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서 Jan 17. 2021

자유에 대한 짧은 단상

기억의 파편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나는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와 대화하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평소 영화 보는 걸 좋아했던 나는 극장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으며, 종종 온종일 방에 처박혀 영화를 세 편씩 보곤 했다. 아버지는 이런 나에게 종종 식탁에서 밥을 함께 먹을 때마다, “요새는 누가 제일 잘 나가냐?”나 혹은 “그래서 누가 제일 돈을 잘 버냐?” 같은 질문을 하곤 했다. 아버지 딴에는 아들과 친해져 보자고 던진 얘기였지만,  나는 못마땅한 눈초리로 아버지를 흘겨보며 “몰라”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하곤 했다.


진짜 아버지가 싫다거나 반항심이 있던 건 아니었다. 단지 모든 대화 주제를 돈과 연관 지어서 얘기하는 게 싫었다. 그냥 어떤 영화가 재미있냐 라던가 그 영화의 어떤 점이 좋았냐 하는 조금 더 평범하고 일상적인 대화를 하고 싶었다. 이후, 항상 돈, 돈, 돈 거리던 아버지를 보며 이상하게도 돈에 대한 앙금이 생겼는지, 돈에 대해서 얘기하는 게 저급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돈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사는 게 꿈이었다.


그랬던 나는 법적으로 성인이 되고 나서야 크게 방황했던 적이 있었다. 딱히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냥 무엇을 해도 의욕이 생기지 않았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그래서 다니던 아르바이트도 그만두고 집에서 영화만 봤다. 그렇게 집에서 무기력하게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 무렵,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나를 움직이게 만든 것은 돈이었다. 가진 돈이 다 떨어져 갔던 나는 시간은 많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신세였다.


그토록 자유를 갈망했던 나는 자유를 얻게 되자 금방 다시 자유를 잃게 됐다. 친구를 만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핑계를 대며 만남을 거부했고, 하고 싶은 게 있어도 돈이 다 떨어져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결국 궁핍해진 나는 다시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래도 돈, 돈, 돈 거리면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고상한 척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단지 내가 가진 자유라는 이상을 돈이라는 녀석이 단숨에 깨버린 것에 어쩐지 분한 마음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마침내 첫 월급이 통장에 들어왔을 무렵, 같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들과 술자리를 갖기로 했다. 두 친구 모두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알게 된 친구였는데 친구 K는 그냥 아르바이트만 하던 친구였고, 다른 친구인 L은 일찍부터 일을 시작해서 나중에 돈을 모아 자기 가게를 갖는 게 꿈이라던 친구였다. K는 한마디로 '욜로(YOLO)족'이었다. K는 “쥐꼬리만 한 월급 지금부터 모아서 뭐 하냐, 어차피 평생 벌어 서울에 집 한 채도 못 살 건데”라고 말하며 젊었을 때 즐기지 않으면 언제 즐기냐는 친구였다.


L은 그를 비난하며 얼른 어떻게든 돈을 모아서 빨리 자리를 잡아야 하지 않겠냐는 식으로 말했다. 나는 우습게도 이 둘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월급만 모아서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중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말했던 L은 나에게 넌 나중에 어떻게 하고 싶냐고 물었다. 학생이었던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며 대충 얼버무렸다.


기분 좋게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던 나는 비틀거리며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셨던지라 토할 거 같은 기분이 들어 잠시 담벼락에 머리를 기대었다. 문득 아버지가 술에 잔뜩 취한 채 집에 들어왔던 날이 떠올랐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했던 아버지는 술에 취해 주정을 부렸다. 주정은 직장 상사에 대한 불평에서 시작해 결국은 돈으로 끝나는 그런 흔한 이야기였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아버지, 당신께서는 그 누구보다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매거진의 이전글 라떼는 말이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