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희_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2021 더잠 여성제 본선 진출작] 김서희_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나는 뚱뚱했다. 아니, 뚱뚱하지 않았다. 학창 시절 신체검사에서 경도비만 판정을 받아도 난 결코 뚱뚱하지 않았다. "'경도'니까 약한 거잖아? 괜찮네!" 맨다리에 치마를 입으면 허벅지 안쪽끼리 부딪히곤 했다. 살이 쓸려 벌게지고 따가운 것은 누구나 겪는 불편한 일상인 줄 알았다. 사타구니 사이가 떨어져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키 157cm에 몸무게 65kg의 긍정적인 소녀.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전까지는 그랬다.
친구들보다 조금 컸을 뿐이다 내가 '타인의 눈에 뚱뚱하다'는 사실은 운동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남에게 보이는 덩치와는 달리, 내 몸은 허약했다. 종종 쓰러지거나 코피를 흘리곤 했다. 건강을 챙긴답시고 동네 헬스장 한 달 치 이용권을 등록했다. 1:1 PT를 등록하지 않아서였을까? 트레이너는 기구 사용법을 심드렁하게 알려주었다. 그러더니 대뜸 나에게 살을 많이 빼야겠다고 말했다. 그의 표정은 마치 너무 크게 불어서 곧 터질 것 같은 풍선을 바라보는 듯했다. 기분이 상했다.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질풍노도의 여중생은 생각했다. '내가 뚱뚱하다고? 쟤가 지금 뭐라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여겼다. 씩씩거리다 이내 거울에 비친 나를 보았다. 방금까지도 아무 문제 없던 내 몸이 아주 못나 보였다. 넓은 어깨가 처졌다. 16년 인생 최초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고등학생이 되었다. 몸무게는 아마 55kg 정도. 평범했다. 그러나 수험 생활은 무시무시했다. 수능 날에 가까워질수록 체중은 비범하게 늘어갔다. 먹기 위해 움직이는 시간 외에는 책상 앞에 앉아있었다. 순수한 지방이 차곡차곡 쌓였다. 체중계에 올라갈 시간조차 없었지만, 65kg은 아마 우스운 무게였으리라. "대학 가면 살도 빠지고 남자 친구도 생긴다!" 이 말도 안 되는 말은 대체 어디서 나온 말일까. 다이어트는 대학 합격 후 더욱 혹독해졌다. 아빠는 말실수를 했다. 내 이름을 부른 답시고는 말이 헛나와 '야! 돼지!'라고 부르는 사건이 있었다. 무뚝뚝한 아빠의 속마음을 알게 됐다. 나는 뚱뚱하구나. 서글펐다. 살가웠던 엄마마저 조심스럽게 살을 좀 빼야겠다고 이야기했다. 전에 본 적 없는 근심스러운 표정이었다. 우리 딸 먹는 데 돈 아끼지 말라더니, 살 빼는 데도 돈을 아끼지 않으셨다. 당장 운동을 등록했다. 부피가 유난스러웠던 허벅지에는 카복시니 hpl이니 하는 주사를 찔러댔다. 살을 찢는 아픔이었다. 입에 달고 살던 고기와 과자 대신 푸성귀를 먹었다. 온 가족이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켜 먹던 날, 나는 방에 박혀 있었다. 외롭고 슬프지만 참아야 한다고 믿었다.
짜장면 냄새를 맡자마자 서둘러 방문을 닫고 멍하니 있었던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살이 빠지긴 했다. 체중계 숫자는 52kg까지 내려왔다. 바나나 하나로 점심 한 끼를 때우는 건 일상이었다. 땡볕에 동네 하천가를 미친 듯이 뛰는 날도 많았다. 식단은 괴로웠고 운동은 지겨웠다. 행복하지 않았다. 그래도 40kg대에 진입하면 자신 있는 몸매가 될 거라는 막연한 희망으로 견뎠다.
취업 준비, 직장 생활, 퇴사를 거치며 마음이 고생스러웠다. 덩달아 몸무게도 줄었다. 꿈에 그리던 47kg이 되었다. 남들은 드디어 나에게 날씬하다 하였다. '칭찬'을 앞세운 평가에 가끔 기분이 좋았다. 크롭티를 입어도 뱃살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양쪽 허벅지는 꽤 멀리 떨어져 지냈다. 신기했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내 몸을 좋아하지 않았다. 팔뚝이 조금만 더 가늘었으면. 종아리가 조금 덜 굵었으면. 끝이 없었다. 나는 언제 내 몸과 행복해질 수 있나.
잡히는 뱃살이 없어 신기했지만, 여전히 내 몸이 좋지는 않았다. 2019년 여름부터 건강상의 이유로 약을 먹게 되었다. 무서운 속도로 살이 쪘다. 흔한 부작용이었다. 1년이 지나고 보니 어느새 62kg이 되어 있었다. 약은 바꿨지만 찐 살이 절로 빠지지는 않았다. 두 번째 직장을 그만두었다. 나의 가는 허리가 좋다던 연인은 나를 떠났다. 할 일이 없어 운동에 몰두했다. 내게 남은 건 58kg의 몸뚱이뿐이었다. 그런데,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내 몸이 좋았다. 왜였을까?
입고 싶은 옷을 마음대로 입었다. 내 나이 고작 서른하나지만, 나름대로 인생의 1/3을 살았다.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생겼다. 우당탕 겪다 보니 깨달은 게 있었다. 앞으로는 이렇게 살자 다짐했다. 첫 번째, 건강하자. 모두들 건강이 제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겉으로 아름다워 보이는 몸을 갖기 위해 스스로 심신을 괴롭히는 사람이 많다. 나도 그랬다. 고통스러운 주사를 맞고, 제때 먹지 않았으며, 매 순간 외모에 대한 압박감을 가졌다. 이제는 아니다. 건강 때문에 두 번이나 일을 그만두었다. 겉으로 보이는 건 무의미하단 걸 느꼈다. 더 이상 칼로리 소모를 위한 '고통 수단'으로써 운동하지 않았다. 정신 건강과 체력을 위해 운동했다. 즐거웠다. 인중에 흥건한 땀마저 좋았다. 운동해내는 내 몸이 대견했다. 살은 찌기도 하고 빠지기도 하는 것이더라. 먹으면 배가 나오고, 생리하면 다리가 붓고, 운동하면 배가 고프다. 시시각각으로 자연스레 변하는 내 몸을 받아들인다.
두 번째, 지금을 살자. 본디 계획이 인생의 전부인 인간이었다. 계획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초조했다. 하지만 세상은 요지경. 인생사 모든 게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 몸마저도 그랬다. 그나마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다이어트했지만, 나는 만족할 줄을 몰랐다. 그 노력을 하느라 일상의 행복을 잃었다. 예쁜 옷도, 맛있는 음식도 미래의 멋진 나를 위해 미뤄야만 했었다. 프랑스의 철학자 몽테뉴는 이런 말을 남겼다. "어리석은 자의 인생은 즐거움 없이 완전히 미래만을 향해 있어 불안하다." 찔렸다. 과거에서 나를 미리 보고 한 말 같았다. 이제 더는 살 빼고 입을 예쁜 옷을 미리 사두지 않는다. 마음에 드는 옷을 사서 바로 입는다. 옷에 나를 맞추지 않고 내게 맞는 옷을 입으니 편하다. 예쁜 옷 바로 입으니 신난다. 먹고 싶은 걸 흔쾌히 먹는다. 달큼한 양념 돼지갈비가 입안에서 살살 녹을 때의 황홀함을 곧장 즐긴다. 이렇게 지금 이 순간을 충실하게 산다.
지구의 다양한 사람들, 그 속에 내가 있다. 세 번째, 존중하자. 추억의 숫자쏭을 아는가? '60억 지구에서 널 만난 건 럭키'라더니, 전 세계 인구는 어느새 78억을 돌파했다. 이 많은 사람 중에 나와 똑같은 이는 없다. 지구상에 나는 나 하나뿐이고, 너는 너 하나뿐이다. 독특하고 유일한 존재다. 서로 다르지만 틀린 자는 없다. 고로 우리는 비판이나 평가의 대상이 아니다. 너나 나의 신체를 동경하고, 간섭하고, 흉볼 필요가 없다. 아, 이유는 또 있다. 안 그래도 스트레스로 가득한 세상이다. 나까지 나를 괴롭힐 수는 없다. 내 모습 그대로를 존중하기로 한다.
한 친구는 단체 요가 수업에서 느낀 점을 이렇게 얘기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몸이 존재하고, 나도 그중에 하나더라. 마음에 쏙 드는 건 아니지만, 이제 나는 내 몸을 인정해."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영화 제목이, 이 한 문장이 내게 꼭 맞는다. 난 여전히 뚱뚱하거나, 뚱뚱하지 않다. 예나 지금이나 내 몸의 무게는 대동소이하다. 하지만 비교하고 욕심 많고 속만 상했던 그때의 나는 틀렸다. 건강하게 지금을 살고 나를 존중하자는 마음가짐이 옳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