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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라 오드리 Jan 24. 2022

나에게는 활시위가 없다

오롯이 나에 관한 이야기

사람들은 내가 O형인 줄 알았다. 어쩌다가 혈액형 이야기가 나와 AB형이라고 하면 다들 놀란 토끼눈을 했다. 면접 볼 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자신의 장점에 대한 질문이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쉽게 얻고 알아차리는 것. 내 대답은 늘 비슷했다. 나에게 초능력이 생긴다면 무엇을 얻고 싶냐는 질문에 사람의 마음을 빨리 알아내는 것이라고 답했다. 

왜 나는 그렇게 마음에 집착했을까?


초등학교 5학년. 아빠가 서울에 가서 공부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명만 대도 다 알법한 깊은 산골마을에서 서울이라니 그냥 동네 소풍 가는 것쯤으로 생각했나 보다. 똑똑한 것과 주도적인 것은 달랐다. 난 혼자 설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저 친구들에게 잘 보이는데 노력했다. 무시당하고 없는 취급보다는 차라리 나를 버리는 게 나았다. 나를 버리고 친구들의 마음을 얻었지만 그렇게 오래가지는 않았다. 중학교까지 버틸 대로 버티다 후퇴했다. 아버지 고향으로 가기에는 아버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중간지점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부모님 곁에서 함께 살았다. 


다 잘 될 줄 알았다. 

또 다른 시작이었다. 서울에서 전학 온 나는 친구들의 예상만큼 공부를 잘하지 않았다. 기대가 무너졌다. 난 다시 내 마음이 아닌 친구들과 선생님, 부모님 마음에 집중했다. 서울에서보다 얻어야 할 마음이 너무 많았다. 

고등학교 3학년. 대입을 치르고 국어교사를 꿈꾸던 내가 지원한 건 상경 대였다.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다. 기대에 부응한답시고 관심도 없는 세법 공부를 4년이나 했다. 그리고 뚜렷한 목표도 이유도 없이 취업을 했다. 

다시 시작이다.


대학 4년. 공부를 열심히 하는 대신 일탈이라고 선택한 건 여행이었다. 처음 내가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하지만 자격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까지 공부한 걸 포기하기에는 너무 억울했다.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죽기 살기로 외웠다. 뜻도 모르고.


어른이 된 건 아이를 낳고 나서다. 나처럼 크는 걸 바라지 않았다. 왜 나는 내 마음에 귀 기울이지 않는지조차 관심이 없었다. 첫 아이 마음이 궁금했다. 내 속으로 낳았는데 도통 알 수가 없었다. 4살 난 딸아이와 마음이 맞지 않아 매일같이 싸웠다. 뭘까?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 놓고 도서관 수업을 신청했다. 처음으로 에니어그램 수업을 들었다. 


3차시 수업에 유형별로 발표를 해야 하는데 딱하지 내가 지목됐다. 묵묵히 내 이야기를 꺼내놨다. 

"음.... 어떤 일을 시작하든 반드시 다른 사람 눈에 들어야 해요. 고등학교 졸업 후 처음 수영을 시작했는데 강사가 저보고 못한다고 하길래 매일 4시간씩 연습했어요. 6시 첫 타임이었는데 10시가 되어서야 수영장을 나왔어요. 그렇게 연습하고 나니 다음 달 제가 시범을 보였죠. 거절 잘 못해요. 누가 부탁하면 꼭 해야 하고 워커홀릭이란 소리 많이 들었어요. 주말은 당연히 일해야 하고 야근도 수시로 했어요. 누군가에게 평가받는 게 중요했어요. 다른 사람 눈에 좋은 사람 이어야 했죠. 제 이야기만 하면 그러니까 이제 그만할까요? " 돌아온 대답은 "아니요. 계속해주세요."였다.  그렇게 덤덤히 이야기하는데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아 내가 이렇게 살았구나. 


나는 화살이 많다. 

타인의 감정이 중요하니 사교성이 좋고 리더로 자주 뽑혔다. 운동도 잘하고 무엇보다 적극적이다.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인지 모르나 좋아하는 건 안다. 글쓰기를 좋아하고 아이들 앞에 서는 것이 좋다. 작가가 되고 싶었다. 주변에서 등 떠미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번에도 남들이 이야기하니까 꼭 해야 할 것만 같다. 싫지 않았다. 비록 활시위를 쥔 주인은 내가 아니지만 대신 그 힘을 빌려서라도 화살을 날리고 싶다. 


나에게도 곧 활시위가 생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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