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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서 Feb 26. 2021

부끄럽지만, 글을 씁니다.

글 쓰는 작가가 멋있어 보인다는 생각을 한 건 초등학생 때였다. 어릴 적 해리포터의 마법 주문을 외우며 놀았다. 매년 출간되지 않는 해리포터를 원망하며, 새 시리즈의 기다림을 이겨내고자 다른 판타지 소설(제목이 뭐였더라..)을 찾아 읽었다. 어둠의 기사니 마왕을 물리치니 하던 게 멋있어 보였다. 나도 저런 멋진 주인공이 나오는 글을 쓰고 싶었다. 심지어 어렸을 적 초등학생 때 했던 직업 적성검사에서 '작가'라는 항목이 가장 1순위였고, 왠지 모르게 잘 쓸 수 있을 거 같다는 자신감이 차올라 있었다.


그렇게 초등학교 직업 적성검사 1순위 '작가'는 컴퓨터가 아닌 A4용지에 볼펜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왠지 작가라면 컴퓨터가 아니라 손으로 써야 할 것만 같았달까. 손으로 쓰는 '손 맛'도 한몫하긴 했다. 소설의 내용은 달의 기운을 받은 흑기사와 태양의 기운을 받은 백기사가 대결을 펼치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판타지 소설이었다. 문장에는 멋있어 보이는 온갖 미사여구로 가득했다. 그럴듯해 보이는 문장으로 포장한 허세 가득한 소설이었다.


내 첫 독자는 엄마였다. 글을 쓰고 난 후 한 껏 부푼 기대감에 글을 보여줬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엄마의 평을 기다렸다. '혹시 내가 엄청난 재능이 있는 거 아닐까?', '나도 해리포터 같은 소설을 쓰는 유명 작가가 될 수 있을까?' 같은 기대를 했지만, 초딩에게 그런 재능이 있을 리 없었다.


"괜찮네"


평은 짧고 굵었고, 묵직한(?) 한방이 있었다. 사실 뭐 대단한 평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재미있네, 계속 써서 보여줘'같은 평 정도는 기대했던 거 같다. 그렇게 직업 적성검사 1순위 '작가'의 의욕은 금방 시들해졌고, 한동안 글과 먼 삶을 살았다. 그래도 책을 멀리하지는 않았다.


온갖 종류의 이야기에 빠져 살던 나는 한번 빠지면 하루 종일 소설을 붙들고 침대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추리소설이나 형사물 같은 장르소설, 한 때 유행했던 일본 소설, 명작 소설까지 꽤나 다양한 소설책을 읽으며 살았고, 순수문학에도 잠시 빠져 도서관에서 '문학동네'나 '창작과 비평'에서 나오는 글을 읽기도 했다.


글과의 인연이 다시 시작된 건 20대 때부터였다. 영화에 빠져서 찍어보겠다고 무작정 시나리오를 썼고, 그렇게 쓴 시나리오로 몇 편의 단편영화를 제작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감독이 되고 싶었다기보다는 이야기꾼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몇 년 동안은 장편 영화에 참여하기도 했고, 계속 돈을 벌면서 단편 영화를 찍으면서 살았다. 원하는 만큼 결실을 맺지 못하고, 꿈을 접기로 한 건 시간이 꽤 지나서였다. 돈을 벌고 영화를 찍고 다시 가난해지는 무한 굴레에 빠져나오지 못하는 불안정한 삶이 계속됐다. 그런 삶에 염증을 느꼈고, 적더라도 따박따박 통장에 월급이 꽂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물론 잠들지 못하는 현장의 환경도 한몫하긴 했다) 그래서 쓰라린 마음을 부여잡고 패잔병 마냥 깃발을 흔들며 항복! 을 외치며 꿈을 접었다.


영화는 포기했지만 글과의 인연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학보사 문화부 기자로서 활동하며, 문화에 관련된 글을 썼다. 그동안 문학이나 시나리오 등의 형태로 글만 써오다가 새롭게 비문학 형태로 글을 쓰는 일도 매력 있었다. 학보사 기자는 꽤나 힘든 일이다. 마감에 맞춰 글을 쓰는 일부터 시작해서 신문 조판소에서 인쇄된 활자 신문을 보며, 눈이 빠지도록 오탈자를 찾자니 죽을 만큼(영화 현장보단 덜) 힘들었다.


처음으로 진득하게 써보는 비문학적인 글쓰기여서 마감에 맞추는 게 더 힘들게 느껴졌다. 제일 쓰기 싫었던 건 보도기사를 쓰는 일이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글은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고, 지루한 작업이었다. 문화면 기사를 쓰는 일은 백지부터 기획안까지 새롭게 써 나가야 했지만 재밌었다. 글을 쓰고 난 뒤에는 뿌듯했고, 더 좋은 기사를 쓰고 싶었다. 그렇게 학보사 기자로서 1년 정도 활동을 했다.


학보사 기자생활을 마치고도 글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싶었다. 다양한 형태의 글을 쓰고 싶어서 브런치에도 글을 쓰기 시작했다. 브런치에는 잘 쓰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나는 내가 전달할 수 있는 특별한 지식이나 커리어가 있지도 않았고, 글을 엄청 잘 쓴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에세이나 리뷰 글은 엄청 잘 쓰지 않는 이상 너무 차별성이 없어 보여 '불편'이라는 컨셉을 잡고 글을 썼고 다행히 한 번에 돼서 글을 쓸 수 있었다. (그래서 작가 소개는 그렇지만 사실 아무거나 막 씁니다)


내가 현재 글쓰기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진심을 전하는 일 밖에 없다. 대단히 잘 쓴 글이나 지식을 전달하고, 통찰력 있는 글을 쓰지는 못하지만 진심을 다해서 쓰려고 노력한다. 계속해서 글을 쓰면서 알게 된 건, 글과 나는 계속해서 동반 성장해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글에는 각자의 인생이 담겨있다. 감정과 생각을 전달하는 글은, 내가 아는 생각과 감정, 지식과 경험의 폭에서 나오는 정도의 글만 쓸 수 있다.


가짜로 나와 맞지 않는 글을 꾸며내서 쓰려고 하면 금방 밑천이 드러난다. 그래서 더 다양한 종류의 책과 영화를 보고, 구독자나 새로운 브런치 작가님의 글도 읽어보고, 새로운 경험을 통해 영감을 얻으려고 한다. 글과 나는 그렇게 같이 배우고 성장한다. 물론 성장했다고 해서 정답을 찾는 글을 쓰고 싶은 건 아니다. 글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인생에 정답이 있다고 믿지도 않는다. 게다가 계속해서 오답만 내오던 내가 정답을 잘 말할 리도 없다.


물론 현재도 시나리오나 소설을 구상하기도 하고, '글로 소득'이 가능한 업으로서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버린 건 아니다. 그와는 별개로, 어떤 형태로든 죽기 직전까지 나를 위해서 글을 쓰고 싶다. 또 생각과 감정을 기록하고 붙잡아 두는 매체에 글만 한 건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마감을 싫어하던 나는, 기한 없는 글을 영원히 쓸 것이다.


다음 편에 계속!(후속작 기한 없음)

-의식의 흐름에 이끌려 홀리듯이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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