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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서 Feb 17. 2021

이불킥 전문가가 말하는 지침서

기억의 파편

밤에 이불킥을 해본 적이 있는가? 오늘은 이불킥 전문가의 비밀 노트를 공개하고자 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아... 내가 왜 그랬지?' 하면서 그날 일을 기억하며 이불킥을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는 유독 어렸을 적 이불킥을 한 적이 많았다. 이런 경험이 나를 전문가로서 성장시킨 자양분이 됐다. 오늘은 이런 나를 성장시킨 여러 사연을 소개하며, 전문가로서 이불킥을 방지하기 위한 안내를 하고자 한다.


사연 1. 넘어졌을 땐 아무렇지도 않게 빨리 일어나거나, 진짜 아픈 척을 해야 된다.


 이불과 따듯한 인연(?)이 시작된 건 중학교 때였다. 학교에서 친구와 장난을 치다가 우당탕 계단에서 넘어졌다. 문제는 주변에 학생이 너무 많았다. 넘어져서 갑자기 큰 소리가 났고, 갑자기 주변에 정적이 흘렀다. 아무렇지도 않게 빨리 일어나는 시점이 늦어져서 털어버리고 일어날 수 없었다. 게다가 주변 학생들이 왠지 모르게 넘어진 나 쪽을 바라보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미 그때부터 이불킥 전문가의 기질을 발견했다. 하는 수 없이 진짜 심하게 다친척을 하며 잠시 누워있었다. 사실 아주 좋은 방법이다. 어린아이가 넘어져서 울고 있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그렇게 진심으로 아파하는데 누가 웃겠는가? 다행히 친구가 진심으로 걱정하며 부축해줬다. 학생들은 금세 나에게 관심을 끄고 하던 얘기를 마저 했다. 밤에 집에 가서 이불킥이란 걸 처음으로 했다.

   

사연 2. 돌직구로 고백하지 말자. 그 돌, 진짜 아프다.


이 사례는 타고난 직진 본능으로 인해서 쌍방에게 피해를 준 사례이다. 학창 시절, 솔직함이 제일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나는 전혀 어떤 낌새나 언질도 없이 좋아하던 아이에게 돌직구로 뜬금포 고백을 했다. 물론 얘기를 한 번도 안 해봤으니 수락할 리가 없었다.


빛의 속도로 차였다. 고백 상대는 같은 반 친구여서 한동안 얼굴을 보기가 너무 부끄러웠다. 나뿐만 아니라 상대도 나를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마주칠 때마다 돌 수백 개로 두들겨 맞는 기분(물론 그 친구도 그랬을 거다)이 든다. 다행히 겨울방학 뒤에 학년이 올라가서 반이 바뀌었다. 최소한 친해지고 고백하자.


사연 3. 헤어진 전 연인에게 '자니?'하지 말자. 나 없어도 잠 푹 잘 잔다.


때는 바야흐로 헤어지고 몇개월 뒤, 어느덧 이별이 무덤덤해졌을 때였다. 갑자기 새벽에 감성이 폭발한 나는, 당시에 늦게 자는 전 연인이 아직 안 잘 거라고 생각해 '자?' 라는 메세지를 뜬금없이 보냈다. 물론 전 연인은 잠을 아주 잘자고 있었고, 그대로 잘 잤다. 다음날 아침에 메세지를 보낸 내 손을 자르고 싶어졌다. 어쩌면 차단해서 메세지가 안 갔을 수도 있다. 차라리 그랬으면 하고 빌고 있다.


사연 4. 내가 알고 있던 사실이 잘못됐을 수도 있다.


사실 이 사례는 많은 사람이 겪어봤을 터이니 길게 설명하지 않겠다. 당당하게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을 말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전혀 잘못된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얼굴이 너무 화끈거렸다. 앞에서는 모른척해준 친구에게 감사하다. 번외로 영어 브랜드 이름 잘 못 말하는 법도 있다. 자기가 잘 모르는 분야의 일이라면 너무 자신감있게 말하지 말고 겸손하자.


사연 5.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마시지 말자. 다른사람의 필름에는 영원히 기록에 남는다.


때는 바야흐로, 수능이 끝난 고3시절, 1월 1일이 되자마자 술을 마셔보겠다며 편의점에서 술을 사서 친구와 마셨다. 문제는 나는 술을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었다. 어느정도가 취한 건지, 언제 그만마셔야 했는지 몰랐던 나는 브레이크가 고장난 8T 트럭이었다.


당시 막차가 끊길 때 까지 마셨는데, 그 때 근처에 살던 친구 부모님이 데리러 오셨었다. 나는 술에 취해서 아무런 기억도 안나는 채로 침대에서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그 순간 든 생각,

 

'내가 뭘 한거지?'

 

친구의 얘기를 들어보니 차에서 멀미가 났던 나는 그만.....


부모님과 먼저 술을 마시고 배우라는 게 왜 그런지 알게됐다. 꼭 부모님이 아니더라도 술은 자기 주량을 알고, 적당히 조절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이불킥 방지를 위한 안내문.


여기서부터는 어떻게 하면 이불킥을 방지할 수 있을지 예방법에 가까운 안내문이다. 꼼꼼히 읽어보고 실천할 수 있다면 실천하길 바란다.


1. 사람과 교류하지 않는다.


실제로 이불킥을 예방할 수 있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다. 나는 이 방법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몇번 시도해본적이 있으나, 잠수탔다는 사실 자체도 이불킥 경험이 될 수 있음을 주의하자. 게다가 현실에서는 지속적으로 실천하긴 힘든 방법이다.


2. 정치인처럼 말한다.


무언가에 대해서 대답할 때 말 끝을 흐리거나 확답을 내리지 않으면 된다.


"아 그럴 수도.."

"글쎄.. 생각 좀 해보고.."

"뇌(내)부적으로 확인해보고 답변드리겠습니다"


단점은 나 자신이 혐오스러워질 수 있으므로 좋은 방법은 아니다.


3. 타인의 말을 잘 경청한다.


나의 주장보다 타인이 말하는 걸 잘 들어주고 호응만 잘 해도, 사실은 이불킥할 일이 거의 반으로 줄어든다. 사회에선 아주 중요한 일이다. 호감가는 사람이라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4. 적정한 선을 지킨다.


사실 이것도 아주 괜찮은 방법이다. 너무 사적인 얘기를 많이 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나의 사생활을 얘기하게 되는 법이다. 친하지 않다면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될 정보를 먼저 얘기하지 말자. 궁금하지도 않고, 궁금해하지도 말자. 이러면 TMI라는 얘기를 듣지 않을 수 있다.  


살면서 여러가지 이불킥을 할만한 상황을 마주할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추억이며 그런 일을 겪었다고 너무 속상해 하지 않기를 바란다. 다 성장을 위한 밑거름 이었다고 하기엔 너무 거창하거나 상처가 클 수도 있지만, 어쨌든 지금 웃을 수 있다면, 괜찮다.


그렇게 힘든 일이라 느껴졌던 일의 대부분은 다 지나고 나면 웃을 수 있는 일이 된다. 물론 그렇지 못하는 일도 많다. 하지만 지난 날을 후회하거나 괴로워하며 살기에는 너무나도 짧은 인생이다. 지난 날의 아픔으로 여전히 힘겨워하고 있다면, 부디 더 많이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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