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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 더잠 Mar 08. 2021

[더잠 여성제 본선 진출작] 권초롱

권초롱_유대

[2021 더잠 여성제 본선 진출작] 권초롱_유대


나에겐 중학교 2학년 때부터 20살이 될 때까지 놀았던 친구들이 있었다. 매일을 만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같이 놀았고, 그들이 없으면 중고등학교 시절을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돈독했던 사이였다. 그 무리는 나까지 합쳐서 다섯이었는데, 다섯 중 셋은 취직을 했고, 나와 친구 하나는 대학을 입학해 각자의 길을 걸어갔다. 이후로도 어쩌다 한 번씩 만나기는 했지만 다섯이 다 같이 만나기가 힘들었던 우리는 그렇게 천천히 서로를 잊어가며 살았다. 


그렇게 각자의 삶을 살아가던 어느 날, 우리는 예상치도 못하게 모이게 됐는데 그때는 우리 다섯 중 하나가 세상을 떠났을 때였다. 우리는 꺼멓게 칠해진 옷을 입고 만났다. 이렇게 다 같이 모이는 것은 몇 년 만이었지만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고, 웃기기도 했지만 웃음도 나지 않았다.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감이 안 와서 웃는 것도 우는 것도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 사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분명 그 연락을 받았을 때 우리는 전화기 너머로 울음을 주고받았는데 막상 이렇게 만나니 ‘이게 진짠가?’ 싶었던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어땠을라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다.


나는 그런 그 친구의 영정사진을 본 순간부터 울기 시작했다. ‘실감’이라는 단어가 가슴 깊은 곳으로 확 치고 들어와 몸 안의 어딘가를 마구 쑤셔대는 느낌이었다.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콧물과 눈물이 가려지지 않을 만큼 울어댔다. 다른 친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한참을 울었고, 나의 집에 돌아와 술잔을 기울였고, 술에 취해 또 울다가 천천히 잠에 들었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았고 모두가 잠든 밤에 나는 거실로 나와 가만 생각했다. 얘는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된 걸까.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걸까. 여태까지 정신이 없어서 단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하지 못한 물음이었다. 걔가 요즘 어떤 일로 힘들어하고 있었던 걸까. 그 전날 이상한 대화를 나누긴 했다. 갑자기 일을 하다 말고 뛰쳐나왔다고 그랬고, 멀리 떠나서 살고 싶다고 말하다가, 우리 집에 와서 자도 되느냐고 이야기를 했다. 나는 언제든지 와도 좋다 말하고 기다리다가 잠에 들었고, 다음날 이런 소식을 접하게 됐고…. 


나는 곧 가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이어 나는 장례식장에서 만났던 그 남자친구를 떠올렸다. 장례식장 밖에 나와보니 친구의 남자친구가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몇 대씩 피워대고 있었다. 얼굴을 마주하는 건 처음이었지만 친구가 사진으로 보여준 적은 몇 번 있었으니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초점 잃은 눈동자로 담배만 피워대는 그 사람을 보고 동정이 밀려왔다. 여자친구가 죽었다 하면 그건 또 얼마나 슬플까 싶어 그랬다. 그때까지는 그랬다.


나는 그 새벽에 앉아 친구와 최근에 나눴던 채팅을 읽어보았다. 친구는 요즘 남자친구 때문에 힘들다, 남자친구가 바람을 피웠댔고, 하지만 떳떳하다는 듯 굴며 헤어지려고는 하지 않는다…. 등의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남자친구 때문에 고생이 많았었지 얘가. 하지만 이런 것 때문에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할 아이는 아닐 거라는 판단이 섰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친구는 그랬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일이 힘들어서 그랬을까? 그건 아니야. 아니면 빚진 게 많아서 그랬을까? 하지만 겨우 몇 백이었는걸. 가족들이랑 트러블이 심했나? 사실 심할 것도 없었잖아. 애초에 그리 친하지 않았으니. 그 어떤 쪽으로 생각해도 길이 안 났던 나는 그냥 친구의 아버지에게 직접 물어봐야겠다 생각하며 잠에 들었다.


아버지와 만나는 건 성공했지만 아쉽게도 아버지가 알고 있는 것도 얼마 없었다. 그럴만했다. 가족들이랑 그렇게 친하게 지내는 편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아버지는 고심한 끝에 보여줄 것이 있다며 친구의 핸드폰을 보여줬다. 나는 그걸 받아 다른 친구들과 연락을 했던 걸 찾아 읽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심지가 얼어붙는 듯한 두려움을 느꼈다. 오히려 그걸 읽었으면 안됐던 걸까. 이미 떠난 아이, 그냥 마음 편하게 보내주는 게 맞았던 걸까.


‘남자친구와 싸운 뒤, 각자 술을 먹고 난 다음 집에서 만나게 되었고 술김에 잠자리를 가지게 되었는데 그걸 영상을 찍었더라, 드라이브를 살펴보니 다른 여자들도 있었다….’ ‘절대 못 헤어지겠다고 이야기한다, 남자친구가 이 사실을 같이 일하는 오빠들에게 말했고 그들은 입을 모아 나를 걸레라고 부르고, 더럽다고 이야기한다. 이럴 바에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살고 싶다….’ 그것들을 보고 벙쪄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당연히 말도 나오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모든 것들이 이 모든 게 만약 사실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그 와중에도 영상들이 그 남자친구라는 애의 핸드폰에 남아있을까 걱정이었다.


오전 11시쯤부터 새벽 2시까지 일을 하는 동안 그 친구는 그 가게 오빠라는 직원들에게 쌓여 입에 담지 못할 소리를 들으며 일한 것이다. 친구가 일하는 가게에 여자는 친구 하나밖에 없었다. 한숨만 몇 번을 쏟아내다가 울컥 눈물이 났다. 개구져 보이고 성격 좋아 보여도 상처 잘 받고 여린 아인데. 그런 애가 이런 수모를 겪어왔다니 너무 미안했다. 몰라줘서 미안했다. 알려고 하지 않았음에 미안했다. 남자친구라는 놈이 그런 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달래주고 위로해 줬다는 것이 역겨워 미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더 답답하고 역겨웠던 것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온 마음 다해 미워하는 것, 싫어하고, 증오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몇 번을 물어보아도 그 남자친구는 아니라고 잡아떼니 더 할 말이 없었고, 이미 떠난 아이라 그 어디에서 잘못을 물을 수 없다고 세상은 말했으니 말이다. 이렇게 막연해도 되나? 세상이 이래도 되는 거고, 사람이 이래도 되는 건가?


더해 며칠 뒤, 또 다른 친구가 남자친구에게 맞아 경찰에 신고하고 우리 집으로 도망쳐 오기까지 해서 더욱더 세상이 미워졌다.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걸까. 이 문제에, 과연 해결이라는 게 있긴 한 걸까? 시작점을 전혀 알 수 없으니 끝을 어디서 맺어야 하는 건지도 예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피해자들 앞에 그들은 예방하라 말했다. 예방. 꽤 중요하고 그럴싸한 말같이 보이지만 쓸데없고 무책임한 말이다. 그 예방이라는 말은 우리의 시선에서 그들을 바라보았을 때 나올 수 있는 말이다. 사랑 앞에 예방이 과연 가능할까? 자신의 일이 아닌 그들에게는 가능한 일일지라도, 과연 이들에게 예방이라는 말이 통할 수 있을까? 애초에 왜 가해자를 벌할 생각은 하지 않고, 피해자들이 피해를 덜 받는 방법에 대해서 연구를 하는 것인가? 이것이 과연 현실적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교육은 어디 있는 거지?


지금 이 순간, 진정으로 데이트 폭력, 연인과의 성범죄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주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뿐이다. 우리는 그것을 분명하게 인지할 필요가 있다. 냉정하게 생각하고 판단하여 분명하게 일러주는 것, 우리가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할 도리가 된다. 이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지 않게 더욱더 분명하고 실질적인 교육을 내세우고, 가해자들에게 분명한 처벌을 가해 잠재적 가해자들에게 암묵적으로 일러주는 것. 그것은 사회가 해내야 할 도리가 된다. 피해를 당하고 있는 그들도, 가해를 하고 있는 그들도 이게 어떤 문제인 건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분명하게 바라보고 있지 못한다. 그걸 알 수 있는 건 그들의 마음에 끼지 않은 ‘타인’ 뿐이다.


데이트 폭력을 당해 경찰에 신고한 그 친구는 나의 집에 찾아와서 자신의 행동이 너무 과했던 것 같다며 울었다. 답답했던 것은 사실이었으나 저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나에게도 잘못을 묻게 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거니까. 하지만 나는 곧 마음을 바르게 고쳐 잡고 계속 일러주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 그 사람 자체가 나쁘다는 걸 인정 못하겠으면 인정 안 해도 돼. 하지만 그 행동만큼은 절대적으로 잘못된 거고, 한번 시작된 건 다시는 돌이킬 수 없어. 그만두는 게 맞는 거야. 그만해.


그렇게 헤어진 이후로 친구의 남자친구는 계속 연락이 왔다. 미안하다고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다며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가, 몇 분 뒤 다른 남자가 생긴 거 아니냐며 네가 그럴 줄 알았다는 둥 욕을 퍼부어대기를 반복했다. 계속되는 폭언과 사과에 지쳐가던 친구는 스스로 이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 친구는 완벽하게 그 남자와의 관계를 정리했고, 나에게 혼자였다면 그 남자에게 휩쓸려 맞고, 만나고, 맞고 만나기를 반복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에 안도가 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어찌나 쓰리던지. 


깨닫지 못하고 있는 이에게 왜 깨닫지 못하느냐 묻는 것은 미련한 것이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한다. 피해자는 뭔가 잘못 되어가고 있음을 잠시라도 느낀다면 주변 사람에게 꼭 일러줘야 하고, 우리들은 그것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판단하여 힘써주기를 노력하자. 또 다른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그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그 도움은 이곳저곳에 묻어, 여기저기 돌고 돌다가 결국 우리에게 돌아오게 될 것이고, 언젠가는 모두에게 돌아가게 될 것임을 난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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