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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재 Nov 16. 2023

백조를 꿈꾸던 캘리그라퍼의 우아한 은퇴라이프

2028년 11월 10일 금요일_미리 써 본 5년 후 일기입니다


5년 전 브런치 작가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하자 마음먹고 신청한 슬초브프. 그리고 특강시간에 쌤이 툭 던진 그 한 미디.


“여러분의 욕망은 무엇인가요? 괜찮아요. 솔직해지세요. 그게 무엇이든 우리는 욕망할 수 있습니다.”


순간 시작할 때 제출했던 신청동기가 떠오르며. 피식 웃음이 났다. 아주 고상하게 서술해서 제출했던 나의 브런치 신청동기. 출판작가? 인세 받는 베셀작가로 인생역전하는 삶? 그런 거 바라지 않는다고, 그저 글을 꾸준히 쓰고 싶을 뿐이라고 그렇게 한껏 우아한 척 고상을 떨며 유명한 작가가 되고 돈을 버는 삶은 욕망하지 않는다고 적어냈었다. 그 후로 잊을만하면 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짜 욕망은 뭐예요? 정말 그게 전부라고 말해도 괜찮으시겠어요? 글을 써서 바라는 거 없으세요?' 쌤이 하지도 않은 말들까지 자꾸 뒤통수에 벌떼처럼 따라다닌다. 아니 무슨 곰돌이 푸도 아니고 왜 자꾸 뒤통수에 벌떼처럼 따라다니며 말을 거는 건지 결국 항복을 선언하고 뒤돌아 앵앵거리는 벌떼를 마주했다.




"그래, 뭐. 그렇지. 욕심이 왜 없겠어. 안될 거 아니까 괜히 처음부터 욕심 없는 척한 거야. 됐어?"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게. 진짜 네 안에 있는 욕망을 털어놔봐."


망할 벌떼 같으니라구. 더 이상 그 벌떼는 쌤을 빙의하지도 않고 내면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종이를 꺼내 펜으로 꼭꼭 숨어 있는 욕망을 하나하나 써 내려갔다. 하얀 종이 위에 까만 글자로 숨어 있던 욕망이 시각화되는 과정을 보니 부끄럽기도 했고,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급 진지모드가 되기도 했다. 눈앞에 펼쳐진 우습지만 결코 가볍게 웃어넘길 수 없는 욕망의 잔상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욕망한다. 호수 위에 우아하게 떠 있는 백조처럼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기를. 그렇게 5년이 흘렀고 이제 원하던 삶을 살고 있는 나를 마주한다.


 



밀려들어오는 캘리그라피 강의는 모두 제자 쌤들에게 넘기고 대학강단에 서는 것과 줌 수업을 통해 글로벌하게 외국 수강생들을 위한 수업만 하고 있다. 그렇게 일주일에 2번만 강의를 하고 남은 시간은 좋아하는 것들에 집중하며 지낸다. 사람들과의 소통은 삶의 에너지를 얻는 부분이라 일이 완전히 놓아지지 않는다. 강의는 내가 숨 쉬고 사는 방식이다.



동이 트기 전 새벽에 잠이 깨면 명상음악과 함께 몸과 마음을 정리한다. 그 새벽 나는 구름사이로 해가 쏟아지는 해변가에 앉아 있기도 하고, 샛소리와 함께 싸한 시골새벽 내음이 나는 숲 속 어딘가에 자리를 잡기도 한다. 그렇게 마음속 여행을 잠시 하고 돌아와 20년도 더 된 보이차를 한잔 우려 동이 트는 창가에 자리를 잡는다. 매일 아침 날이 밝아 오는 풍경을 느릿하게 즐기며 하루를 시작한다. 어떤 날은 정동진에서 봤던 일출처럼 완벽한 해돋이를 마주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몹시 부끄러워  구름뒤에 숨어 빼꼼히 내다보는 수줍은 태양을 만나기도 한다. 매일 다른 모습으로 찾아와 주는 아침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이 시간이 참 좋다. 내가 꿈꾸던 삶이다. 온전히 해가 모습을 드러내고 창을 통해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하면 큰맘 먹고 장만한 암체어에 몸을 맡긴다. 그리고 어제 읽다 뒤집어 놓은 책을 펼쳐 그 속에 담긴 또 다른 세상으로 들어간다. 한참 그렇게 사색에 빠져있다 보면 유일한 내편이 잠에서 깨 모닝인사를 건넨다. 이런 작은 루틴마저도 너무 편안하고 행복하다.




가볍게 아침을 해결하고 다시 나의 지정석인 거실 창가 옆 체어에 몸을 기대 책을 읽다가 폰을 보기도 하고 설거지하는 남편의 옆모습도 바라보다 조잘조잘 말을 걸어 본다.


“여보, 우리 오늘은 뭐 하고 놀까?”

“뭐 하고 싶은데?”

“나 드라이브하고 맛있는 거 먹고 싶은데, 잠깐만. 문자확인 좀 하고.”


‘ㅇㅇㅇ 임대료 2,000,000원 입금’

‘에드포스트광고수익금 800,000원 입금’

‘유튜브 수익금 500,000원 입금’

‘브런치출판 인세 2,000,000원 입금’


“여보, 오늘 용돈 들어왔다. 나가자”





이제 겨우 50 하고 2살 아직은 좀 빠른 듯 하지만 은퇴라이프를 위해 구축해 놓았던 나의 자산들이 매일 나를 행복의 나라로 데려다준다. 큰아이는 24살에 원하던 회사에 취직해 벌써 5년 차 직장인으로 경제적 독립을 했고, 작은아이도 원하는 대학에 진학해 장학금을 받고 과외 알바로 용돈을 스스로 해결하고 있다. 남편의 연금과 나의 파이프라인은 더 이상 동동거리지 않고 여유로운 백조의 생활을 뒷 받침 해주고 있다.  분양받아 사용하던 작업실에서 들어오는 월세수익과 강의하며 쌓아두었던 블로그와 유튜브에서 들어오는 부수입에 글을 써서 들어오는 인세까지 이만하면 충분하다. 지친 몸을 편안하게 쉬게 해 줄 나의 컴포트존은 바로 집이다.




지금 여기 내가 있는 이곳이 지상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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