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된 마음과 대화를 했습니다.
쓰는 것을 좋아해 시작한 취미가 캘리그라피강사라는 명함을 만들어 주었다. 매일 종이 위에 글씨를 쓰면서 쌓여가는 연습지가 버거워질 즈음 남들처럼 키보드를 두드리며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자주 들어가 글도 썼었다. 너무 대놓고 오픈된 공간에 사적인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차마 발행은 못하고 저장만 쌓여가던 어느 날 용기를 내어 발행 버튼을 클릭했는데, 뜬금없이 작가신청 후 승인된 사람만 쓸 수 있게 되었다는 메시지가 떴다. 순간 참 못났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람 심리가 또 안된다 하니 슬그머니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2023년 to do list 브런치 작가되기
야무지게 적고 시작했건만 가을 초입까지도 마음만 있을 뿐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던 버킷리스트. 그래도 마음이 머물던 곳이라 그랬던 건지 운명처럼 슬초브프1기 작가님이 캘리그라피 수업에 등록을 했다. 수업 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싶다는 말에 마침 2기 모집을 하고 있다고 알려주셨고, 그렇게 합류하게 된 여정이었건만 몹쓸 의심병이 도지고 있었다.
너무 착한 참가비는 피드백에 대한 의문이 들게 했고,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닐 거라는 나름 합리적 의심을 하며 신청과 취소를 반복하며 마음이 호떡 뒤집 듯했다. 결국 마감 하루 남기고 재 신청 후 단톡방 입장. 이젠 가야 한다. 고민은 여기까지 끝.
기대 했던 강의가 아니어도 괜찮으니 미련없게 일단 시작해보자는 마음이었다.
첫 시간 강의를 듣고 찐이구나. 제대로 찾아왔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모든 순간을 궁서체로 임하기로 했다. 하지만 마음가짐이 궁서체라고 해서 모든 환경이 마음먹은 대로 따라와 주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느림의 미학을 시전 하며 사는 나에게 스피디하게 달려 나가는 동기들의 모습은 숨이 턱까지 차오르게 했고, 부러움에 주눅이 들기도 했다. 그리 길지 않은 몇 주동안 오만가지 마음이 들었고 시끄러운 마음의 소리는 아무도 모르는 나의 민낯을 마주하게 했다.
쓰고 싶었던 글을 쓸 수 있게 되어 기쁜 마음은 어디 가고 잘하고 싶다는 욕심 플러스 눈에 띄는 결과를 보여주는 동기 작가님들을 보며 조바심까지 무게를 달기 시작했다. 이러다 깔려 죽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글씨를 쓰면서 함께 동문수학하던 분들과의 성장과정에서 느꼈던 딱 그 압박감이었다. 바로 빨간 버튼을 누르고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하늘도 보고 낙엽도 밟으며 자문자답의 시간을 보냈다.
"브런치 작가 왜 하고 싶었어?"
"내가 쓴 글로 캘리그라피 작업하고 싶어서."
"책 내고 싶었어?"
"거기까지 생각은 아직 못해봤는데."
"목표가 뭔데?"
"그냥 쓰는 거. 글씨 수업하면서 만난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 글씨를 통해 위로받고 행복해지는 사람들 이야기, 글씨가 주는 치유의 힘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어."
"그럼 지금 답답한 이유가 뭐야?"
"어. 욕심이네. 고민 끝내자."
가슴이 답답하고 힘든 상황이 오면 늘 하는 루틴이다. 운전을 못 하는 뚜벅이의 에어팟 꽂고 아파트 단지 뺑뺑이를 돌며 셀프 인터뷰하기.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에서 진짜 속마음에 거울에 비춰 본다. 그렇게 찾은 답이 오늘 여기로 데려다주었다.
그때부터 보이는 모든 것들이 글감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