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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들!! Where are you?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집엔 왜 아빠가 없었지?

  우리가 어릴 적에 반드시 필수 코스로 들었던 이야기에는 해와 달이 돼 오누이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나의 아이들을 키울 때에도, 때로는 그림책을 보여주거나 그때그때 각색해서 자주 들려주었던  옛날이야기이기도 했다. 다들 알겠지만 스토리는 이렇다


 '가난한 집에 엄마와 오누이가 오손도손 살았다. 엄마는 산너머 이웃 동네로 일하러 가고 집에는 오빠와 누이동생이 하루 종일 엄마 오기를 기다린다. 그날따라 일이 늦게 끝난 엄마는 일한 대가로 받은 떡을 이고 아이들에게로 총총이 돌아오는 중에, 산을 넘다 그만 호랑이를 만나고 만다. 호랑이는 떡 하나를 주면 잡아먹지 않겠다고 하자, 엄마는 떡 하나를 주고 고비를 넘긴다. 그러나 우리나라 산은 얼마나 구비구비 굴곡이 많은가. 한구비 넘을 때마다 호랑이가 나타나 떡을 요구했고, 그만 떡을 다 줘버린 엄마는 결국 호랑이에게 먹혀버린다. 호랑이는 엄마옷을 입고 아이들마저 잡아먹기 위해 엄마인척 집으로 가서 아이들에게 문 열기를 청하지만 아이들은 기지를 발휘해서 엄마가 아닌 호랑이를 집에 들이지 않으나, 급기야는 버선발을 보고는 엄마인지 알고 문을 열어 주었다가 호랑이를 피해 나무 위로 올라간다. 호랑이는 아이들을 잡아먹기 위해 나무를 오르는 절박한 상황에서 아이들은 하늘에 기도를 한다. "하느님 하느님 우리를 살리시려면 굵은 동아줄을 내리시고, 우리를 죽이시려면 썩은 동아줄을 내려주세요." 아이들의 기도가 통했는지 아이들을 동아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고, 그 모양을 보았던 호랑이도 하늘에 기도를 한다. "하느님 하느님 제게도 동아줄을 내려주세요." 하늘에서 호랑이에게도 동아줄을 내려주었고, 그 동아줄을 타고 거의 아이들을 따라잡으려는 순간, 호랑이가 잡은 동아줄은 썩은 동아줄이어서 그만 끊어져 버렸고, 호랑이는 수수밭에 떨어져 버렸다. 그때 흘린 호랑이의 피가 수수에 들어가서 지금도 수수의 색깔은 붉다나 어쩐다나. 이렇게 하늘에 올라간 남매는 오빠는 해가 되고, 누이동생은 달이 되었지만, 밤에 떠있기가 무섭다는 동생의 호소에 오빠가 양보를 해서 오빠가 달이 되고 동생이 해가 되었다고 한다.'


  요즘 아이들은 이런 동화를 들려주면, 너무도 이성적이어서 '호랑이는 육식동물인데 어떻게 떡을 먹냐', '호랑이가 어떻게 사람처럼 말을 하냐', '아이들이 바보냐 호랑이와 엄마를 구별하지도 못하게' 등등의 비판을 하는 경우도 있어 '아이답지 않은' 이 시대의 똑똑함에 난감한 적도 있었고, 민간 설화나 전설 등에 담겨있는 이야기 구조를 학문적으로 연구하시는 분들은 독일권 언어에서는 해가 여성명사이고 달이 남성 명사여서 자연물에 대한 이미지를 동서양이 공통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었다나 어쨌다나 하는 복잡한 말들을 하지만, 이 글은 이런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다만 이런 이야기들이 오랜 세월 민간에 전해져 내려왔다가 글로 채록되어서 읽히는 시대 상황에 관하여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뿐이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도 그렇고, 장화홍련전이나 콩쥐팥쥐 등의 이야기에는 아버지가 없거나 존재감이 약하다. 왜 이 시기의 이야기에는 아버지가 '부재'할까? 당시 사회적 배경과 이 부재 현상에는 어떤 상관성이 있는 것은 아닐까를 그냥 별 책임감 없이 던져보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조선은 크게 임진왜란을 기준으로 전기와 후기로 구분한다. 임진왜란은 조선이 건국하고 딱 200년 만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물론 200년 동안 사회가 '고인 물'과 같이 되어서 정치 경제, 사회 여러 방면에서 문제를 발생시키고는 있었지만, 멀리서 조망하면 대체로 '태평성대?'처럼 보였고, 그만큼 임진왜란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느닷없는 대참사처럼 여겨졌을 것이었다. 


  한 사회를 이해하는 관점은 대체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여기서는 경제적 변화로부터 출발해보자.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경제는 그야말로 처참한 수준이었다. 통계 수치로 보면 당장 농사를 지어 수확을 기대할 수 있는 농경지가 전쟁 이전과 비교하여 1/6 ~ 1/5 수준으로 감소되었다 하니 7년간의 전쟁이 가져다준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특히 농사짓는 땅은 한 해만 묵어도 다시 그 지력을 회복하기 위해 다시 1년을 공을 들여야 한다니 7년간의 황폐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니 단위당 생산성이 높은 방식의 농법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있었다. 그것이 바로 이앙법이라는 모내기 방식이었다. 이앙법에 대하여는 다음에 다시 논할 것이다. 여기서는 결과적으로 이앙법이 불러온 농촌의 변화에만 집중해보자. 이앙법은 노동력을 절감시키는 획기적인 농법이었다. 그래서 약삭빠른 지주들은 소수의 소작농에게만 소작을 주어서 농사를 짓는다. 요즘 말로 하면 '가성비 좋은, 효율성이 있는, 경쟁력 있는 실력 있는' 등등의 수식어가 붙을 유능한 소작농 몇 사람만 있으면 충분히 농사를 지을 수 있었기에 그런 현상이 광범위하게 나타난 것이다. 결과적으로 수많은 농민들이 농촌에서 일자리를 잃게 된다. 바로 구조조정이다. 이런 현상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보이는 매우 익숙한 풍경이지 않은가? 


  자신이 늘 있어왔던 고향 땅에서 구조조정이 된 농민들은 살길을 찾아 도시로 흘러 들어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평생 농사만 짓던 사람들을 위한 세상은 없다. 그들이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기껏해야 날품팔이 노동이나 영세한 상업에 종사하는 길밖엔. 가족 모두가 이주하는 것은 쉽지 않았기에, 가장이 도시로 나가서 돈을 벌고, 고향 땅에 남은 식구들은 제각각의 일거리를 찾아 생존해야 하는 상황이 일반적으로 존재하였을 것이다. 


  밖으로 나간 '아버지'들은 어쩌다 오랜만에 집에 들르거나, 오고 가는 길에 호환(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사고)을 당해 죽거나 하는 경우가 속출하지 않았을까 싶다. 일이 이렇게 되다 보니 이 시기 가족구조에는 심각한 아버지 부재 현상을 보였던 것이 아닐까. 장화와 홍련의 아버지, 콩쥐 아버지는 어쩌다 집에 들어와서는 집안이 돌아가는 상황을 모르는 ‘부재의 아버지상’을 보이고,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집에도 아버지는 없다. ‘아줌마, 아줌마!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는 호랑이의 말은 당시에 빈번히 일어났던 호환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전해지는 단순한 이야기에도 그 시대의 상황이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는 것, 이것이 역사적 사고요, 입체적 사유가 될 것이다.  


    문제는 그 옛날 조선 시대만 그랬겠는가이다. 현대의 아버지는? 현대의 아버지는 생존을 위해 오랜 시간 노동을 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양육과 교육, 정서적 교감에 있어 아버지들은 갈수록 자신들의 설 자리가 없어진다. 우스개이긴 하지만 대학에 잘 보내기 위해서는 엄마의 정보력, 아버지의 무관심, 할아버지의 경제력이란 말이 세간에 회자되는 것을 보면 실질적으로 현대의 아버지는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상당한 정도로 거세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대 사회가 더욱 고약한 것은 엄마도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은 엄마들도 일하러 다니느라 바쁘다. 그만큼 아이들의 양육과 교육에는 빈자리가 많은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없는 거보다 더 난감한 것은 '있지만 없는 것'이란 말이 있다. 그만큼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가 고아와 같은 무리들이 난무하는 시대는 아닐까 하는 사뭇 과격한 고민을 해보는 시간이다. 먼 훗날 이 시대는 어떤 이야기로 그려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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