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역경, 그리고 행복!
스물다섯이 되던 해, 동갑내기 친구와 우리 20대도 벌써 절반이 지나갔다며 못내 아쉬워했던 기억이 난다. 어린 아이나 노인이나 한 살, 한 살 나이 먹어가는 것에 아쉬움을 느끼는 건 절대적 나이와 상관없는 자연스러운 감정일 테다. 그럼에도 아직 어리다고 해도 좋고, 어른이 되었다고 해도 좋은 '20대'라는 비장의 카드를 잃는다는 건 정말 서운한 일이다.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다는 이유로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감도 느껴보고,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불투명한 미래와도 오랜 시간을 버텨 맞서 보았다. 그 사이 굴러가는 낙엽에도 꺄르르 웃을 수 있는, 마냥 즐겁고 행복하던 밝은 소녀는 사라지고, 자주 냉정하고 때로는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는 사람이 자라 있었다. 처음에는 그런 변화에 마음 아파도 보고, 긍정의 힘을 빌어 그때의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무진 애를 쓰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은 알아갈수록 험한 곳이어서, 마음이 여린 사람은 이리저리 치이며 다치기 십상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만두었다.
문제는 이렇게 어려운 세상살이를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데 있다. 어른들이 실패해도 좋다고들 말해주는, 그러나 정작 실패할 용기는 없던 20대의 나는 좋아하는 것을 찾기보다 잘하는 것에 집중했다. 그 결과는 처절했다. 피아노 학원을 울면서 억지로 다니는 애처럼 회사를 다니고 있으니 앞으로 어디에 내 정성을 쏟아야 할지 감을 못 잡고 있다. 서른 즈음에 깨달은 인생의 성공비법 중 하나는 뼈를 깎는 노력으로 진심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것인데, 회사에 진심이고 싶지 않아서 문제다.
인생을 즐기라고! 그래, 격하게 공감한다. 진심으로 그렇게 살고 싶어서 이렇게 고민이 많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행복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서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제야 생각해보려니 어렵다. 이 또한 뼈를 깎는 노력이 있으면 답이 나오겠지.
어쩌면 인생은 100 중 99의 고난과 역경, 그리고 0.00000001 혹은 0.001처럼 작게 쪼개진 총합 1만큼의 행복들이 그 사이사이에 끼어, 자꾸만 견디어 나아가게 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힘들 때마다 '고난과 역경, 그리고 행복'이라는 주문을 외며 버티면 꼭 잠시 달콤한 순간이 찾아오기는 하더라. 그래도 다행인 점은, 각자의 노력으로도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힘든 하루 끝에 맛있는 야식을 먹거나 기분 전환하러 좋은 곳에 다녀오면 분명 고난의 흐름 속에서도 행복의 순간을 내가 만들어냈다고 느낀다!
인생이 아름다운 것이라기보다는, 일단 태어났으니 마지못해 사는 것이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30년 가까이 크게 아프지 않고, 직장이 어쩌니 돈이 어쩌니 해도 늦지 않은 나이에 일을 시작했고, 든든한 짝꿍을 찾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일로 가득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 나는 서럽게 울다가도 죠리퐁을 먹으면 기분이 풀리곤 했다. 마침 남편이 죠리퐁을 먹자고 해서 한 그릇 가득 담았더니 마음이 든든해졌다. 20년 전의 밝은 소녀는 영영 사라진 게 아니라, 가끔씩 얼굴을 내밀고 소소한 순간에도 0.0000001 정도의 행복까지 빠짐없이 느끼게 해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