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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참고래 Aug 18. 2021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안구건조증 일기

"누점 폐쇄 시술까지 받으셨으면 할 수 있는 시도는 다 해보신 것 같아요. 이게 꽤 심각한 경우에만 하는 처방이거든요."


..


시험이 끝났지만 여전히 안구건조증으로 고통받고 있다. 시험으로부터의 해방도 나를 안건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줄 수 없었다.


예전에 다니던 병원에서 처방받은 안약(안약을 쓰면 눈이 아프거나 두통이 생기는 등 이상증세가 생겨서 잘 사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도 조금 남아있음)이 거의 다 떨어지기도 했고, 얼마 안 있으면 일도 해야 하는데 이대로 있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커뮤니티를 통해 집 근처의 괜찮다는 안과의원을 찾아갔다. 의사 선생님은 친절하셨고, 이야기를 잘 들어주셨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받은 치료들과, 내가 가진 증상들을 하나하나 늘어놓았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반복해서 하소연을 해왔더니 빼먹는 것 없이 잘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돌아온 답변은 위와 같았다. 내가 이야기하는 증상들도 건조증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말씀하셨고.. 안약을 넣으면 두통이 생긴다는 이야기도 그럴 리가 없다는 식으로 말씀하셨다. 아니 나는 실제로 다 겪고 있는데..


안구건조증이 사람을 참 미치게 하는 것이 자꾸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는 거다. 가족들도 제대로 이해를 못 해주고, 병원에서도 이해를 못하고(신경과까지 찾아갔는데 틱장애 아니냐는 소리만 듣고 돌아왔다.), 병원에서도 원인을 모르니 언제 나을지도 모르겠고 나을 수는 있는지 모르겠으니..


나름의 사형선고(?)를 받고 매우 심각하게 우울해져 있던 나는 이제는 정말 대학병원을 찾아가 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어릴 적에는 수술을 위해 대학병원에 주기적으로 드나들던 나였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대학병원에 가기 위해서는 진료의뢰서가 필요한 것도 몰랐고, 필요한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도 몰랐다. 여러 시행착오를 하면서 인터넷을 돌아다니던 중 네이버에 있는 안구건조증 카페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멤버 수가 37000명이 넘는 대형 카페였다.


카페를 둘러보면서 느낀 감상은 도시전설로 치부되던 라식/라섹 부작용의 희생자들이 이곳에 다 모여 있었구나..라는 것이었다. 덕분에 눈이 나으면 라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카페에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도 꽤 있었다. 수험공부를 하다가 안구건조증이 심해진 유형들. 나만 그런 게 아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 위안이 되었다. 나만 이상한 건가 하는 두려움이 있었는데, 카페를 통해 치유받은 느낌이었다. 건조증이 심해지면 입가에 마비가 오는 증세도 원래 안건이 심하면 그런 증상이 생길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왜 이제야 이곳을 알게 되었을까. 그럼 스트레스를 덜 받았을 텐데..


카페를 통해 안구건조증 치료에서 가장 뛰어나시다는 대학병원 교수님의 성함을 알게 되었고, 곧바로 세브란스 병원 웹사이트를 통해 예약을 했다. 인터넷 예약이 아주 잘 되어있어서 손쉽게 예약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 달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눈 상태가 꽤 좋아져서(대신 안약을 하루 10개 가까이 쓸 정도로 달고 살았다) 혹시나 안과에 갔는데 원인을 찾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을 품고 병원으로 향했다(일부러 휴대폰을 많이 써서 눈 상태를 악화시켜 놓아야 하나 고민도 했다..). 여담으로 날씨가 너무 더워서 피부가 타는 것 같았다..


역시 대학병원이라 기다리는 시간이 꽤 길었다. 간단한 시력검사를 하고, 매번 하는 안압검사도 하고 나서 30분? 정도를 기다렸다. 그러고 나서 상담실(?) 같은 곳으로 갔다. 처음에 지병이 있냐고 해서 잠시 얼탔더니(안건이랑은 전혀 무관한 병 이어도 말해야 하나 싶어서..) 당뇨 같은 것 있냐고 다시 물어보셔서 그건 없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콘택트렌즈 사용 여부랑(사용경험 거의 없음), 증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나왔다. 


그리고는 꽤나 큰 검사실로 이동했다. 다행히 대기인원이 내 앞에 2명뿐이라 얼마 안 있어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상당히 신기한 경험이었다. 녹색광으로 눈을 마구 쏴대는데.. 뭔가 재밌었다.


검사가 끝나고는 바로 교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 눈물샘에 색소를 묻히는 방법으로 눈물 양 검사를 받았다. 그러고 나서 마이봄샘을 짜주셨다. 


교수님께서는 내 마이봄샘(눈꺼풀 끝에 있는 기름샘) 사진과 정상상태의 사진을 비교해서 보여주셨다. 딱 봐도 정상이 아니란 게 느껴졌다. 정상인의 사진은 바코드처럼 가지런한데 비해, 나는 아주 말라비틀어지고 찌그러진 모습이었다.(교수님 반응: "젊은 사람이 왜..")


모든 게 다 마이봄샘이 원인이고, 이걸 치료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말씀하셨다.


마이봄샘을 짜게 되면 눈물이 철철 나오는데, 이게 그래서 나온 눈물인지 감격에 겨워서 나는 눈물인지 구별이 안되었다. 뭔가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이.. 만약 누가 시키면 흐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정말.. 뭔가 드디어 낫는구나.. 하는 감격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진짜 내가 이상한 건지, 혹은 원래 가진 병 때문에 이렇게 된 것 아닌가 싶어서 서러웠던 지난 세월들이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한 달 뒤로 IPL(마이봄샘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레이저 시술) 예약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염증도 있다고 하셔서 항생제도 처방받았다. 그리고 아이 소프라는 눈꺼풀 클렌저도 사용하라고 하셨다. 진료실 옆에 사용법을 알려주는 동영상이 계속 틀어져 있었는데, 그 정도로 이 눈꺼풀 세척이 안구건조증 치료에 중요한 것 같았다(사실 오늘 밤에 하는 걸 까먹었는데 이 글을 쓰면서 떠올랐다).


 지금은 잠시 울산에 내려왔는데, 최대한 빨리 낫고 싶은 마음에 원래 다니던 병원에서 IPL 시술을 받았다. 마이봄샘도 짜주셨는데, 이미 한번 짜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교수님이 직접 해주신 게 더 시원했고 효과가 좋았었다. 아무래도 교수님이 직접 짜 주시는 건 다르지 않을까.


그런데 여기 의사 선생님께 세브란스에서 마이봄샘이 원인이라고 이야기했다는 것을 말씀드리니 반응이 좀 묘했다. 그러고는 이전에 찍었던(찍은지도 몰랐다) 내 마이봄샘 사진을 보여주시면서, 이미 다 이야기해 드렸었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는데.. 혼란스러워졌다. 그 어떤 대학병원도 여기보다 검사설비가 더 좋지 못할 거라고 말씀하시는데, 솔직히 맞는 것 같기는 하다. 여기는 뭔가 좀 더 구체적으로 눈물 상태를 진단해 주기는 했었다만.. 정작 다니던 중에는 별로 차도가 없었어서..


결국은 뭔가 찝찝해졌지만.. 그래도 나는 교수님을 믿는다. 많은 환자들을 구원해주신 분이니까. 나도 구원해주실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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