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퍼루키 Jun 04. 2022

아저씨, 박카스 하나 주세요.

  햇살이 짱짱하다 못해 내리쬐는 무더운 여름날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저절로 생각이 난다. 커피를 즐기는 사람은 물론 그다지 생각 없는 사람에게도 ‘아아’ 한 모금은 더위를 쑥 내려줄 거 같은 기분을 상상케 한다. 한국인의 ‘아아’ 사랑은 에스프레소만 취급하는 유럽 국가에서도 굳이 얼음컵을 구해와 ‘아아’를 직접 만들어 먹을 정도라고 한다.


  약국에서도 여름에 ‘아아’만큼이나 인기를 가진 제품이 있다. 최고기온이 조금씩 더 오를 때마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그 제품을 찾는다.


“아저씨, 시원한 박카스 하나 주세요.”


  냉장고에서 시원한 냉기를 품어 밖으로 꺼내면 이슬이 몽글몽글 맺혀있는 박카스는 마치 한 모금을 마시면 더위도 싹, 피로도 싹 풀어줄 것만 같은 기분을 선사해준다. 특히나 텔레비전이나 SNS 등 각종 매체에서 ‘나에게 선물하세요’라는 멘트가 마치 ‘나에게 이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나’라고 바꿔 말하는 거 같기도 하다.


  박카스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는 무려 196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초의 형태는 당의정(당분으로 겉을 감싼)의 제형을 가진 알약 형태였다. 알약 형태였다면 복용이 굉장히 쉬워서 많은 인기를 끌었을 것으로 보였으나 그 당시 기술의 열악함으로 알약의 겉에 붙은 당분이 녹는 바람에 앰플 형태로 제형이 바뀌게 되었다.


  현재는 앰플이 매우 흔하고 누구나 다루기 쉽게 제품이 만들어지지만 과거엔 앰플 형태 역시 익숙지 않아 주사제로 오인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다루기도 어려워 또다시 변화를 겪게 되었다. 그리하여 지금과 같은 액체 형태인 드링크로 출시하였다.


  우여곡절이 많기도 했지만 드링크로 출시한 이후에도 나름의 변화와 더불어 성공적인 마케팅의 힘으로 비슷한 제품 군에서 거의 1등을 놓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만큼 인기가 많아서 그런지 유독 박카스에 대해 애증을 가진 분도 많다.


  약국에서 박카스를 사러 오시는 분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혹시 중독이 되나요?”라는 말이다. 왜 다들 박카스에 중독(?)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은 중독된 것이 아니다. 중독될만한 성분도 없을뿐더러 굳이 따지자면 카페인 정도가 몸에 이상을 일으킬법한데 박카스에 들어있는 카페인은 약 30mg 정도로 시중 카페의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150mg에 비해 현저히 작다.


  그렇다면 왜 다들 중독(?)의 기분에 박카스를 매일 사 먹게 되는 것일까. 한 병씩 손에 쥔 사람들에게 일일이 물어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짐작컨대 반짝하는 효과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저렴한 가격도 매일 사 먹는데 한몫할 것으로 본다.


  반짝하는 느낌은 생각보다 빠르게 반응이 온다. 정확한 느낌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하루의 쓸 에너지를 미리 당겨다 쓴 기분처럼 순간적으로 기운이 난다. 물론 미리 당겨 쓴 만큼 하루를 마무리할 즈음엔 기운이 다 빠져 아무것도 하기 싫은 상태가 오기도 한다. 부작용 아닌 부작용이다. 그렇게 매일 먹다 보면 나중엔 먹은 날의 반짝하는 기분보다 먹지 않는 날의 기운이 더 빠져버린 것 같아 마치 중독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렇게 축 처진 기분을 느끼기 싫으니 박카스를 또 찾게 된다. 그러나 이건 진짜 중독이 아닐뿐더러 하루 이틀만 참고 지나면 굳이 먹지 않아도 기운이 빠지지 않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매일 사 먹을 수 있는 원동력으로 가격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사실 박카스보다 더 우수한 피로 회복 드링크가 많이 출시되었다. 하지만 성분이나 효과가 좋아진 만큼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만약 박카스를 먹다 비싼 것으로 바꾼다 하면 같은 돈으로 이틀에 한번, 사흘에 한번, 일주일에 한 번 먹어야 한다. 그래서 조금 효과가 떨어질지언정 만만하게 먹을 수 있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인기가 많은 만큼 박카스처럼 가격에 예민한 제품도 없다. 사실 박카스는 약국에서 가격시비가 가장 많은 제품이다. 요즘 50원 귀한 줄 모르고 살다가 박카스 결제할 때만큼은 50원이 이렇게 중요했나 싶을 정도로 다들 50원에 예민하다. 오래전부터 박카스는 저렴한 가격에 제공되었고 심지어 몇몇 약국은 손해를 감수하고 파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그러다 보니 동기들을 만나서 약국 관련 이야기를 하다 보면 빠질 수 없는 소재가 박카스다. 마진이 없거나 오히려 마이너스인 것부터 의욕이 나지 않는데 옆에 약국은 얼마고 저기는 얼마인데 하는 가격 시비를 들으면 하루의 피로가 풀리긴커녕 박카스의 ‘박’ 자만 들어도 피로가 겹겹이 쌓인다. 그래서 박카스를 아예 약국에서 빼버리고 싶다는 얘기도 들었다.


  나도 이런저런 이유로 박카스가 싫었다. 세상이 발전해서 이젠 박카스보다 더 나은 피로회복제가 얼마나 다양하게 많은데 굳이 박카스를 향한 맹목적인 믿음으로 사 먹는 사람들이 싫었고, 박카스 하나만으로 갖가지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싫었다.


  그래도 요즘 같은 불경기에(불경기가 아닌 시절이 있었나 싶지만) 박카스만큼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드링크도 몇 없다. 편의점에서 껌을 사도 1,000원이 넘는 시절이니 몇백 원으로 갈증과 피로를 풀기엔 더없이 가성비가 좋아 보인다. 다른 것들의 물가가 갑자기 너무 올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가격시비도 줄어든 거 같기도 하다. 오히려 박카스는 가격이 크게 오르지 않아 감사하단 말도 들었다. 그만큼 세상이 팍팍해지고 있는데 굳이 나까지 나서서 더 팍팍하게 만들 이유는 없다. 안 그래도 더운데 괜히 열 내지 말고 ‘아아’ 대신 박카스로 카페인을 대신 채워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에 잠긴다.

작가의 이전글 숨기고 싶은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