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성인 교육 도메인의 스타트업에서 기획 일을 하고 있다. 스타트업이나 기획 일의 특수성과 상관없이 필자도 K-직장인의 일원으로서 마주치고 싶지 않지만 필연적으로 마주치게 되는 상황들이 있다. 보통 직장인이 원치 않는 상황을 처음 맞닥뜨리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기 마련이고, 반복적으로 마주치다 보면 직장 생활이 다 그런 거 아니겠냐는 말과 함께 의식적으로나 심적으로나 점점 무뎌지는 경향이 있다.
필자는 무뎌지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출문제는 시험에 또 나오기 마련이듯이 회사에서 한 번 일어난 일은 계속해서 일어나기 쉽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최대한 현명하게 부딪친 다음 오답노트라도 작성해서 직장인으로서 레벨 업 하는 데 활용하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필자의 오답노트의 몇 장을 공유하고자 한다.
잘하는 걸 잘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 욕을 먹게 된다.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이듯, 내가 잘하는 것에 대해서 전향적으로 표현하기 보다 겸양을 발휘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필자는 회사에서 본인이 잘하는 것을 앞에 두고 겸양을 발휘하면 본인에게도 팀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회사에서는 내가 스스로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찾아야 하고, 기회가 주어졌으면 주어진 상황 속에서 본인의 역량을 증명하려고 최대한 노력해야 하며, 본인이 맡은 일이 잘 됐을 때 박차를 가해서 더 치고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이와 동시에 내가 만든 성과는 정답이 아니라 시행착오의 산물이므로 내가 다음에 언제든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내가 모든 것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실패를 통해 배울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이게 필자가 생각하는 지적 겸손이고 회사에서 일을 할 때 지적겸손이 필요하다.
하루는 필자가 대표님과의 1on1 미팅에 들어가서 겁나게 깨지고 나왔다. 바로 이어서 동료 A님이 들어갔는데, 대표님의 화가 미처 다 가시지 않았는지 A님도 한바탕 깨지고 나왔다고 한다. A님께서 필자에게 말씀하시길, 본인이 못한 걸 가지고 뭐라고 하는 건 충분히 이해를 하는데 왜 '그런 소리'까지 들어야 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아마 대표님의 그런 소리는 A님뿐만 아니라 직원이라면 '듣기 싫은 소리'였을 것이다. 피드백이나 평가를 받는 자리에서 업무에 대한 지적과 듣기 싫은 소리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하고, 후자의 경우 철저하게 듣지 않아도 괜찮다. 그건 진심으로 날 걱정해서 싫은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세상에서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 줄 사람은 부모밖에 없다) 본인의 목표, 성과, 신상 등에 위배돼서 화가 나는데 이를 표현하는 방법이 서툴러서 듣는 사람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소모적인 언행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상사가 듣기 싫은 소리를 한다고 판단되면 한 귀로 듣고 나머지 한 귀로 흘리자. 나에게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일할 의욕이 떨어질 때가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일할 기회가 없어서 의욕이 떨어질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상사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들어서 의욕이 떨어질 수도 있을 텐데, 필자는 업무의 맥락에 대해 납득이 가지 않은 채로 일을 해야 할 때 일할 의욕이 떨어졌고 스스로(혹은 억지로)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일할 의욕이 떨어지고 스스로 동기부여하는 것이 어려울 때 반전의 계기를 내 안에서 찾기 보다 외부에서 찾기를 추천한다. 실질적인 해결책을 구할 수도 있고 마음의 위로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필자는 다른 사람은 이럴 때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서 유튜브를 찾아보다가 알고리즘의 간택으로 오사사TV 채널의 <일본 회사원들이 퇴근하고 집에 가기 싫을 때>라는 영상을 보고 크게 위로를 받은 적이 있다. 마츠다 부장님이 노상에서 직원들과 술 한잔하는 모습이 얼마나 시원해 보이던지.
이에 질세라 그날 저녁 필자도 동료와 함께 삼겹살에 소주를 했다. 소주 몇 잔으로 경직된 마음이 풀어졌는지 모르겠지만, 다음 날 말랑해진 마음으로 출근하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었던 것 같다.
오늘의 이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