장님 얼굴이 떠올랐다. 모든 직원들이 같은 마음은 아니었다 보다. 결국 예산만 잡아먹고, 냄새만 풍기던 은행나무는 그렇게 사라져 갔다. 하지만 나무가 주던 게 불편만 이었을까?

가끔 뒤편에 노랗게 쌓여 있던 은행잎과 여름에 초록초록 했던 이파리들이 가끔 그립다.


내년 봄에는 우리 집 앞 나무에서 목련을 보지 못한다. 아이에게 보여줬던 털 달린 꽃 봉오리도 보여 줄 수 없다. 가지에 맺혔던 그 봉오리들은 어디로 갔을까?

아이가 집으로 들어가면서 했던 말이 귓가에 맴돈다.

나무를 저렇게 자르면 어떡해! 아프겠다

우리 집 베란다에서 찍은 목련. 참으로 탐스럽고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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