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주는 기쁨», 알랭 드 보통
알랭 드 보통의 산문을 모은 에세이집 ‘슬픔이 주는 기쁨’은 펭귄 출판사가
창립 7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한 문인들 70명의 작품 선집들 중 한 권이다.
이 책은 작가가 이전에 쓴 단행본에서 뽑아온 9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있다.
각각의 이야기는 하나의 독립된 완결성을 가지며, 그 이야기들이 모여 그의 인생관을 보여주는
큰 흐름으로 연결된다. 우리는 이 아홉 개의 산문을 통해 알랭 드 보통의 생각과 그의 일상을 엿보며
그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지 알 수 있다.
책의 제목이자 제일 먼저 나오는 『슬픔이 주는 기쁨』은 그 제목을 통해선 어떤 내용일지
쉽게 가늠이 안 된다. 그는 글의 첫 문장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은 슬프지만
우리를 슬프게 하지는 않는다”를 통해 인간의 고독과 외로움을 표현한 화가 에드워드 호퍼를 언급하며,
왜 우리는 호퍼의 그림을 볼 때 위로받는지 또는 주유소, 공항, 기차, 모텔, 도로변 식당 등
‘호퍼적 장소’로 표현되는 곳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일반적으로 공동의 고립감은 혼자서 외로운 사람이 느끼는 압박감을
덜어주는 유익한 효과가 있다. (P.11)
우리는 우리가 갖고 있는 고독과 외로움을 투영시켜 호퍼의 작품을 보면서 그 작품과 나를 일체화 시킨다.
그럼으로써 나만의 것이었던 고독이 우리 모두의 고독이 되고 그 사실에 위로를 받는 것이다.
그의 그림에서 자주 등장했던 장소들은 주변적인 느낌이 강하며 조용하고 다소 소외적인 곳이다.
외로운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곳으로 이끌리며 자신의 감정과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공간에서 안정감을 찾는다.
슬픔과 외로움이 묻어 있는 작품과 장소는 이 세상에 나만 동떨어졌다고 비관하는 사람들의
어깨를 토닥이며 ‘혼자가 아니야’라고 달래주는 것이다.
『따분한 장소의 매력』에선 작가는 자신의 고향인 취리히가 왜 이국적인 도시인지 설명하며,
네덜란드의 17세기 화가 피테르 데 호흐를 통해 우리가 무감각해져버린 평범한 삶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역설한다.
나는 자신의 내부가 흥미로워 굳이 도시까지
“흥미롭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을 원했다.
정열의 샘에 늘 가까이 있어서 도시가 “재미”없다고 해도
상관하지 않을 사람을 원했다. (P.101)
그는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에 권태를 느끼며 매일 보는 똑같은 풍경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평범한 일상은 쉽게 가질 수 없는 어려운 일이며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그 행동들이 실은 우리에게 크나큰 기쁨을 줄 수 있음을 알려준다.
또한 지루하게 느껴지는 도시야말로 진정으로 상상력을 자극하고 인간미가 넘치는 장소가
될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그 밖에도 동물원을 간 뒤 인간과 동물에 대한 느낀 점을 적은 『동물원 가기』 나
클로이라는 사람과의 데이트를 통해 사랑의 진정성에 대해 숙고한 『진정성』 ,
잘 쓴 글이란 우리가 뚜렷하게 문장으로 표현하지 못한 감정이나 생각들을 훨씬 더 자세히 묘사하는 것이라고 말한 『글쓰기와 송어』 등은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통찰력이 돋보이는 글들이다.
이 글들을 통해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평범한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알랭 드 보통의 남다른 관찰력과 폭넓은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알랭 드 보통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그의 이야기를 다시 보면서 알랭 드 보통을
더 깊이 알아가는 시간이 될 것이다. 또한 알랭 드 보통의 인생관과 작품 세계를 압축했기에,
그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겐 알랭드 보통의 다른 작품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입문서 역할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