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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집사가 되었습니다

길고양이와의 조우

by 아메리 키노

늦가을, 잎이 떨어진 가로수 사이로 바람이 다녀가는 어느 저녁.

분리수거를 하러 나온 남자의 발걸음은 유난히 무거워 보였다.

몇 날 며칠, 이력서를 넣어도 묵묵부답이 전부일 뿐. 하루하루가 무의미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 날들의 끝자락, 그는 재활용 쓰레기봉투를 조심스레 정리하던 중이었다.


“부스럭 부스럭…”


좁디좁은 커다란 쓰레기 봉투 틈에서 아주 작고 미약한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린 남자의 시선 끝에, 좁은 틈 사이로 보이는 작고 둥근 엉덩이가 보였다. 조심스레 봉투 가장자리를 들어올리자, 그제야 고양이 한 마리가 고개를 들었다.

검정색과 어떻게 표현하기 어려운 밝은 색 털이 섞여있는 외형에, 깃털처럼 가벼운 울음소리가 공기 사이로 새어 나왔다.

“여기 새끼고양이가 있는데, 한번 내려와서 볼래?”

남자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몇 분 뒤,

“새끼고양이? 알았어. 지금 내려갈게.” 라는 답장이 도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가 나타났고, 두 사람은 작은 고양이를 쓰레기봉투 더미 옆에서 멀찍이 떨어진 채 바라보았다. 사람의 인기척에 놀란 고양이는 그대로 아파트 입구 쪽으로 도망쳤다. 낯선 공간 속, 벽과 벽 사이, 어둡고 좁은 틈을 찾아 숨어드는 생존의 감각이 본능처럼 반응한 것이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던 중, 그들 곁에 젊은 여성이 다가왔다. 그녀는 낚싯대 장난감과 고양이 간식을 하나 들고 있었다.


“이 아이, 저도 낮부터 봤어요. 계속 여기 주변에 있었어요.”


그녀의 말에 두 사람의 시선이 다시 고양이에게 향했다.

낚싯대 끝의 장난감이 부드럽게 흔들렸다. 그것은 마치 바람결에 살랑이는 얇은 실타래처럼, 긴장 속에 얼어 있던 고양이의 시선을 살며시 끌어당겼다. 조금씩 다가오던 고양이는 이내 인기척을 눈치채고, 근처 주차된 차량 밑으로 몸을 숨겼다.

금세 움직임이 멈춘 차 밑. 그곳은 불안 속에 자신을 감출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을 것이다. 그러나 낚싯대에 매달린 장난감이 여전히 매혹적인 궤적을 그리자, 녀석은 조금씩, 아주 천천히 앞발을 뻗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남자가 준비한 박스가 펼쳐졌고, 담요 위로 작은 몸이 들어왔다.


엘리베이터 안. 남자는 양 손으로 박스를 꼭 쥐고 있었다. 그 안에서는 가냘픈 숨소리 하나 없이 고요한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고양이는 긴장으로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이따금 작게 떨리는 몸짓이 보였다.


“우리가… 키울 수 있을까?”


“잘할 수 있을 거야. 해보자.”


짧은 대화가 흐르고, 엘리베이터는 조용히 위로 올랐다. 그의 눈빛은 어느새 결연했다.

과거, 어린 시절 가장 아끼던 반려견 ‘뽀동이’를 떠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얀 바탕에 연한 갈색 점박이가 있는, 언제나 그의 곁을 따라다니던 뽀동이. 하지만 어린 마음으로는 지켜낼 수 없었던 생명이었다. 결국 식당일에 방해된다며 부모님 손에 뽀동이는 할머니 댁으로 보내졌고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했다. 그는 오랜 시간 그 이름을 마음에 품고 살아왔다.


이번에는 마음가짐부터 달랐다. 불확실한 미래와 불안정한 삶이 그를 옥죄고 있었지만, 적어도 오늘 이 순간 이 생명 하나만큼은 지켜내고 싶었다. 그때와 다르게 다시는 뒤돌아서지 않겠다는 마음, 그 다짐 하나가 작고 따뜻한 박스를 품에 안은 채 그의 가슴 속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1장 본문.jpg 2023년 10월 29일, 처음 구조한 날 그가 만난 건 늘 품고 있던 불안과 걱정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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