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인사를 드립니다. 원래는 개인적으로 연락을 드릴까, 하다가 그래도 우리, 편지는 끊어진 지 꽤 되었지만 얼굴은 한 달에 한 번씩 보고 있었으니까요, 편지 이야기는 편지로 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습니다.
우선 멋대로, 아무런 양해도 구하지 않고 편지를 쓰지 않은 점에 대해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변명을 하자면 아마 이 편지를 쓰기가 어려워진 그 시점부터, 저는 조금씩 힘들어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힘들다고 자각하지 못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힘들었던 것이 맞습니다. 무엇이 힘들었느냐 하면,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너무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고 너무 많이 반응하고 너무 많은 감정들이 오고가고 너무 많은 감정들을 소모하면서, 조금씩 마음이 망가지고 있었던 듯해요.
얼마 전에 웹툰 작가 이말년이 개인 방송을 잠시 쉬겠다고 하면서 자신의 감정과 행동이,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타인들의 반응이 뭔가 계속해서 어긋나고 있다는 걸 느꼈다고 했어요. 그렇다면 이건 무언가 스스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게 번아웃이라는 것인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고 했어요. 그 말을 듣고 아, 그렇구나, 그렇다면 나도 번아웃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정말 밝고 건강해 보였던 사람이 알고 보니 우울증이었을 때... 저 역시 저에게 문제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작년 가을쯤에 제 가장 가까운 친구가 전세사기에 얽힌 (것으로 강하게 의심되는) 사건이 있었고, 정작 친구는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집을 구하러 다니고 계약까지 함께했던 저는 일주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했었어요.(이것도 이상하지요.) 다행히 잘 해결되었지만(보증보험 가입이 승인됨) 그 이후로 이유 없이 기분이 처지는 일들이 반복되었어요. 저녁 무렵만 되면 아, 어떻게 하지, 이 저녁을 어떻게 버티지, 하는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곤 했지요. 그리고 밤에는 악몽을 꾸면서 몇 번씩 잠에서 깼습니다.
그 사건이 원인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그저 라이터에 불을 붙이는 행위에 불과했지요. 그런 일로도 무너져내릴 만큼 제 마음이 약하고, 또 마구 헝클어져 있었던 겁니다. 그러는 와중에 너무 많은 일들을 벌이고,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너무 많은 말들을 쏟아냈지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그럼에도 나는 운동도 열심히 하고, 하는 일도 다 잘 되고 있고, 걱정할 것도 없으니 내 마음을 잘 다스리면 괜찮을 거라고 믿었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결국 몸에 탈이 나버리고 만 것이지요.
이유도 딱히 없고 치료법도 딱히 없는 질환에 걸리면서 몸과 마음이 완전히 무너져버렸습니다. 그 일주일 동안 저는 어떻게 죽는 것이 가장 편안할까, 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요. 절망에 휩싸여 생각한 것이 아니라 무척 이성적으로, 이런 상태로 사는 것보다는 죽는 것이 한결 낫다고 궁리했던 저를 생각하면, 지금은 소름이 끼칩니다. 기껏 그런 일로 죽는다는 생각을 했던 저와, 기껏 그런 일로도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던 저는 어디가 고장이 나도 확실히 고장이 났던 거겠지요.
다행히 하던 일을 모조리 중단하고,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일을 줄이고, 아무 생각하지 않고 쉬고,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고, 한의원에 다니며 망가진 것들을 조금씩 회복해가면서 지금은 아주 평온한 상태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기분이 아주 좋거나, 아니면 아주 처지는 것이 아닌 그저 평온한 상태였던 것이 언제였나 모르겠어요. 제 인생에 그런 날이 있었나 싶습니다. 지금은 신기할 정도로 마음이 평온합니다.
그럼에도 다시 사람들을 만날 생각을 하면 속이 불편합니다. 뭐랄까, 사적인 만남이 스트레스로 다가오기 시작한 거예요. 전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는데 이상하지요. 뭔가 없는 기운을 끌어다가 써야 할 것 같은 기분이랄까요. 아 그랬구나, 나에게 많지 않은 기운을 내가 억지로 끌어다 쓰면서 살다가 이렇게 탈이 났구나, 싶습니다. 그 상태로 계속 달렸으면 어땠을까요. 저 진짜 탈이 나도 단단히 탈이 나지 않았을까요?
참 신기한 일인데,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일본의 작가를 작년 말 즈음에 실제로 만날 일이 있었어요. 그런데 두 번이나 그 만남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선물까지 준비해뒀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일본어로 생각도 해두었었는데, 어쩌면, 정말 운이 좋으면 그 분과 함께 뭔가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어쨌든 그 만남이 두 번씩 파토가 나고, 저에게 이런 문제들이 생기면서 그 일들은 잠정 보류가 되어버린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어보고 나니, 그건 운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때는 못 만난 것이 아쉽고, 이거 뭔가 인연이 아닌 건가? 싶었는데, 만약 그때 그 분을 만났더라면 저는 더 힘들어지지 않았을까, 여전히 있는 기운 없는 기운 전부 다 끌어다 쓰느라 가뭄 때의 강바닥처럼 말라버린 제 마음이 쩍쩍 갈라지지 않았을까 싶은 겁니다.
그래, 그렇다면 이런 일이 내게 생긴 것은 분명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내가 지금껏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찬찬히 돌이켜 보는 계기로 삼기로 했어요. 나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어떤 식으로 잘못된 스텝을 반복해 왔는지를 요즘은 생각하다가 생각하지 않다가 그러고 있어요.
아주 오래 전에, 그러니까 처음으로 사귄 남자에게 차였을 때, 사실은 거의 차이도록 스스로가 몰아간 것이 아닌가 싶지만, 그때 저는 좀 신기한 경험을 했어요. 그 전까지는 구질구질하고 유치찬란하다며 비웃던 유행가의 가사들이 한 구절, 한 구절 마음에 와닿다 못해 뼛속까지 스미는 그런 경험을 말이에요. 하하, 신기할 것도 없지요.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겪는 그런 일을 저도 겪은 것뿐이니까요.
요즘도 그러합니다. 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책 속의 구절들이 모두 저에게 말을 겁니다. 내 이야기인가 싶을 정도로 생생하게 와닿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들을 정리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닌 것 같아, 그저 그 구절들을 옮겨 적어볼게요.
사람은 교만한 동물이어서 모든 일이 술술 풀릴 때는 잠시 멈춰서 생각해보는 법이 없습니다. 별안간 어떤 슬픈 일을 겪거나 잘 풀리지 않는 상황에 놓여서 '아아, 대체 왜......' 하고 낙담하고서야 비로소 자신의 발밑을 보게 됩니다.
어쩌면 나는 남을 배려하는 척하면서 주위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열심히 한다고 하면서도 노력하는 방향이 조금 어긋났던 것은 아닐까? 마음이 약해지면 자신의 작음을 절감하게 됩니다. 평소에는 좀처럼 하지 못하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낙담해서 침울해진 순간은, 기운 넘치고 의기양양한 나의 내면에 가만히 숨어 있던 또 한 명의 나와 조우하는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우울할 때는 우연히 읽은 책의 한 구절에 찡하게 감동하기도 하고, 문득 라디오에서 들려온 음악에 한없이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마음이 약해지면 그만큼 안테나의 감도가 민감해지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쳐버리던 것이 이때는 아무 저항 없이 마음 깊숙이 들어옵니다. 그리고 '아, 참 다행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경험도 제법 괜찮지 않은가요?
항상 기운차게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날도 있는 법이지요. 그렇다면 '그렇지 못한 날'에만 볼 수 있는 것, 들을 수 있는 것을 보고 들어보려 합니다.
- <올해의 목표는 다정해지기입니다> / 이치다 ㅗ리코
가장 먼저 중시해야 할 사항은 반복의 늪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반복은 순환의 죽음이다. 아니, 반복 자체가 죽음이다. (중략) 자기 동일성의 증식이 곧 반복이다. 반복의 늪에만 빠지지 않아도 인생은 일단 살 만하다. 좋건 나쁘건 변화의 국면들을 헤쳐 가면서 끊임없이 다른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습을 버리지 못한다. 그에 대한 명분도 늘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이게 바로 그 사람의 발목을 잡고 있는 함정이다. 이걸 고치기 위해서 성과 열을 다해야 한다. 그렇게 하나의 문턱을 넘어가면 그 다음부터는 좀 수월하다. 그것이 주는 자기배려의 기운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몸의 생리적 흐름도 좋아지고 얼굴표정도 달라진다. 인연조건이 달라지는 건 말할 나위도 없다. 그 다음엔 거기에 안주하지 말고 또 다른 습속의 고리를 끊어 내야 한다. 하나를 넘으면 더 견고한 장벽이 드러난다. 그래서 용신을 쓰면 쓸수록 나의 원수는 곧 나 자신임을 알게 된다.
-<나의 운명 사용 설명서> / 고미숙
'내가 지금 내 자신이어도 괜찮다.'는 느낌은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그냥 내버려두면 된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이의 존재 자체가 가족에게 쓸모가 있다는 느낌을 주어야 한다. 내가 공부를 잘하거나 무엇을 이뤄서가 아니라, 스스로 즐거운 일을 하면서 타인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
-<오히려 최첨단 가족> / 박혜윤
"행복은 노력해서 이루는 것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 자연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 즉 '반드시 이렇게 되어야 해'라는 자아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행복이다."
-<올해의 목표는 다정해지기입니다.> / 이치다 노리코
저는 지금껏 저 자신이 되는 데에는 큰 관심 없이 살아온 것 같습니다. 내가 누구인지는 항상 궁금했지만, 그보다 더 궁금한 것은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였지요. 그와 동시에 아무 것도 아닌 상태가 불안하고 초조했습니다. 불안함과 초조함은 조급함으로 저를 내몰았어요. 제 그런 불안과 초조와 조급함은 아마 제 주변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제 시각에도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저도 그런 제가 싫었지만, 그런 마음을 전혀 통제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괴로워졌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지금은 여기까지, 여기까지 쓰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에너지가 고갈되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러고 보면 글을 쓰는 일을 한다는 것은 큰 축복임과 동시에 저주일 수도 있는 것 같아요. 늘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하니까요. 보통의 강인한 몸과 마음이 아니라면 그 자신에게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당분간은 마른 강바닥 같은 제 마음에 자연스럽게 물이 차오르기를 기다려보려 합니다.
곧 웃는 얼굴로 만나요. 광화문에서 시시껄렁한 농담들을 하며 웃던 시간이 벌써부터 그립습니다.
3월 15일
수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