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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퍼루키 May 26. 2022

어서 오세요, 00 약국입니다.

  어려서부터 약사가 되는 것이 꿈은 아니었다. 아주 어릴 적 나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아무것도 없는 무인도에서조차 오로지 본인의 지식만으로 남을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이 멋지고 부러웠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입시가 그러하듯 나의 능력으론 의대에 가지 못하였고 어쩌다 보니 군 제대 후 약대 입시에 뛰어들어 재수의 노력 끝에 합격하였다. 그렇다고 어릴 적 꿈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의사의 그런 능력은 늘 동경의 대상처럼 여겨졌다. 이제 다 커버린 내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선택은 없었다. 그냥 현실에 순응하며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야지. 그러나 어릴 적 꿈을 버리기엔 뭔가 아쉽고 가지고 있자니 가질 수도 없어 처분하기도 애매했다.


  대신 왜 그렇게 의사가 되고 싶었는지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지식 하나만으로 남을 도와줄 수 있다는 것, 그 본질은 뭘까. 아주 어릴 적 그 생각이 지금의 첨단을 달리는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할지도 궁금했다. 또 돕는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숭고하고 멋지지만 굳이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그리고 결정적으로 지금의 다 커버린 내가 여전히 누군가를 돕고 싶은 마음이 있을까. 내 삶을 쫓아가기 바쁜데 여유가 존재할까.


  잠시 MBTI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인프제(INFJ-t)이다. 인프제의 특성처럼 결론이 나지 않는 생각에 온 정신을 쏟곤 한다. 꼬리의 꼬리를 무는 생각이 나를 괴롭게 할 때도 있고 때론 꼬리를 무는 생각 덕분에 더 나은 삶으로 이끌 때가 있다. 인프제답게 어릴 적 꿈에 대해서도 끝이 나지 않는 어쩌면 다소 허황되기까지 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누군가 딱 멈춰주지 않으면 언제까지 생각을 할지도 몰랐다. 


  꼬리를 물고 물어 헤어질 때까지 물고 뜯어도 원하는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냥 괴롭기만 했다. 그래서 그냥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대신 이미 약사가 되어버린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집중해 보았다. 


  단순히 생각했을 땐 약사의 의무를 저버리지만 않는다면 그냥 사회의 쓸만한 한 인원이 될 것이라 믿었다. 조제 실수를 하지 않고 용법 용량을 잘 숙지해 전달하고 약의 관리를 잘하는 정도만 해도 소위 평타는 친다. 


  그러나 늘 그래 왔듯 우리의 모든 시험은 항상 평균이 높아져만 간다. 그래서 가만히 평타만 치고 있다가는 어느새 저 밑을 헤매고 있을게 뻔하니 미리 준비해야 했다. 특히 남보다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머릿속에 품고만 있지 말고 실행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잘하는 것을 찾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늘 남들처럼 노력했고 그만큼의 결과를 얻었기에 이제와 딱히 잘하는 게 뭔지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대신 좋아하는 것부터 찾아보았다. 좋아하는 것도 선뜻 말하기 어려웠지만 문득 생각나는 한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유 퀴즈 온 더 블록’


  왜 유퀴즈가 좋았을까. 그에 대한 대답은 유퀴즈를 좋아하는 다른 사람들과 결이 같다. 다른 예능과 달리 사람 냄새가 진하게 나기 때문이고, 잠시 잊혔던 현실적인 삶에 대한 향수가 묻어나서 아닐까. 


  유퀴즈의 성공과 시청률이 증명하는 크기가 지금 이 시대는 비현실적임을 알게 해 준다. 뉴스엔 온갖 끔찍한 범죄가 도사리고, 어딜 가든 화제의 중심은 돈과 관련된 내용뿐이다. 도덕적인 것보다 부를 축적하는 일이 우선시되는 사회가 되었다. 이젠 꿈을 좇는 건 정말 허황된 꿈이 되어버린 것 같은 현실에 유퀴즈는 말한다. 아직 세상은 살만하다고. 어디선가 누군가는 열심히 본인의 세상을 위해 살아가고 있으며 또 어디선가 이제 막 입학한 어린이는 세상을 향해 꿈을 펼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유퀴즈를 보며 나도 한번 세상에 알려주고 싶었다. 대한민국 어딜 가든 늘 주변에 존재하는 평범한 약국 속 세상을. 그리고 그 안에서 만난 가장 보통의 사람들과 지내는 약사의 일상을 전달하고 싶었다. 어릴 적 의사가 되길 원했던 이유처럼 내 본연의 힘으로 누군가를 편안하게 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사람 냄새가 생각보다 진하게 나진 않을 수 있지만 그래도 사람 냄새나는 글이 되어 어느 누군가의 마음에 편안함이 깃들길 바란다.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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