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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리 키노 Jul 08. 2023

밖으로 나가버리고

비로소 보이는 것들

안개가 자욱하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7월 8일 오후.


모처럼 와이프가 쉬는 토요일이다. 장모님과의 점심약속에 늦지 않으려고 장모님 댁으로 출발했지만 지각했다. 나오기 전에 로봇청소기의 활동반경을 넓혀주느라 거실을 치우다고 시간이 오버되었다. 장모님 댁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강아지 '꼬마'와 놀아주다가 점심 먹으러 1시쯤 나왔다. 신혼집 근처에 있는 오리고깃집으로 향했다. 산중턱에 위치한 '안창마을'은 오리고기로 유명한 동네인 듯했다. 오리고기 식당이 곳곳에 있었는데 장사하시는 분들 덕분에 동네가 살아났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자리를 잡고 앉아 오리 불고기를 주문했다. 고기가 익기 전 파절이가 아닌 깻잎절임이 나왔는데 새콤달콤한 맛이 입맛을 당겼다. 평소에 잘 먹지 않는 깻잎절임을 불고기가 없어지는 동안 끊임없이 먹었다. 오리고기를 먹으러 왔다가 절임에 반하는 아이러니한 순간이다. 선고기 후공깃밥 식사를 마치고 나왔지만 입안의 새콤달콤함이 진한 여운은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밖으로 나가보니 '맛집'이 보였다.


휴지가 떨어졌다. 신혼집에 이사올 때 얼마 남지 않은 두루마리 휴지들이 동이 난 것이다. 비가 오는 탓에 나가기 망설여졌지만 식탁을 닦는데 화장실을 가야 하는 불편함을 호소했던 와이프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갑과 우산을 챙겨 아파트 정문 옆 할인마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휴지를 고르고 계산하던 찰나였다. 입구에서 들어온 한 소년이 티브이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 멜로디에 몸을 들썩인다. 


"니도 마 흥겹나? 들썩들썩 춤도 잘 추네~"


계산해 주시던 주인아주머니께서 한 마디 하신다. 소년은 대꾸도 없이 씰룩씰룩 어깨와 허리를 흔든다. 부끄러울 수도 있는데 자주 리듬을 탄 베테랑의(?) 냄새가 났다. 눈치 하나 보지 않고 자신의 기분과 감정을 표현하는 소년이 기특했다. 이런 상황은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내심 그 기분을 맞춰주고 싶었다. 자신의 필(feel)을 맞춰주는 어른이 세상에 몇 명이나 될까? 하는 의문을 뒤로하고 함께 몸을 슬쩍 흔들었다. 


"같이 흔들어주는가? 하이고마 웃기네요~"


계산하고 나오는 와중에도 소년은 연신 온몸을 흔들어대고 있었고 아주머니의 웃음소리도 들려왔다. 집으로 들어가는데 기분이 묘했다. 휴지 사러 나왔을 뿐인데 이런 소소한 경험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어린이의 흥겨움을 지켜주고받아줄 수 있는 어른이 믾있으면 좋겠다. 어딜 가나 관심받고 다독여주는 어른을 만나는 아이들은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플러스요인이 되지 않을까.

밖으로 나가보니 '특별함'이 있었다. 

밖으로 나가보니 영화'미스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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