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먼 길 오시게 해서 죄송해요.
"여러분, 이번주 과제는요. 브런치 작가 합격 후 달라진 변화에 대해 글을 써 보는 겁니다."
화면 안에서 너무나도 예쁘게 웃으시며 해맑게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모습과는 반대로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리기 시작했다. ‘변하긴 변했는데 구체적으로 뭐가 어떻게 변했더라? 그게 또 구구절절 풀어낼 만큼 바뀌긴 했나?’ 갑자기 머릿속이 백지가 되면서 나만 큰 변화를 못 느끼고 있는 건 아닌가, 그 짧은 찰나에 오만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느끼는 감정과 눈에 보이는 것들을 말로 하는 것과 글로 풀어내는 일은 전혀 다른 작업이다. 고민이 깊어지는 밤이었다.
다음날부터 올라오는 동기 작가님들의 글을 보며, 당사자가 아닌 구독자 모드로 공감하고 감탄하다 보니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있었다. 과제를 받고 벌써 4일째. 변화에 대해 쉼 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오늘도 여느 날처럼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일상 루틴을 소화하던 중 러닝머신 위에서 뜀박질을 하다 문득 이거구나! 브런치 작가 합격 후 나에게 일어난 변화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기분이 좋아져 스피드를 올려 신나게 달리고 돌아와 노트북을 열었다.
그 첫 번째 변화는 브런치 작가 합격하면 쓰고 싶었던 글의 주제가 바뀌었다는 거다. 나만 힘들었다는 피해의식에 쌓여 아팠던 이야기들로 위로받고 싶었고, 그럼에도 열심히 살아서 이뤄낸 결과들에 대해 잘한다는 칭찬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멍석이 깔리니 언제 그런 생각을 했었냐는 듯 리셋이 되고, 나의 글을 읽는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좋은 소재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다. 혼자 숨어서 쓰던 글이 흑백이었다면, 이제는 파스텔톤의 화사한 글을 쓰고 싶어졌다. 사람들이 희망을 품고 기분이 좋아질 에피소드들을 기억창고에서 찾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지금까지의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겠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은경쌤이 자꾸 옆에 따라다니며 말을 걸어 준다는 거다. 가끔은 미친 건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길을 걸을 때도, 신호를 기다리며 인도 끝에 서 있을 때도, 글씨를 쓰다가도 들려오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피식피식 웃고 있는 나를 만난다.
모든 것들이 글감으로 보이고 그것들을 어떻게 풀어내야 무겁지 않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이 될지 고민하게 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문득 정신 차려 보면 언제나 은경쌤이 옆에서 거들어 주고 계신다.
"좋아요. 그것도 좋은 글감이네요. 재미있게 쓰실 수 있을 거 같아요. 어떻게 풀어내면 좋을까요?"
하루종일 며칠째 따라다니며 칭찬해 주고, 응원해 주며 주저앉으려는 마음을 일으켜 세워주신다. 바쁘실 텐데 누추한 곳까지 매일 오셔서 챙겨주시느라 고생이 많으신 선생님. 감사합니다.
슬초브프 시작 전에는 모든 것들이 그저 희망사항이었고 막연한 바람이었다면 시작 후에는 많은 것들이 현실이 되었다. 아직은 눈에 보이는 변화가 없어서 그렇지 이미 내적자아는 치열하게 전쟁 중이다. 다른 작가님들의 이야기를 글쓴이의 입장에서 읽기 시작했고, 평소에 읽던 책들도 작가가 이 문장을 어떤 생각을 하며 썼을까 생각하느라 독서에 집중을 못하고 있다. 어쩌면 독자의 입장에서 온전히 독서를 즐기지 못하는 것은 브런치 작가 합격 부작용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또한 성장과정의 일부라는 믿음이 있다. 매일 예상치 못한 변화들을 마주해도 이제는 불안하거나 흔들리지 않는다. 진짜 작가가 되는 과정이라는 단단한 마음이 싹을 틔우기 시작했으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보리라. 함께 성장할 동기들도 큰 재산이 되었다.
아침에 눈을 뜰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