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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a Hong Mar 05. 2022

긴 하루 이야기

자식과 어미

 몽골에서 여행을 끝내고 아들과 울란바토르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탑승 전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돌에다 익혀 먹는 양고기 '허르헉'의 맛과 테를지 공원에서 말을 타고 트랙킹 한 이야기로 안부를 전했다. 한국은 별일 없는지 의례적인 말을 건네던 중 엄마는 '러시아연방이 전쟁 중이니 들어오지 말고 며칠 더 몽골에 있다 오라'고 하셨다. 대체 이 무슨 비상식적인 말씀인가? 러시아연방이 전쟁 중인데 왜 한국이 아닌 몽골에 있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엄마는 무릎이 좋지 않아 그 와중에도 움직이는 게 힘들다는 말씀은 빼놓지 않으셨다. 아픈 마음은 짜증으로 변하는 건지, 되려 난 언성을 높이고 전화를 끊었다. 하늘은 파릇파릇했고 구름은 솜사탕처럼 몽글몽글 떠있었다.




 러시아연방이 전쟁 중인게 아니었다. 서울이 아수라장이었다. 러시아군과 북한군 중국군이 연합해 한반도를 침공했고, 공항은 우리 비행기를 끝으로 봉쇄되었다. 공항 출구에서 한 군인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쪽을 향해 아들 손을 잡고 뛰었다. 주변 상황을 파악하고 대체 누가 적군이고 아군인지를 분간하는 일에 모든 정신을 쏟았다. 얼른 이 주변을 뚫고 집으로 가서 남편을 만나야 했다. 아들에게 안전한 곳, 말하자면 그냥 아이들이 많이 있는 곳에서 어른들과 잠시 있으라고 했다. 그리고는 경황이 없어 잃어버린 핸드폰과 가방을 찾으러 다시 공항으로 달렸다. 주변은 총에 맞아 부서진 건물과 도로 위로 흩어진 피로 검붉게 물들어 갔고, 아무것도 보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노력할수록 나의 몸은 굳어 갔다.


 가방은 포기하고 핸드폰만 겨우 찾았다. 시간이 없었다. 아들을 두고 왔기 때문이다.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받지 않으셨다. 어쩌면 그게 마지막 통화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조여와 숨쉬기가 힘들었다. 신이시여, 저희 부모님을 지켜주시고 계실 거라 믿겠나이다. 올려다 본 하늘은 뿌연 안개만 가득했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아들에게 달려갔다.


 아들은 괜찮았다. 아니 안 괜찮았다. 광대뼈가 부러진 건지 부어 있었고 입술이 터져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열 살 아들은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열개의 손톱 밑은 피투성이었다. 싸웠니. 어떤 아줌마가 자기를 때렸다고 한다. 그게 누구였는지 이유가 뭔지 아무 말도 않고 괜찮다고만 한다. 아이는 권력에 굴복한 어른처럼 보였다. 아빠에게 전화하자고 한다. 나는 순간 핸드폰이 없다는 걸 알았다. 엄마가 전화를 안 받을 때 미친 듯이 아들을 향해 뛰었고 그때 핸드폰을 떨어뜨렸던 것이다. 아들은 이미 넋 나간 나를 보고 핸드폰을 찾으러 나섰다. 그리고 어느새 그걸 내 앞에 내놓았다. 쾅! 비명과 군인들의 총 겨누는 소리는 더욱 과격해졌다. 떨리는 손으로 수십 번 버튼을 잘못 눌러가며 겨우 남편 번호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통신마비. 우리 각자는 그렇게 생사도 모르는 이산가족이 되었다.


 그 순간, 절망감과 그리움은 같은 무게의 같은 감정이었다. 아들을 숨기기 위해 무너져 내린 건물 지하로 내려가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보니 사방이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었다. 동질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들은 전쟁을 하루 먼저 겪은 지옥의 베테랑들이었다. 인간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 얼마나 초인적인 속도로 진화할 수 있는지를 그때 알았다. 한 군인이 우리 모자를 발견하고 아들 이마에 먼저 총을 겨누었고, 도와달라고 소리치려는데 좀 전까지만 해도 내 근처에 있었던 그들은 귀신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군인을 향해 살려달라고 영어와 러시아어로 애원했다. 어제 몽골에서 왔고 곧 떠날 거라고 비겁하고 비논리적인 변명을 해대고 있었다. 군인은 방아쇠를 당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총의 앞머리를 내 이마 위로 조심스레 옮겨놓고 눈을 감았다. 캄캄한 눈앞이 죽음처럼 평온했고, 아들이 나를 흔들어 꿈에서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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