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베를린 학교 여름방학은 7월 17일부터 8월 30일까지이다. 우리는 매년 여름방학마다 한국에 방문하는데 올 해는 7월 19일 베를린 출발하는 티켓을 끊어두었다. 잔뜩 설레는 마음으로 베를린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인파에 깜짝 놀랐다. 파리 올림픽 때문일 거라는 남편 말에 긴가민가하며 체크인 줄을 섰다. 우리가 탈 비행기는 핀에어로 헬싱키를 경유하는 일정이었다.
출발시간은 13시 10분. 오전 10시에 도착한 우리는 여유 있게 들어가서 점심도 먹고 탑승하면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12시가 넘도록 사람들이 줄어들지 않고 더 많아졌고 핀에어 직원은 12시 50분이 되어서야 창구에 나타났다. 이때서야 이 모든 일이 마이크로소프트 서버 다운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공항 와이파이까지 작동되지 않았다. 체크인 시작은 13시가 돼서야 부랴부랴 시작되었고 나를 담당한 여직원은 내 수화물 이름을 잘못 기입하고 보딩패스도 주지 않아 시간을 더 잡아먹게 되었다. 옆에 다른 가족도 보딩패스를 요구하자 직원은 모바일 티켓 없냐며.. 아니 모바일이 있든 없든 당연히 줘야 하는 거 아닌가 ㅜㅜ.
티켓을 받자마자 마음을 졸이며 아이들과 보안검색대로 향했다. 그런데 보안검색 직원들의 여유로움에 비행기를 놓칠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독일 사람들은 참 여유가 넘친다. 뻔히 기술문제로 늦어졌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자기 일 아니라고 여유를 부리는 모습이라니.. 더 대박은 이다음에 일어났다.
우여곡절 끝에 보안검색대를 통과하고 게이트로 달려가는데 게이트가 하필 맨 끝.. 하... 애들 보고 따라오라고 하고 내가 먼저 앞장서서 달려갔는데 게이트는 이미 문이 닫혔고 앞서 간 사람들이 항의하고 있었다. 그때 시각은 14시 30분, 비행기를 타지 못한 사람은 2~30명 정도로 추정이 되었다. 보딩을 담당하는 직원 역시 여유만만하더니 항의하는 사람들을 향해 "어 내 책임 아니고 조종사가 더 이상 못 기다린다고 문 닫으라고 했어. 핀에어에 물어봐. 나는 몰라. 난 내 일만 하는 거고 이제 퇴근이야. 빠이" 당연한 말이었지만 참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남겨진 사람들은 출발하는 비행기를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한 사람이 다른 게이트에 헬싱키 가는 게 있다고 하자 영문도 모른 채 우르르르르 다 같이 달려갔다. 그런데 거긴 암스테르담 가는 항공이었다. 허탈했다.
상황파악을 빨리 해야 했고, 외국인보다 현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같이 움직이는 게 나을 것 같아 아이와 함께 온 독일인 아빠와 같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내 데스크로 향했다. 안내 데스크에서는 뻔한 매뉴얼의 답변을 내놓았다. 일단 우리 수화물이 비행기에 실리지 않았을 수 있으니 수화물을 찾고 집에 가서 핀에어에 연락을 하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수화물 찾는 곳으로 이동하여 수화물 담당자에게 다시 상황을 설명했고 담당자는 수화물 나오는 A2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주인을 잃은 가방들...여기에 내 가방은 없었다.
수화물라벨을 조회하니 베를린에 있다고 나왔기 때문에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가방이 나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 기다리며 핀에어 고객센터에 수화물 분실신고와 서버다운 문제로 인한 보상요청을 했다. 채팅으로 연결했다가 전화연결을 했다가 2시간을 씨름한 결과 드디어 전화연결이 되었다. 독일 핀에어 고객센터로 전화했는데 상담원이 영어밖에 못한다고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어떻게 연결된 전화인데 기회를 날릴 수 없어 미리 사귀어둔 일본인 승객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 승객은 나보다 먼저 전화연결에 성공하여 새로운 티켓으로 교환한 상태였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바로 부탁을 했고 그 친구 덕분에 무사히 새로운 티켓으로 변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티켓은 4일 뒤 출발이고 헬싱키에서 하루 자는 일정이었다. 그것도 밤 23시에 도착하는 일정이라니. 벌써 피곤이 몰려왔다. 그래도 감사한 마음으로 생각을 고쳐먹고 수화물만 되찾으면 되겠다 싶어 계속 기다렸다. 18시 30분이 되자 직원들은 하나 둘 퇴근하기 시작했고 수화물 담당자에게 다시 한번 문의를 했다. "우리가 니 말 믿고 4시간을 기다렸는데 가방이 나오지 않는다 어떻게 된 거냐" 직원의 답변은 참으로 황당 그 잡채였다. "너네 가방 여기 없어. 더 이상 수화물은 나오지 않아. 우리 모두 퇴근이야. 집으로 돌아가서 핀에어에 연락해." 아니 ~~~~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말해주지!!!!! 퇴근 시간이 돼서야 솔직하게 말하는 직원을 보고 그동안 내가 느껴왔던 독일민족성이 여실히 드러났다. 누구 하나 책임지려고 하지 않고 떠넘기려 하는 자세.
화가 났지만 할 수 있는 게 없고 수화물만이라도 무사히 한국으로 갔기를 바라며 함께 했던 승객들과 연락처를 공유하고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우리야 베를린이 집이니까 집으로 가면 되지만 만약 여행객이었다면? 정말 끔찍했다.
그렇게 4일 동안 나와 남편은 핀에어에 전화연결을 다시 시도하여 헬싱키에서 하루 묶게 되는 숙박료와 식비를 지원해 주길 요청했고 수화물 분실 신고 또한 한 번 더 신청했다. 그들은 내 수화물의 위치가 추적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아마도 직원이 수화물에 이름을 잘못 적어서 그런 건 아닐까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어찌 됐건 시간은 흘러 4일 뒤인 7월 23일 저녁 비행기로 우리는 다시 헬싱키에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베를린 공항에서 수화물 라벨에 적힌 이름과 수화물 번호로 조회요청했더니 헬싱키로 갔다고 나왔다. 역시나 이름 때문이었나?! 헬싱키 가면 내 가방을 찾을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을 가지고 편안한 마음으로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런데 웬걸 이제는 하다 하다 비가 쏟아져서 연착되네.... 이때부터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30분 연착 후 헬싱키에 무사히 도착했고 도착 시간이 11시 30분이었다. 나는 바로 핀에어 안내 데스크로 가서 내 수화물의 위치 추적을 부탁했다. 그런데 또 추적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고 자신들이 가방을 찾으면 택배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건 당연한 서비스고 가방의 위치를 전혀 알 수가 없다고 하니 그저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급 피곤해진 몸을 이끌고 아이들과 미리 예약해 둔 호텔로 향해 수화물 분실을 검색하며 잠이 들었다. 새벽 6시경 갑자기 한국 번호로 전화가 울렸다. 인천공항 핀에어 측의 연락이었다. 내 수화물이 글쎄 서울에 잘 도착되어 보관 중이라는 답변이었다. 헐. 너 혼자 한국 간 거였니... 그래 너라도 잘 가서 다행이다... 찾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가방 안에는 가족들 선물과 우리 옷가지 짐들이 들어있었다. 빈손으로 갈 뻔했는데 얼마나 다행인지.
가방을 찾고 나니 긴장이 풀렸고 졸음이 쏟아졌다. 그렇게 한숨 푹 자고 나서 기분 좋게 조식 먹고 공항 가는 셔틀버스를 탔다. 셔틀버스 기사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굉장히 젊은 남자였는데 엄청나게 친절했다. 갑자기 세상이 친절한 건 기분 탓이었을까. ㅋㅋㅋ 핀란드어로 인사 hei와 잘 가 moimoi, 감사합니다 kiisto를 배우고 일본에 가봤다는 청년이 핀란드어가 일본어랑 발음이 비슷하다는 흥미로운 얘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기분이 좋아 쿨하게 팁을 줘도 되냐 물으니 당연히 좋다고 핀란드어로 좋다는 뜻인 휘바휘바를 또 알려주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아무 탈 없이 체크인 수속도 밟고 5시간 동안 공항 여기저기를 구경한 뒤에야드디어한국행 비행기를탑승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한국에 예정시간보다 20분 정도 빨리 도착했고 먼저 도착해 있던 수화물을 무사히 만날 수 있었다. 반갑다 수화물아!
한국에 먼저 가서 나를 기다린 내 가방! 다음번엔 위치추적장치를 달자!
생각해 보니 매년 한국 갈 때마다 특별한 이슈가 생겼다. 비행기가 연착돼서 다음 환승 못할 뻔했었고 수화물이 같은 비행기를 못 타고(?) 다음 비행기로 왔었고, 공항버스 타고 가다가 6중 추돌사고가 나서 지옥문 앞까지 노크하고 왔었고, 비행일정이 변경됐었고 수화물이망가져서 도착했었고 그중 이번이 가장 정점을 찍은 것 같다.
이쯤 되면 저절로 '왜 하필 나야, 왜 나에게 늘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 주님의 경고인지 주님의 은혜인지 누가 알리요!'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점점 더 커져가는 버스와 비행기의 공포감.... 비행기가 조금만 흔들려도 버스가 조금만 흔들리거나 빠르면 심장이 쾅쾅쾅 무섭고 두려운 마음만 가득해진다. 그럼에도 인간인지라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루를 감사히 살지 못하는 날이 다 많다. 무사한 하루에 늘 감사하며 살자. 갑자기 이렇게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