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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Dec 04. 2021

그럼 영어는 잘하겠네?

미국에서 돌아온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우리 아이들은 햇수로 4년이라는 시간을 미국에서 보냈다. 각각 초등학교 6학년과 3학년이 되던 해에 미국으로 전학을 갔고, 작년 말에 한국으로 돌아와서 이제 고등학교 1학년, 중학교 1학년이 되었다. 우리 아이들을 아는 지인들은 가끔 이런 얘기들을 한다. 주재원 아빠 덕분에 미국에서 살면서 영어 하나는 확실하게 마스터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그러면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잘 모르겠는데... 딱히 뭐가 좋은 건지.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 아이들은 전학 수속과 함께 영어 레벨 테스트를 치렀다. 애초에 사교육이나 선행 학습과는 거리가 멀었던 아이들이었기에 큰 기대는 없었지만, 테스트를 마치고 나오는 표정들이 생각보다 밝아서 "혹시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결과는 "역시나"였지만. 테스트 결과, 두 아이 모두 "측정 불가" 판정을 받고 파란만장한 미국 학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첫 등교를 하던 날, 나는 회사에 출근해서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재미있었다"며 우리 부부를 안심시켰지만, 쉽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학교에는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아이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잘 갖춰져 있었다. 하지만,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낯선 환경 속에서의 시간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하면 아직도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다행히, 아이들은 미국 학교 생활에 잘 적응했다. 간혹 “애들은 미국 가면 영어 금방 늘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지극히 평범한 우리 아이들의 영어는 “조금씩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좋아졌다. 부모 앞에서는 절대 영어를 쓰지 않았기에 아이들의 영어 실력을 가늠할 수는 없었지만, 언젠가부터 자랑스러운 듯 성적표를 내미는 아이들의 표정과 멀리서 친구들과 신나게 재잘대며 걸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커다란 파도를 스스로 잘 이겨냈음에 안도했다.




한국에 돌아온 이야기


1. 중학교에 입학한 딸아이는 자기가 미국에서 전학 왔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아이는 초등학교 6학년 학기가 끝나갈 무렵 전학 와서 바로 중학교에 입학했기 때문에 굳이 친구들에게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가장 친한 친구들 조차도 아이가 미국에서 살다가 왔다는 사실을 모른다고 한다. 아이는 한국에 돌아온 지금이 너무 좋다고 했다. 하교하면서 친구들과 분식집에 들러 떡볶이를 먹고 헤어지는 일상이 마냥 즐겁단다.


2. 아들 녀석은 고등학교에 입학한 첫날 본인이 미국에서 살다 왔다는 내용의 자기소개를 무려 "영어로" 했다고 한다. 게다가, 본인이 영어 부장을 하겠다며 번쩍 손을 들었다고 했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친했던 미국 친구들과 종종 온라인 게임을 하며 수다를 떨고는 했는데, 거기에 같은 반 친구들을 초대해서 제법 잘 어울려 논다고 한다. 그런 녀석이 얼마 전 들고 온 중간고사 성적표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다른 과목에 비해 한참 볼품없는 영어 점수를 받아 든 녀석은 친구들의 우정어린(?) 놀림을 어찌 견뎌야 할지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지금 우리 부부의 관심사는 아이들이 미국에서 영어를 마스터하고 왔다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결코 작지 않은 "문화 충격"을 두 번이나 겪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하굣길에 친구들과 떡볶이를 나눠 먹으며 즐겁다는 작은 아이도, "입시용” 영어 공부에 골치 아파하는 큰 아이도 모두 대견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영어는 미국에서 건강하게 잘 지내려고 배운거고, 이제 한국에 돌아왔으니 한국말이나 잘하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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