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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지기 Jun 18. 2022

뻐꾸기 울음소리를 듣다(1)


바람이 나뭇가지로 쫓겨 가는 유월의 산길은 자연의 외경심이 풍족합니다. 금창초와 산딸나무가 핀 유월 숲에는 비릿한 풀냄새와 봄의 마지막 꽃, 밤꽃 냄새가 질펀합니다. 밤꽃은 마지막 오월을 알리는 꽃입니다. 밤꽃이 필 때면 비가 내리고, 그 빗물이 실개천을 깨우고 여름을 마중합니다.  


  며칠 전, 익숙하지 않은 곳에 내가 있음을 보았습니다. 가지 않아도 괜찮을 곳에서 허우적거렸습니다. 누군가는 눈부시게 빛나는 자리일지 모르겠습니다. 무성한 요란과 정제되지 않는 곳을 벗어나 오랜만에 푸르 청청한 숲길을 걷습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리, 아무도 경쟁하지 않는 산길에서 살 오른 어린나무와 가지 끝에 힘을 주고 서 있는 늙은 느티나무를 올려다보며 너덜거리는 마음을 내려놓고 숲과 하나 되어 걷습니다. 

  소리가 멈춘 숲에서 거침없이 외치는 자유로운 시간입니다. 질식된 과학 문명에도 노매드적 삶을 갈구하고픈 하루입니다. 먼 곳에서 들려오는 뻐꾸기 울음소리에 술렁이는 기쁨마저 잠재우며 낮은 자리를 찾아갑니다. 


  숲을 점령한 새소리는 내게 청량감을 줍니다. 모든 생명체 삶의 소리입니다. 이런 요란 속에 꽃바람이 가득했을 오월의 단면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새들이 오고 가는 익숙함도 놓치고 말았습니다. 새들의 구역을 첨벙거리듯 점령했습니다. 한 걸음 내 디딜 때마다 새들의 절박한 소리를 듣습니다. 낯선 자의 침입을 알리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입니다. 그들은 긴박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소리는 자연계의 생명적 파동입니다. 이 소리는 청량감이 있어 복잡해진 머리가 사뿐해집니다. 이것이 자연입니다. 풍요로운 자연의 소리입니다. 새소리와 나뭇가지 흔들리는 소리에 닫힌 오감이 조금씩 열립니다. 호흡은 낮아지고 들뜬 마음이 가라앉으며 자연과 숨을 공유하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입니다. 


  오늘은 세로토닌이라는 행복 물질보다는 옥시토신이라는 사랑의 물질이 더 많이 분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낯선 곳에서 오로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치열함을 바라본 내게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관계를 풀어가는 사랑의 물질인 옥시토신이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너덜거리는 마음에 힐링이 필요합니다. 나무는 제 몸의 전부를 내게 주고 서 있습니다. 그것이 숲이 내게 주는 절정의 베풂으로 받아들입니다.


  국립공원의 아버지숲의 성자자연보호의 선구자 등으로 불리는 세계적인 환경 운동가인 존 뮤어(John Muir,1838 ~ 1914)는 숲을 걸을 때는 아무것도 갖지 않고 침묵 속에서 홀로 걸어야 진정으로 야생의 심장 안에 들어설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그는 또 미국의 삼림 보호를 처음으로 주장하여 캘리포니아주의 요세미티와 세코이아 국립공원을 세우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그는 우주로 가는 가장 선명한 길은 야생의 숲을 지나는 길이다.”라고 외칩니다그래서 숲에서는 침묵해야 합니다숲에서는 생각을 버리고 언어를 내려놓아야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숲에서는 비우고버리고내려놓아야 합니다그래야 숲이 주는 단순함과 조용한 위대함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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