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트렌드를 떠올리면 패션과 관련된 용어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트렌드를 단순히 우리 문화의 미적인 변화를 지칭하는 용어로만 보는 건 매우 한정적인 시각인데요. 트렌드 에이전시 The Future Laboratory 설립자 Martin Raymond는 저서 <The Trend Forecaster's Handbook> 에서 트렌드는 '정서적(emotional)이고, 지적(intellectual)이며 심지어 정신적인(spiritual) 부분을 포괄할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기본적으로, 트렌드는 ‘무언가가 움직이는 방향(direction)’이라고 볼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문화/사회/비즈니스에서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어떤 변화가 있는데 이 변화가 향하는 특정 방향을 트렌드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트렌드라는 단어의 기원은 중세 영어와 고대 독어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트렌드의 어원은 '돌리다, 또는 회전시키다'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20세기 초, 수학자와 통계학자들에게 트렌드라는 용어는 친숙했다고 하는데요. 그들은 시장의 장기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그래프의 상향/하향 이동을 설명할 때 트렌드라는 용어를 사용했기 때문이죠.
1960년대 이후에는 헤르만 칸(Herman Kahn), 피에르 왁(Pierre Wack) 같은 경제학자와 사회학자들의 연구 덕분에 트렌드는 문화와 관련이 있는 표현이 됩니다. 문화는 수학이나 과학과 달리 수량화하기 어렵다는 특징이 있어요. 사람들이 신선한 채소보다 냉동식품을 구입하고, 긴 스커트보다 짧은 스커트를 착용하고, 새로운 차를 구입할 때 포드가 아닌 닛산 브랜드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합시다. 이런 선택을 하기까지 수많은 요소가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이건 감정적인 요인일 수도 있고 심리적인 것이거나 또는 라이프 스타일이 변화했기 때문일 수 도 있죠. 이런 부분은 수치화하기 어렵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트렌드는 비정상적(anomaly)인 것으로 정의될 수 있어요. 우리가 표준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른 것, 기존 패턴과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요. 기존의 이상하다고 여겨졌던 제품이나 아이디어가 일정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짐에 따라 점점 평범한 것으로 여겨지는 과정을 경험해보셨을 겁니다.
또한 여러분은 평소에 ‘스타일(style)' 또는 ‘무브먼트(movement)'라는 단어를 쉽게 접할 수 있으실 거예요. 넓은 의미의 트렌드는 스타일과 무브먼트를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굳이 엄격하게 구분하자면 스타일은 디자인/패션/건축에서 새로운 것을 표현하는 독특한 방식이나 미적인 부분을 가리킵니다. 트렌드는 ‘새로운 변화가 움직이는 방향’을 뜻한다고 아까 이야기했었죠. 스타일은 차이점(difference)에 관한 것이고 트렌드는 차이점과 그게 움직이는 방향(direction)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타일에 관해 더 이야기 해보자면 디자인이나 건축을 공부하는 분들 중에 브루탈리즘(Brutalism) 건축 스타일을 들어보신 분들이 있을 거예요. 아래 슬라이드의 이미지처럼 브루탈리즘은 날것의 느낌을 강조하는 콘크리트로 된 반복적인 작업이 특징입니다. 대표적인 브루탈리즘 건축가 데니스 라스던 (Denys Lasdun)이 있는데요. 이렇게 날것 그대로의 느낌을 살리는 브루탈리즘 스타일은 Pedro Reyes의 하우스(아래 왼쪽 이미지)처럼 요즘 인테리어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밀라노 멤피스 그룹의 컬러풀한 색상과 블록 형태는 가구/프로덕트/패션에서 매년, 매월 또는 매주마다 발견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사례로는 21세기 초반, 경제 침체를 겪으면서 'New Sobriety’라는 디자인 트렌드가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이 트렌드는 보다 포멀하고 통제된 분위기를 나타내기 위해 절제된 컬러와 디자인을 사용합니다.
아트에서는 종종 무브먼트를 트렌드로 여깁니다. 위에서 설명했던 멤피스 무브먼트처럼요. 아래 슬라이드 이미지처럼 초현실주의 예술 운동은 가구/제품 디자이너에게 '초현실성(Surreality)'라고 불리우는 스타일의 변화에 영감을 주었습니다.
사람들의 욕망과 특정 아이디어도 트렌드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1980년대에 전 세계 사람들과 쉽게 소통하고 서로 이익을 주고받겠다는 욕망, 즉, 상품/자본/사람들이 이동하는 흐름을 장려하기 위해 국가 장벽을 낮추게 됩니다. 이것은 흔히 우리가 ‘세계화(Globalisasion)'라고 부르는 트렌드를 낳았는데요. 1990년대에는 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농산물 수요와 함께 식품을 생산하고 공급하는 방식과 절차에 대한 우려가 커지게 됩니다. 이때 유기농 제품을 선호하는 추세가 나타나는데 이런 흐름 또한 트렌드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아래 슬라이드에 있는 제품과 공간 사진을 보시죠. 서로 공통된 특징을 발견할 수 있으시나요? 두 가지 기능을 동시에 갖고 있고 업무 공간과 놀이 공간이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할지 구분해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트렌드를 '비즈니스(Business)'와 '레저(Leisure)'를 결합한 표현으로 ‘블레저(Bleisure)' 라고 합니다. 비즈니스와 레저의 구분이 희미해지고 있는 추세를 나타낸 것이죠.
이제까지 트렌드에 대한 정의와 사례를 살펴보았는데요. 트렌드는 우리의 정서적, 육체적, 정신적인 양상을 이루는 근본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새로운 변화를 탐지하고 매핑함으로써 이 변화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데요. 다음 포스팅에서는 '밈과 트렌드 확산'이라는 주제로 트렌드에 관해 더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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