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성인 교육 도메인의 스타트업에서 기획 일을 하고 있다. 기획 업무의 특성상 모든 일을 혼자 해결할 수 없기에 동료의 리소스가 필요하고, 스타트업의 특성상 시스템보다 개개인의 능력치가 업무 성과에 더 큰 영향을 주기에 동료의 역량이 필요하다.
필자는 운이 좋게도 필자보다 뛰어난 역량과 훌륭한 워크에식(work ethic)을 가진 동료를 만나서 두 가지 필요조건을 한 방에 해결할 수 있었다. 또한 감사하게도 동료들과 함께 일하면서 의미 있는 실패를 할 수 있었고 소기의 성과도 거둘 수 있었다.
필자는 출근길 지옥철을 뚫고 사무실까지 출근을 했으면 사무실에서 최대한 뽕을 뽑고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무실엔 동료가 있다. 사무실에서 동료와 함께 일하면서 동료의 모습을 보고 배우는 것이 사무실에서 뽕을 뽑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아마 퇴근길에 탕비실을 들려서 남은 간식을 가방에 쓸어 담아 오는 것보다 인생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오늘은 필자가 사무실에서 벤치마크하고자 했던 동료의 모습 몇 가지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A님은 업무 생산성이 높았다. 본인이 할 일의 소요 시간을 잘 알고 있어서 스스로 본인의 시간을 통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보기에 이 경지에 도달하려면 선행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우선 일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많이 해봐야 한다. 일을 그냥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할 때 본인에게 주어진 상황과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적절한 인풋만 투입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처음엔 분명히 비효율적인 과정을 겪을 텐데, 비효율의 축적으로 효율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에 집중해야 한다. 아무리 해야 할 일이 많다고 해서 멀티태스킹을 하거나 여러 일을 평등하게 하지 않고, 하나에만 집중해서 본인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야 한다. 필자는 이게 A님이 본인의 시간을 통제한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손이 유난히 빠른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업무의 생산성이 높다는 것은 짧은 시간 동안 일을 많이 한다는 뜻이 아니라 투입한 리소스 대비 일의 성과가 좋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업무의 결과가 아닌 성과를 기준으로 피드백하고, 피드백하며 배운 레슨을 다음 업무에 적용할 때 일을 끝내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더 잘하기 위해 활용해야 한다. A님은 적은 연차에도 불구하고 이 선행 요소들을 빠르게 체득하신 것 같다.
B님은 동료와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거절, 반려, 반대 등 부정의 의사 표현을 명확하게 함으로써 동료의 리소스를 아껴줬다. 업무에 대해 아닌 부분은 아니라고 칼같이 지적하고, 요청 중에 못하는 것은 못한다고 딱 잘라서 말했다. 당연히 본인이 반대하는 이유와 못하는 이유도 논리적으로 예의 있게 설명했다.
필자는 일을 하면서 성과를 내기 위해 2가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위치에서 목표 지점까지 최단거리로 가야 하고, 최단거리로 가는데 방해되는 행동들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불명확한 커뮤니케이션은 동료가 일을 할 때 최단거리로 가지 못하게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 쉽게 말해 쓸데없는 일을 하게 만든다.
특히 우리는 부정의 의사를 표현할 때 "아닌 것 같아요", "어려울 것 같아요", "그건 좀 힘들 수 있어요" 등과 같이 완곡하게 표현하곤 한다. 일하려고 온 회사에서 일을 안 하겠다고 또는 못하겠다고 말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에서 비롯된 행동일 것이다. 하지만 이 죄책감은 팀이 최단거리로 가는데 방해가 된다.
필자는 B님처럼 동료가 일을 할 때 최단거리로 갈 수 있도록 솔직하게 의견을 전달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보기에 B님은 이미 최단거리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사사로운 감정 없이 명확하게 본인의 의사를 표현한 덕분에 필자를 포함한 여러 사람의 리소스를 아낄 수 있었다.
C님은 우리 팀에 시니어로 합류했지만, 필자가 한동안 시니어인지 몰랐을 정도로 C님이 일하는 태도는 겸손 그 자체였다.(동료에게 관심이 없었던 게 아니다) 특히 일을 할 때 다름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겸손했다.
일하는 방식이나 견해는 사람마다 팀마다 얼마든지 다를 수 있고, 이로 인해 내 주변의 상황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직원으로서 주어진 상황을 바꿀 수 있다면 당장 바꾸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당장 바꿀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면 주어진 상황 안에서 최대한 주도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필자의 팀은 워낙 정신없이 일을 하는 경향이 있어서, 경력 사원의 입장에서 처음 우리 팀에 합류했을 때 기존 동료들이 일하는 방식 중 납득되지 않았던 부분이 분명히 많았을 것이다. C님과 같이 차곡차곡 정리하면서 일을 하는 스타일은 더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C님은 겸손의 자세로 기존 동료들이 일하는 방식부터 학습했다.
필자가 보기에 C님은 당장 업무의 주도권을 본인에게 가져올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재빠르게 차선을 선택한 것이다. 이후 어느정도 정리가 되자 그제서야 본인의 사고방식, 노하우 등을 업무에 활용하면서 본인의 영역을 점차 넓혀갔다. 이렇게 주도적으로 일한 경험은 다 본인의 커리어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의 이야기 끝.
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글이 직장 동료에 대한 글이었다면 아래 글은 직장 상사에 대한 글입니다. 저희 팀장님을 자랑하는 글이기도 합니다. 함께 읽으시면 좋을 것 같아 추천드립니다.
https://brunch.co.kr/@onestarbrunch/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