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도시»,올리비아 랭
외로운 도시는 뉴욕이라는 대도시에서 활동한 예술가 일곱 명의 삶과 그들의 예술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친 ‘고독’을 주제로 다룬다.
작가 올리비아 랭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던 한 남자와 함께 하는 미래를 꿈꾸며 뉴욕으로 건너갔다.
하지만 행복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곳에서 그와의 연결의 끈은 끊어졌다.
어떤 도시보다 더 화려하고 시끄럽고 반짝거리며 빛나는 대도시 뉴욕에서 그녀는
그 누구보다 철저히 혼자가 되었다.
우울, 절망, 무기력이 그녀를 집어삼켜 그녀는 고독이란 바다에 질식사하기 직전인 상태가 된 것이다.
고독하다는 것은 어떤 기분인가? 그건 배고픔 같은 기분이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잔칫상에 앉아 있는데 자기만 굶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p.26)
그러나 그녀는 끝없는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 다른 사랑이나 친밀한 관계를 맺을 사람들을
찾아 헤매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과 똑같이 뉴욕에 있으면서 외로움을 느낀 예술가들을 찾고
그들이 예술 작품을 통해 남긴 고독의 발자취를 좇기 시작했다.
도시 속 고독한 현대인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에드워드 호퍼에서부터 상실과 사회의
불평등한 차별을 실로 꿰매어 표현한 설치미술가 조 레너드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찾은 예술가들은
동성애자, 가난, 성별, 인종 등 저마다의 다양한 이유로 사회에 버림받았다.
그들은 자신의 지독한 외로움과 고독을 예술을 통해 승화시켰고 작가 자신이 그랬듯이 우리 또한
그들이 남긴 작품을 보면서 나만 이런 고독과 외로움을 느끼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위로를 받는다.
데이비드 워나로위츠와 헨리 다거 그리고 밸러리 솔라니스는 어릴 때 부모님에게 심한 학대를 당했다.
워홀, 워나로위츠, 노미 등 많은 예술가들은 동성애자였으며 죽을 때까지 ‘게이 암’이라고 불린
에이즈라는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그 병으로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사회는 스티그마 효과를 통해 남자 동성애자를 에이즈를 전염시키는 감염자로 낙인찍고,
보살핌과 치료과 필요한 사람들을 기피와 방어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렸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단순히 인간이 느끼는 고독이란 감정뿐만 아니라 사회가 어떻게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수치스럽게 만들고 그것이 고독을 불러일으켜 그들을 정서적인 죽음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죽음으로 내밀었는지에 대해 주목한다.
자신의 연인과 친구들이 에이즈로 죽어가는 걸 보며 다음은 자신의 차례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던 미국의 화가이자 사진작가인 데이비드 워나로위츠.
그는 주변인뿐만 아니라 자신에게까지 덮친 죽음의 그늘에서 벗어나기로 하고 사람들과 힘을 합쳐
연대를 맺어 불평등한 사회의 차별과 에이즈의 공포에 맞서기로 한다.
그는 FDA 건물 앞에서 동료 친지 그룹 회원들과 스티로폼으로 만든 묘비를 붙들고 서 있는
모의 사망 시위를 벌이기도 했으며 ‘내가 에이즈로 죽는다면-장례식은 하지 말라-내 시신을
그냥 FDA 건물의 계단에 갖다 놓으라’라는 말이 인쇄된 재킷을 입었다.
자신과 자신의 친구들이 겪고 있는 끔찍한 현실을 고발하고 죽음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면서
생기는 고독에 저항하는 예술 활동은 결국 에이즈가 그를 덮쳐버릴 때까지 계속 진행됐다.
그가 죽고 나서 그가 속한 단체였던 액트업은 데이비드를 포함해 에이즈로 죽은 사람들의 유골을
백악관 잔디밭에 뿌려준다.
“이 몸뚱이가 쓰러지더라도 내 경험 가운데 일부는 계속 살아갔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던 데이비드는
자신이 남긴 예술 작품을 통해 그 작품을 보는 사람들과의 정서적 연결을 맺으며 지금까지 살아있다.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혹은 다른 이유로 고독과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에
재로써 흩뿌려진 채 존재한다.
우리는 상처가 켜켜이 쌓인 이곳, 너무나 자주 지옥의 모습을 보이는 물리적이고 일시적인 천국을 함께 살아간다.
중요한 것은 다정함을 잃지 않는 것, 서로 연대하는 것,
깨어 있고 열려 있는 것이다.(p.392)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싶고 연결되고 싶어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도시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며 지독한 고독을 느낀다.
그리고 그런 고독을 애써 외면하기 위해 다른 사람과 연결되는 것을 의도적으로 피하게 되며,
타인에 대해 철저하게 무관심으로 대한다.
이러한 고독을 단순히 개인의 일시적이면서 충동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사회의 낙인과 배제가 만든 결과라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며 깨달을 수 있었다.
사회의 큰 힘이 만들어 내는 고독을 무기력하게 순응하고 살다 보면 결국은 사회가 원하는 방향으로
힘없이 끌러 가지 않을까?
우리는 고독할 수밖에 없는 자로 낙인찍힌 채 살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연대하고 저항해야 한다.
그러한 저항을 통해 서로의 고독과 절망, 외로움으로 찢긴 마음을 하나하나 모아서 이어 붙이고
연결하며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